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노동자 사망, 뒤늦게 통과된 안전보건규칙의 의미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문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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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8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폭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가 폭염시 작업 중지를 촉구하며 얼음물을 머리에 붓고 있다. |
| ⓒ 연합뉴스 |
특히 7월 초, 한 젊은 이주노동자가 폭염 속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 죽음은 단지 더위 탓만이 아니다. 더위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제때 작동하지 못한 현실이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폭염에 대비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아래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상식적이었다.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작업장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고, 냉방 장치나 통풍을 갖춰 노동자가 열사병 등 건강장해를 입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몇 차례 재검토되며 발이 묶였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사이 폭염은 이미 시작됐고, 결국 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쓰러졌다. 법이 제때 통과됐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다행히도 지난 11일, 규제개혁위원회는 원안 그대로 안전보건규칙 개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매번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제도가 바뀌는가? 왜 '당연한 안전장치'가 이렇게 늦게 도입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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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마친 전국레미콘운송노조 노동자가 뜨거운 햇볕 아래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 ⓒ 이정민 |
열사병이나 탈진은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에 '폭염으로 인한 건강장해' 조항이 신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6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조항은 사업주가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예방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번에 통과된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은 이러한 법의 정신을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개정안은 폭염을 '열경련, 열탈진, 열사병 등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는 더운 기상현상'으로 정의하고, 체감온도 31도 이상 작업장을 '폭염작업'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폭염작업 시 사업주가 반드시 해야 할 3가지 의무를 규정했다.
① 냉방이나 통풍 등 적절한 온·습도 조절 장치를 설치·가동할 것
② 작업 시간대를 조정해 폭염 노출을 줄일 것
③ 적절한 휴식 시간을 부여할 것.
특히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제는 실행이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폭염 속에서 제대로 된 냉방장치나 그늘막 없이 일하는 현장은 여전히 많다. 특히 이주노동자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규정이 있음에도 '작업을 멈추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목숨을 걸고 일한다. 법의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지켜지도록 감독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폭염 경보 발령 시 강제적으로 작업을 중단시키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업주가 안전장비나 냉방시설 설치 비용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과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은 앞으로 더 잦아지고 강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의 생명권은 더욱 위협받는다. 이번 개정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늦었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한 걸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기후위기에 맞는 종합적인 산업안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쓰러진 젊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 규칙 개정이 현장에서 살아있는 제도가 돼야 한다. 더 이상 '더위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기업, 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인 문은영 변호사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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