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아재' 소리 듣는 우리가, 2030 꾸짖을 자격 있을까

구교형 2025. 7. 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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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대를 말하다] 내 가족사를 통해 본 '세대 이야기'... 우리는 정말 부모·자식 세대를 이해하고 있나

선거를 치를 때마다 세대 간의 정치 성향 차이는 큰 화두가 됐습니다. 이번 21대 대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 사람을 찍을까'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세대를 말하다' 기획을 통해 다양한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세대 간의 화합과 연대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구교형 기자]

비상계엄,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위험천만했다. 그래도 계엄 사태의 격랑을 잘 극복하여 내란 책임자들이 속속 단죄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이 주요 언론들이 세대의 변화 기류, 특히 젊은 세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살핀다. 옳다. 더 기막힌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는 자신을,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며' 잘 살펴야 한다.

흔히 2030 청년 세대, 4050(5060) 장년 세대, 7080 노년 세대로 나누지만, 내게는 이게 그저 학문적·시사적 분석이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 내 부모와 내 자녀의 이야기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더 나은 변화가 필요하다면 시급히 '사람 이야기'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화 투사들은 왜 '내로남불의 아이콘'이 됐을까
 민주화 투쟁을 했던 이들은 왜 '내로남불'의 아이콘이 됐을까
ⓒ 연합=OGQ
나는 1966년생이다. 우리는 베이비붐의 막차를 탄 세대로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반공 분위기는 아주 익숙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김일성이 쳐들어온다'라는 공포가 컸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진짜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나 역시 떨었다. 그래서 곧이어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서울의 봄' 내막을 당시에는 몰랐던 나는 너무 안심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1985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세계관이 뒤집히는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구한 구세주로 여겼던 대통령 전두환은 무고한 민간인을 군대로 학살하면서 정권을 잡은 역적이며, 대한민국의 전부로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집권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배우며 내 사고는 빠르게 변했다. 더구나 은인의 나라로만 알던 미국이 바로 그 독재정권을 비호했으며, 그 불의한 현실들이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근본적인 모순과 관련된 것임도 배우며 충격은 계속되었다.

우리 세대에게 (박정희보다) 자기 국민을 죽인 전두환 독재는 절대 악이었으며 그 절대 악을 향한 저항과 투쟁은 다 옳게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를 지금껏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민주와 반민주였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정권, 또 군부독재는 벗어났으나 정통 야당의 길을 벗어던지고 기득권에 투항했다고 여겨진 김영삼, 친재벌 이명박, 독재자의 딸 박근혜, 그리고 가장 몰상식한 난동을 벌인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보수정권은 곧 반민주 세력과 동일시되었다. 또 이 모든 대한민국의 모순이 분단체제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기에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힘을 쏟았다.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 계엄령 사태에서도 보듯이 이는 지금까지도 상당 부분 옳다.

그러나 청년 시절을 벗어나 30~40여 년 흐른 지금 우리 세대는 놀랍게도 말만 잘하는 '내로남불 아재'로 통한다. 우리 세대는 사회 약자와 민중을 위해 싸웠다고 자부하지만, 사회적 통계는 그와는 또 다른 일면도 보여준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소위 86세대는 한국의 개발독재 고성장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1997년 IMF 사태 때는 이미 30대에 접어들어 취업은 했지만(반면, 20대는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퇴직당하기는 아직 너무 어려서(45세면 정년퇴직인 '사오정') 살아났다. 반면 10년 후인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우리 86세대는 선배들이 IMF 때 상당히 정리된 덕에 이미 든든한 중간 관리자가 되어 노동 유연화의 화살은 다시 후배 세대들이 맞았다. 두 번에 걸친 천운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40대에 접어든 2010년대 이후에는 이미 사회 중견층으로 스스로 자산을 만들어 낸 데다가, 대한민국 자산 형성 1세대인 부모 유산까지 상속받기 시작하며 실질적인 자산가로 등장한다. 이제 5060인 우리 세대는 이미 평균 연봉, 부동산 및 주식 수익을 가장 많이 올리며 자녀들에게는 교육 불평등을 굳혀나간 세대이기도 하다.

이 모든 양면성이 입만 열면 옳은 소리를 하지만, 사회경제적 참사는 용케 비켜 가고, 혜택은 누려온 위선적 기성세대처럼 보인 것이다. '민주투사'와 '내로남불 아재'는 어느 하나만 맞고 나머지는 틀린 게 아니라 둘 다 우리일 수 있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가장 노른자 위를 자치한 기득권자로 통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경멸했던 부모 세대... 이제야 그들의 삶이 보인다
 이제야 부모 세대의 삶을 깨달을 수 있게 됐다.
ⓒ pexels
나는 이제 1931년, 1934년생 우리 부모를 떠올려본다. 전형적인 86세대 분위기를 장착해 모든 것을 논리적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해 오던 나는 젊어서 부모 세대를 불신하고, 경멸했다. 독재 정권의 불의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6.25 잿더미에서 벗어나게 된 경제발전만을 찬양하고, 자기 가족이 잘 먹고 잘사는 데만 몰두하는 어른들을 천박하게만 보았다.

