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최원영 2025. 7. 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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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아픔을 겪어내는 삶, 사람에 대하여

[최원영]

"요즘 많이 바쁘시죠?"

의정 갈등으로 인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건네는 말이었다. 안쓰럽게 바라보는 걱정 어린 눈빛이 무색할 만큼, 응급 중환자실로 발령받은 이래 가장 한가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할 때마다 살짝 민망했었다. 물론 같은 병원이라도 부서의 사정과 맡은 역할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내 상황 만을 얘기하자면 그렇다.

서울대병원 응급센터는 크게 응급실, 단기 응급병동, 응급 중환자실로 나뉜다. 응급센터는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부족해져 병상을 많이 축소해서 운영하고 있다. 응급실은 환자 수의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은 환자를 아예 받지 않고 있다. 단기 응급병동은 의사가 부족해서 아예 폐쇄해 버렸다. 내가 일하는 응급 중환자실 역시 병상을 다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는 10명 안팎으로, 평소의 절반을 조금 넘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덕분에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확 줄어들었다.

환자가 없으니 당장은 몸이 편하고 한가해서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원래라면 여기로 왔어야 하는 환자들은 그럼 다 어디로 간 걸까, 어딘가에서 잘 치료받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보면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몇 시간을 떠돌았다거나,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등의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그런 것들이 내 상황과 무관한 일이 아니기에 이 한가함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엉겁결에 중환자 대 간호사 인력 비율이 선진국처럼 거의 1대 1이 되어버렸다. 분명 오래전부터 바라던 일이었는데 그게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주어지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누군가는 이 상황으로 인해 고통 받는데 나만 혜택 받는 것 같아 괜한 죄책감만 들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수간호사님을 찾아가 이참에 뭔가 시스템을 개선할 만한 게 있는지 찾거나 한시적이나마 여유 시간에 환자들을 위해 뭔가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건의해 봤지만, 말 그대로 이 상황 자체가 "한시적"이기 때문에 일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생각만 많아진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예전에 내가 간호사 문제와 관련해서 노동조합과 간호사단체 등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시기에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내게 걱정 섞인 말투로, 그러나 약간은 냉소적으로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 말했었다. 당장이야 인력 문제만 해결되면 그간 너무 바빠 환자에게 잘 못 해준 것들을 다 해줄 것 같겠지만, 막상 그렇게 되더라도 간호사들 상당수는 지금까지 하던 것만큼만 하고 나머지 여유시간에 인터넷 쇼핑이나 할 것이라고 말이다.

당시에는 그 말을 부정하며, 적어도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한가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기껏 떠올려서 해준 일이라곤 머리가 긴 환자분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서 묶어준 게 전부였던 것 같다. 다른 간호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거나 모여서 수다 떨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대학원 과제를 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한가한 나이트 근무 날이었다. 어둡고 고요한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의 방식대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대학원 과제를 하면서 제각각 자기 시간을, 인생의 파편을 짜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 같은 공간에 있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천장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조금 슬퍼졌다. 늘 보던 장면인데 그날따라 그게 왜 그렇게 슬픈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한가해서 너무 다양하게 시간을 보내는 간호사들과 그렇지 못한 환자들의 극명한 대비가 도드라져서 그랬을까.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는다면 끔찍할 것 같다는 상상은 많이 해봤지만, 정작 중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졸업하면 뭐 할 거야?' '여름휴가 계획 있어?' '연말에 뭐 할 거야?' 이렇듯 가깝고 먼 미래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이들 질문하고 고민하지만 '근데 나중에 혹시라도 중환자실에 가게 되면 뭐 할 거야?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이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환자가 된다는 가정 자체가 일단 기분이 나쁘고 실례되는 질문일 뿐더러, 혹시나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런 예외적인 상황은 "정상적"인 삶에서 잠시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옵션은 없는 셈이다.
 의사 인력 부족으로 가동되지 않고 있는 응급 병상들. ‘여기로 왔어야 할 환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잘 치료받고 있는 걸까.’
ⓒ 최원영
오래전에 봤던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사고로 인해 온몸이 마비된 주인공 '장 도미니크 보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보비는 전신마비로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통해 눈 깜빡임으로 알파벳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15개월 동안 20여만 번의 눈 깜빡임을 통해 자전적인 소설을 써내려갔다. 출간 후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화화되었고, 영화 역시 칸, 골든글로브, 세자르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 상들을 휩쓸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 중에는 보비보다 신체의 더 많은 부분을 움직일 수 있고 더 적은 도움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베스트셀러를 쓰고 세계 영화제를 휩쓸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아픈 것은 비정상이고 비일상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플 일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앞으로의 인생은 계속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에서도 어떤 유의미한 것들을 추출해낼 순 없을까.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답게, 이 글을 편지처럼 마무리하려 한다. 이 편지를 읽을 이름 모를 벗에게 묻고 싶다.

"만약 중환자실에 가게 된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중환자실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힌트를 얻길 기대하며 너의 답장을 기다릴게. 안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최원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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