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펜을 꺼낸 사람들... '어반 스케쳐스'를 아시나요?

박수정 2025. 7. 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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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서서, 마주한 풍경을 그리는 시간.

이 기록이 누군가의 기억 속 풍경과 닿기를 바랍니다.

스케쳐(sketcher)들의 안전을 우선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피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공공의 정서를 고려한 운영진의 신속한 판단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빗속 드로잉은 그 공간이 품은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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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23곳에서 열린 어반 스케쳐스 모임... 카페 창 너머로 전태일 기념관을 그리다

잠시 멈춰 서서, 마주한 풍경을 그리는 시간. 이 기록이 누군가의 기억 속 풍경과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도시도 언젠가 제 스케치북 안에서 만나게 되길 바라며. <기자말>

[박수정 기자]

어반스케쳐스 서울(USK Seoul)의 7월 정기모임은 원래 여의도 물빛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일 이어진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한강변 역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영진은 모임 전날 저녁 '각자의 자리에서 드로잉하고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모임 방식을 전면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23곳에서 펼쳐진 번개 드로잉,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로
▲ USK서울 정모-맞은 편 카페 창 너머로 그린 전태일기념관 전태일기념관 외관을 마주한 창가에서 드로잉한 풍경. 건물 파사드에는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고 쓴 자필 편지가 텍스트 패널로 부착되어있다.
ⓒ 박수정(아우름)
참여자들이 흩어진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드로잉을 진행하고 이를 온라인에 공유한 이번 정기모임(정모)은, 단순한 기상 대응을 넘어선 결정이었다. 스케쳐(sketcher)들의 안전을 우선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피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공공의 정서를 고려한 운영진의 신속한 판단이었다. 스케치를 사랑하는 이들이지만, 무엇보다 '함께 그리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것'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전환이었다.

모임 당일인 지난 19일에는 다행히 큰 비는 내리지 않았고, 한때 하늘이 개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누적된 피해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오프라인 집결을 피한 결정은, 공동체 예술 활동에 대한 배려이자 연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모두의 번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7월 정모는 서울과 수도권 23곳에서 자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스케쳐들은 광장시장, 종로 골목, 세운상가 공중 다리, 시청역, 세종문화회관, 노들섬, 김포 55갤런카페, 더현대서울, 폴바셋 광명점, 화성 등지에서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그림으로 기록해나갔다.

이날 오전, 필자는 그림 친구 한 명과 함께 전태일기념관 외관을 마주한 카페에 앉아 드로잉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창밖으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기념관 건물 위에는 전태일 열사가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근로감독관에게 보냈던 편지의 문장이 선명하게 걸려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빗속 드로잉은 그 공간이 품은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게 했다.

이후 '30분 드로잉 번개팀'에 합류해 종로 골목과 세운상가 공중다리를 따라 짧고 밀도 있는 어반스케치를 이어갔다. 이동하며 그리는 속도감 있는 스케치는 도시의 일상과 흐름을 즉흥적으로 담아내기에 제격이었다.

마음으로 연결된 '스케쳐'들
▲ 30분 드로잉 번개팀에 결합해 그린 결과물 세운상가 공중다리위에서의 30분 드로잉과 종로2가 골목에서의 30분 드로잉
ⓒ USK서울
마지막 여정은 광장시장이었다. 이곳에서 열린 뒤풀이 번개에서는 육회와 전, 맥주잔이 오가는 가운데, 30분간의 현장 드로잉에 대한 소감이 오가고, 각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도심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부 스케쳐들은 시장의 활기찬 풍경을 즉석에서 다시 펜을 들어 담아내기도 했다.

스케쳐들은 펜, 수채화, 연필, 마카 등 다양한 도구로 자신만의 감각과 시선을 표현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워진 드로잉에는 거리의 활기,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순간의 빛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번 정모는 오프라인 집결 없이도 예술적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자리였다.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도시를 바라본 스케쳐들의 시선은 온라인을 통해 하나의 정모로 이어졌다.

다가올 오는 8월 정모에 대한 기대도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 이번 7월의 기록은 단지 그림 몇 장을 남긴 날이 아니었다. 흩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함께였던 하루, 그 속에서 우리는 도시를 그리고 시대를 읽었으며, 예술로 서로를 잇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특별한 정모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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