한강 소설 '번역본' 논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김용찬 기자]
한국의 문학 작품을 다른 나라의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선 반드시 번역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가 외국 문학 작품을 한글로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번역자의 작업이 전제 되어 있다. '데보라 스미스의 한강 번역'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 <채식주의자의 창조적 배신>(2025년 5월 출간)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영역본(The Vegetarian)을 둘러싼 '오역 논쟁'을 중심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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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휴북스 |
고전문학 전공자인 나, '창조적 배신'에 공감한 이유
나로서는 한강의 작품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었기에, 당시 전개되던 영어 번역본의 '오역 논쟁'은 그저 뉴스 거리 가운데 하나로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외국 독자들은 한국어 원작이 아닌 번역본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종종 번역을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훨씬 더 복잡한 글쓰기이고, 인간의 모든 행위가 작동하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저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Human Acts)의 번역본을 대상으로, 원본의 '창조적 배신'을 통해 영어권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관념에 익숙하지 않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작품의 의미와 맥락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번역자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이 책에 수록된 4편의 글을 통해 설득력 있게 논하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거둔 성공 사례에 초점을 맞춘 논문 또한 첨부되어, 이 책에는 모두 5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오역 논쟁이 단지 오역이나 언어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근본적인 것이 그 이면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어 글쓰기의 특징"이 두드러진 한강의 작품들을 영어로 옮기면서 "스미스는 자신의 영어 번역에서 이러한 두 언어의 서로 다른 글쓰기 방식의 차이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여러 편의 글을 통해 논증한다.
이 책은 "번역가는 번역하기 위해서 먼저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며, 그것은 번역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의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를 넘어 한 가지 최종적인 해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만큼, 다양한 번역가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문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지극히 당연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뛰어난 오역을 보고 싶다'고 토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러한 주장 역시 번역본을 읽을 독자들을 고려한 친절한 번역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한강 작품에 대한 데보라 스미스의 영어 번역은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번역이 충실성의 통제를 벗어나 창조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며, 이러한 작업을 '일종의 도발적이고 창조적인 배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어로 출간되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앞으로도 독자로써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의 영어 번역본을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들이 번역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고, 그 결과 노벨문학상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분명한 오역에 대해서는 비평을 통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지만, 작품의 의미와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의도적 오역'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전개되었던 '오역 논쟁'의 성과들을 갈무리하는 내용을 접하면서, 한강 소설의 영어 번역본이 지닌 중요한 성과를 보고하는 이 책의 내용은 문학 연구자인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나는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논문을 쓰면서 한문 자료를 빈번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한문 원전을 번역하며 '원문의 직역'과 '맥락을 고려한 의역'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현재의 문화적 맥락이 뚜렷하게 다르기에, 원문을 번역하여 인용함에 있어 가급적 본 뜻에 충실하면서도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상세한 주석을 첨부하곤 한다. 원문의 번역이 독자들에게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절감하면서 이미 문자로 출간된 결과물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번역에 있어서 '창조적 배신'의 태도가 작품의 본 뜻을 전달하는데 오히려 본질에 더 다가설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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