그러나 이제 나도 어르신들의 피곤했던 삶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들은 어려서 일제 강점기를 보냈고, 청소년 시절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었고, 잿더미 위에서 가난과 수많은 정변(5.16 쿠데타, 10월 유신, 12.12 쿠데타)을 겪으며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는데 모든 인생을 걸었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들의 일생을 사회적 전기처럼 보여준다.

1934년생 내 어머니는 소학교(이게 학력의 전부다) 때 언니들이 정신대라는 곳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고, 한국전쟁 때는 군인들을 피해 외가 친척 집 외양간 다락 같은 곳에 숨어 지냈고, 결혼해서는 남편과 5남매 뒷바라지를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요 사명인 줄 알고 사셨다. 그러나 나이 마흔여덟에 갑자기 남편을 잃고 남은 5남매 뒷바라지에 개가(改嫁)는 꿈도 못 꾸다가 90대에 접어든 지금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 채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내 어머니에게 개인 행복이니 자아 성취 같은 개념은 사치였다. 자식들 입에 밥숟가락 들어가는 것만이 기쁨이었다.

'진보 아재 목사'의 설교가 무의미해질 때
 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9일 오전, 유권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사전투표소(옛 신촌동 주민센터)에서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다.
ⓒ 정초하
나는 서른 살이던 1995년 결혼해 1997년생 딸과 1999년생 아들을 둔 아버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사회정치적 격변과 더불어 새삼 이 세대를 주목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이 세대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자녀 세대를 잘 모른다. 자식들을 잘 모르면서도 잘 아는 척하는 게 우리가 이들과 더 멀어지는 진짜 이유 같다. 우리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부모였어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가 자녀 세대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건 우선 그들이 살아온 20~30년이 밖으로는 화려하고, 편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냉전체제가 끝난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까지 진입한 대한민국의 화려한 성공에 선 첫 세대다. 휴대전화와 초고속 인터넷이 일반적이고, 다양한 첨단 가전제품들이 일반화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관공서, 대중교통, 생활 소비와 물류의 편의에 치안까지 서구 선진국 여행자들도 놀랄 만큼 모든 공공서비스가 빠르고 편리하다. 한류열풍·방탄소년단·한강 노벨상 등 세계적 문화강국이 되었고, 해외여행과 다문화가 일상이 되어 국제화 시대다. 모든 객관적 지표는 단군 이래 최고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비참하고 막막하다. 이미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한국경제는 오랫동안 활력을 잃고, 젊은이들이 들어갈 변변한 일자리는 바늘 끝에 가깝다. 집값과 생활물가는 나날이 오르고, 소득과 재산 격차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사회적 박탈감은 심해진다. 더군다나 경제력도 외모도 자신 없는 '나 같은 루저'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모두 화려하고, 건강하고, 매력적인데, 자기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낄 때 그 우울함과 절망감은 더 크다. 청년 사망원인 단연 1위는 자살이다.

'진보 아재 목사(나)'는 "그럴수록 꿈을 품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여 꿈을 이루라"라고 설교하지만, 많은 젊은이에게 나눔과 연대는 사치나 망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공격적 분위기의 소셜 미디어는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가뜩이나 작은 네 몫을 장애인·여성·소수자·농민·외국인 노동자(중국인)가 빼앗아 간다고 선동한다.

기성세대는 이를 '이기적'이라 꾸짖지만, 어려서부터 친구도 사귀지 말고 그럴 시간에 공부해서 성공하라고 가르친 건 바로 그 어른들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키워 놓고, 이제와서 뭘 어쩌라고?' 그래서 그들은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를 내세우지만, 그럴수록 출신·배경이 좋고 '아빠 찬스'까지 동원할 수 있는 금수저들 좋은 일만 시킬 가능성이 높다.

'자기 서사'에 갇히지 않는 태도가 중요해

내가 속한 세대, 또 부모·자식 세대에 대해 펼쳐놨지만 수습할 능력이 내겐 없다. 한 사람의 서사가 길고 복잡한 만큼 세대 사이의 깊은 갈등도 한순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시대, 세대) 경험이 가장 강렬하고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다시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아쉽고, 그래서 무조건 '옛날이 좋았다'고 기억하는 왜곡도 발생한다.

또 우리가 어려서 어른들에게 늘 들었던 "너희가 전쟁을 알아?"라는 말처럼, 자기 시대(세대)의 경험이 모든 세대, 모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표준이라는 착각에도 빠진다. 그로부터 30~4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세대도 오직 80년대 독재와 민주화 투쟁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는 습관이 생긴 건 아닐까? 반면, 지나온 세월의 경험을 내세워 말하기에는 2030은 너무 젊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흘러온 시간보다 지금과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이렇듯 우리는 각자의 서사에만 갇혀 다른 시대,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정치는 참으로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모든 모순과 소중한 내 인생 과제를 정치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건 위험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대 간의 대화가 절실하다.

나이 60이 가까운 지금에야 무식하고 천박하게만 여겼던 부모 세대의 서사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처럼, 자기 서사에만 갇혀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넓고 깊다. 특히 우리 자녀 세대의 삶은 정말 중요하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라고 한숨짓게 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다른 세대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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