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건국대통령 NO" 외치며 이승만 학술강연회 열어

이정윤 2025. 7. 21. 10: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대대통령이면 충분하다"… 이승만 미화에 맞서 역사 바로 세우기

[이정윤 기자]

 광복회 주최 ‘초대대통령 이승만 바로보기 학술강연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승만 건국대통령 NO! 이승만 초대대통령 YES!"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 광복회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지난 19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초대대통령 이승만 바로보기 학술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거 60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건국대통령'이라는 호칭의 적절성에 대해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이번 학술강연회는 (사)건국대통령이승만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이승만 건국대통령 서거 60주기 추모식'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맞춰 진행하여, 광복회가 역사적 소임을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종찬 회장은 기조강연에서 "이승만은 분명 역사에 기록될 인물이지만, 그를 '건국대통령'으로 신격화하려는 시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광복회는 "'초대대통령이면 충분하다'는 구호 아래, 이승만의 정책 실패와 반민특위 탄압 등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는 포스텍 고정휴 명예교수와 역사문제연구소 이강수 연구위원이 각각 '이승만과 그의 시대', '이승만의 정책 실패와 반민특위 탄압'을 주제로 발표했다. 강연에 앞서 "건국대통령 NO! 초대대통령 YES!"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됐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민주주의를 억압한 권위주의… "이승만 체제의 역설"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초대대통령 이승만 바로보기 학술강연회’에서 「이승만과 그의 시대에 대하여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광복회
이날 강연에서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는 "이승만은 말과 글의 장인이자 웅변가였지만, 그의 언어는 민주주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고 지적하며, 권위주의 체제로서의 제1공화국이 오늘날 남긴 유산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고 교수는 이승만의 정치 스타일을 "제도와 절차보다 개인적 권위에 의존한 통치 방식"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그 배경에 유교적 가부장제, 기독교적 메시아주의, 엘리트주의적 사고가 혼재되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를 중시했으며, 외형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다원성을 말살하는 체제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승만 정권의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정적 제거, 언론 통제 등 제1공화국 시기의 대표적 사례를 제시하며 "이 모든 것은 권위주의 체제의 전형적 징후"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승만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위기 상황을 조성하고, 북진통일·반공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던 방식은 전시체제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공이 국시가 되는 순간, 반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수단으로 전락한다"며 이와 같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는 오늘날까지도 극복되지 못한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지적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프레임을 구축했던 윤석열 정권의 행태와도 겹쳐지며, 제1공화국의 잔재가 오늘날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환기시켰다.

고 교수는 "역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단절의 서사가 아니라, 연속성과 성찰의 과정이어야 한다"며 "'건국대통령'이라는 신화적 호칭은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단절이 아닌 계승의 역사, 권위가 아닌 시민의 힘, 성찰과 연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강연은 "이승만 체제에 대한 비판은 특정 인물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친일을 했어도 반공이면 애국" 이승만이 해체한 '반민특위'의 진실
 역사문제연구소 이강수 연구위원이 ‘초대대통령 이승만 바로보기 학술강연회’에서 ‘이승만과 반민특위’를 주제로, 이승만 정권 아래서 친일 청산이 어떻게 무력화됐는지를 조명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 광복회
이 날 학술강연회의 두 번째 강연은 이강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았다. 이 연구위원은 '이승만과 반민특위'를 주제로, 이승만 정권 아래서 친일 청산이 어떻게 무력화됐는지를 조명했다.

이강수 연구위원은 발표 서두에서 "이승만 정권과 반민특위의 충돌은 단순히 개인이나 정권의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친일청산의 기회를 놓쳤는가'에 대한 집합적 성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5년 미군정의 한반도 통치 구상, 즉 '신탁통치'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 구상이 실제로는 한국의 독립 경험 부재와 정치 주체 부재를 전제로 한 '행정적 실용주의'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를 의도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으로 왜곡하여 반공 프레임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친일 인사들을 '기술관료'로 재활용 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1948년 제헌헌법 제101조가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벌의 근거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반민법은 일제강점기 악질 친일파를 처벌하라는 헌법의 명령에 따라 제정된 특별법이었다"며, 이를 무력화시킨 과정은 '법 위의 정치'가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승만 정권은 '국론 분열'과 '민심 혼란'을 이유로 친일파 청산을 지연시켰다. 심지어 국회의사당에 "친일 청산 주창자는 공산당의 주구"라는 내용의 삐라가 살포되었고, 반민특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경찰 테러, 암살 모의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른바 '반민특위 요원 암살 모의 사건'은 경찰과 친일 인사들이 공모한 사실이 재판 기록을 통해 드러났지만, 대부분 무죄 처리됐다.

이 연구위원은 "주한 미국대사의 보고서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명시돼 있다"며 "반민특위가 무너진 것은 단순한 외압이 아닌,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정의를 파괴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이승만 정권이 '반공은 애국'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활용해 친일 세력을 우익의 주체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이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이 처음부터 신탁통치를 주장했음에도, 이승만은 그것을 소련 탓으로 돌리고 좌익 몰이에 활용했다"며, "반탁=애국, 찬탁=매국이라는 이분법 구조 속에서 친일파는 말 그대로 '애국자 코스프레'에 성공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구도 속에서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오히려 좌익으로 몰려 탄압받았고, 그 결과 친일 청산이 완결되지 못한 채, 일부 인사들이 이후 정치 세력에 편입되면서 오늘날 정치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이승만을 지키려는 정치적 움직임, 오히려 그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19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이승만 바로보기 학술 강연회 환영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신격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강연회를 반대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건국 대통령이라는 왜곡된 역사 서술에 맞서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광복회
이번 광복회 '이승만 바로알기 학술강연회'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반공은 강조하면서도, 친일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는가?"

이승만 정부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결과적으로 친일 청산의 과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반민특위의 해체는 당대 국가 권력이 정의 실현의 기회를 놓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로 인해 친일 청산의 과제는 현재까지도 완결되지 못한 채, 일제강점기와 단절되지 않은 권력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결국 '이승만 건국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역사 평가를 넘어선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역사 해석의 갈등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둘러싼 깊은 논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 스스로도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임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그를 '건국대통령'으로 소비하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그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모독이 될지도 모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