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이 모두 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사연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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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5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그린 삽화. 주남마을 앞 5.18사적지 표지석과 함께 선 안내판에 그려져 있다. |
|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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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45년 전 그날 계엄군이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현장이다. |
| ⓒ 이돈삼 |
계엄군은 미니버스를 인근 하천에 밀어 넣고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이 사실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여고생 홍금숙과 공수부대원 최영신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사망자에는 손옥례, 김춘례, 박현숙 등 10대 여성 4명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손옥례는 가장 잔인하게 희생됐다. 아랫배에 총탄 7발을 맞고, 왼쪽 가슴은 대검에 찔렸다. 온몸은 두들겨 맞아 두부처럼 짓이겨져 있었다. 계엄군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말의 진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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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마을 앞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숨진 손옥례의 묘. 손옥례는 아랫배에 총탄 7발을 맞고, 왼쪽 가슴은 대검에 찔렸다. 국립5.18민주묘지에 그의 부모가 함께 모셔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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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마을 뒷산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 큰 부상을 입은 채 계엄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총살을 당해 암매장된 양민석과 채수길의 시신이 발굴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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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마을 뒷산에 암매장된 시신은 5·18 이후 발굴됐다. 주민 신고로 수습돼 망월묘역에 묻혔다. 총살돼 암매장된 시민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양민석과 채수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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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마을 벽화의 일부. 미니버스 희생자와 생존자를 사슴으로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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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버스를 형상화한 시내버스 정류장. 주남마을 앞 도로변에 설치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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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엔 계엄군끼리 오인 사격이 일어났다. 도청 재진입을 목표로 한 상무충정작전을 위해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주남마을에서 광주공항으로 가던 중, 효천역 인근에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보병학교 교도대의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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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월동과 송암동은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곳이다. 사진은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광목간 도로 진월동 구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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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월동과 송암동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와 나주를 연결하는 광목간 도로변은 계엄군의 광주 봉쇄작전 이후 민간인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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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다가 총을 맞은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의 묘.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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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광주교도소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당시 이곳은 제3공수여단이 주둔하며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에 총격을 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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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수는 도심에서 붙잡은 시민을 태운 군용탑차에 분말 최루탄을 터트려 9명을 질식사시켰다. 3공수 본부중대 병장의 증언이 있었지만, 이들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3공수는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을 공격했다. 담양군민 고규석과 임은택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계엄군은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에 맞선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희생자는 집으로 향하던 무고한 시민이었다.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도 아닌, 계엄군의 일방적인 사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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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관현 열사와 김남주 시인이 갇혔던 옛 광주교도소 내부. 교도소가 삼각동으로 옮겨가고 5.18 40주기를 맞아 한때 개방된 5년 전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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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
김남주 시 '학살1'의 일부분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광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김남주는 교도소 밖 상황을 전해 듣고 많은 옥중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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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흥동 고가도로에서 본 옛 광주교도소 풍경. 높은 담과 감시탑에서 오래 전 교도소였음을 직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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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매일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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