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가 시한부를 대하는 태도... 영 찜찜하다
[윤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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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드라마 <우리 영화>의 한 장면. |
| ⓒ SBS |
'시한부' 여주인공 서사를 다룬 콘텐츠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요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다. 게다 '시한부' 캐릭터가 재현하던 울부짖음, 우울, 슬픔, 고통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시한부' 환자가 저렇게 안 아플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일상을 살아간다. 주인공 다음의 표현대로 '평범한 시한부'다.
그러나 이는 착시일 뿐 다음은 아프고 절망적이다.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시한부' 동료였던 지인의 장례식장을 나오며 자신의 예정된 죽음과 장례식을 고민하게 되는 환자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권력처럼 행사하지 않는다. 아픈 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다음의 타고난 낙천적 성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은 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을 떠올려보면, 얼토당토않은 가정은 아닐 테다.
아파도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리 없다. 아픈 몸이라는 신체적 한계가 명확해도, 아프기 전에 누리던 소소한 일상을 복구하고 싶을 수 있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매일 별거 아닌 것처럼 행하는 바를 누리고 싶을 수 있다.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경험을 기록한 김도미의 <사랑과 맥주 한 잔의 자유>도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큰 병을 앓고 있다고 해서 일거에 환자 모드로 전환돼 비환자로 지내던 일상이 쓰레받기에 싹 쓸어 담겨 버려지는 게 아니다. 살던 대로 사랑(연애, 섹스)도 하고 싶고, 긴 투병이 지겨운 늦은 오후면 일상의 환기로 시원한 맥주도 들이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환자가 게다 '시한부'가 이런 결행을 한다면 단박에 곱지 않은 눈길을 받게 된다.
'저러니 아프지', '저래서 나아지겠어'부터, '본래 생활 습관이 좋지 않아 저런 병에 걸린 거지'라는 둥 악담이 이어지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나 누리는 자유를 얌전히 반납하고 환자답게 찌그러져 있으라는 사회적 압력이 강하게 지쳐 든다. 아프다고 갑자기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닌데, 건강할 때의 습관을 모두 버리고 어서 아픈 몸을 회복해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이 거세다. 아픈 이는 병의 무게도 보통 무거운 게 아닌데, '환자다움'을 요구하는 가족적 사회적 압박 때문에 더 고달프다. <사랑과 맥주 한 잔의 자유>에서 저자 김도미가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성토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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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BS 드라마 <우리 영화>의 한 장면. |
| ⓒ SBS |
'시한부'지만 살고 싶은 이가 있는가 하면, '시한부'이기에 살고 싶지 않은 이도 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스로 '시한'을 정하고 죽음을 예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점에서 다음은 '환자다움'을 탈각한 신선한 '시한부'라는 관점을 던지는 동시에, 아프지만 포기를 모른 채 명랑하게 주변을 돌보고 끝까지 꿈을 실현하려 노력하는 자기계발형 '시한부'라는 숨 가쁜 인상을 준다.
이는 어쩌면 병실에서 투병으로 고군분투하느라 진이 빠졌거나, '환자다움'을 재현하느라 연기를 해야 할 정도로 압박이 심한 아픈 몸들의 욕구를 대리하며 만족과 위로를 주는 동시에, 당신도 저렇게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살라는 엄중한 명령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러한 이분적 '시한부' 상은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상상하기 힘들게 한다.
다음의 타고난 낙천은 늘 주변 사람을 위로한다.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견디며 오히려 자신 때문에 고통을 받을 사람들을 걱정한다. 다음의 성숙한 인고는 환자도 가족과 주변인 모두를 돌보고 있다는 웅숭깊은 투병을 보여주지만, 가능한 견딤일지 짠하다. 그리고 다음의 '시한부'가 발각된 이후 주변인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고민을 남긴다.
마지막 불꽃을 태워 배우로 살고자 하는 '시한부' 다음의 도전이 주변인 모두와 많은 대중을 감화시켰다는 것은 결국 그녀가 극한의 고통을 겪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것이 아프지 않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시한부' 환자보다 명백히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이렇게 지질하게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반성의 대상으로 '시한부' 다음이 자리 잡고 말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디딤돌 삼아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자신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담화하는 것이 '시한부'든, 아픈 몸이든, 장애를 가진 이든, 그들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일까. 이런 고민을 안고 드라마의 막바지에 이르자면, 드라마는 다음의 죽음을 직면하지 못한 채 사후 주변인이 그녀의 죽음을 통해 성장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서둘러 마무리 짓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결국 다음의 '시한부'라는 극단적 운명과 비가시화된 투병과 영화를 향한 사투가 주변인 모두를 특히 남자 주인공 제하(남궁민)를 구원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 것은 아닌지 찜찜해진다.
비록 제하가 아버지의 명성이 엄마의 시나리오를 빼앗아 이룬 헛된 것이었음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시한부' 다음을 영화의 성공을 위해 이용했다고 고백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더라도, 석연치 않은 께름함이 남는다. '시한부' 여자 주인공이 주인공 '나쁜 남자'를 사람답게 만들고 죽는다는 옛날에나 통했을 법한 희생 신화가 작금에는 명랑하고 활기차고 죽는 날까지 최선의 삶을 구가해 남자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까지 감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시한부' 여주인공으로 변주된 것은 아닐지, 드라마는 끝났지만 씁쓸함이 오래 남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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