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복용하는 의약품의 효능과 부작용은 누구 중심입니까?
[서은솔]
의약품의 개발사와 젠더
교과서를 펼쳤을 때 보이는 인체모형, 장기가 누구의 것이라는 의문을 가진 적 있는가? 보통은 성인 남성이다. 교과서와 논문 속 질병의 유병률과 증상 역시 주로 남성 위주로 기술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의약품의 이용에서도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심근경색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복용하는 아스피린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효과적이다(Ridker 외, 2005). 수면제인 졸피뎀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크게 반응하여, 졸피뎀을 복용했을 때 여성의 운전능력 저하가 남성보다 5배는 높다(Farkas 외, 2013).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하면 여성과 남성의 신체는 다르기 때문이다. 약물이 신체의 영향을 받아 필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변환되고, 이동하는 몸속 경로도 성별에 따라 사뭇 다르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은 약동학(Pharmacokintics)이다.
약동학은 약물이 신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구체적으로 약물은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약물이 투여된 후 혈류로 들어가는 과정이 흡수, 이후 체내 조직으로 퍼지는 과정이 분포, 생체 내에서 화학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이 대사, 마지막으로 소변이나 땀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나가는 과정이 배설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기준이 되는 신체는 대부분 성인 남성의 신체다. 그러나 여성은 근육량과 체지방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약물의 결합 정도나 분포 속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심혈관계 약물의 경우 여성과 남성 간 효과나 부작용이 크게 다를 수 있다. 간에서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도 역시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졸피뎀처럼 여성에게 더 낮은 용량이 권장되는 약물도 있다. 또한 신장 기능도 성별 차이를 보인다. 신장으로 유입되는 혈류량과 사구체 여과율(GFR)은 일반적으로 남성이 더 높아 약물 배설이 빠른 반면, 여성은 약물 제거가 느려 '디곡신' 같은 약물에서 부작용 위험이 더 클 수 있다. 이처럼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의 모든 단계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며, 이는 치료 효과와 부작용의 차이로 이어진다(Baggio 외, 2013 ; Yang 외, 2014).
성별에 따른 약물반응 차이의 시작, 임상시험
성별에 따라 의약품별 신체적 반응이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아가 의약품에 대한 성별 간 차이는 단지 생물학적 차이에 그치지 않고, 의약품 개발 과정의 역사적 편향에서 비롯한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임상시험은 의약품을 개발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로, 의약품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한다.
그러나 입덧약으로 사용된 '탈리도마이드'로 기형아가 태어난 사건 이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임산부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을 임상시험에서 배제했다. 잘 설계된 임상연구를 통해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기보다, 그들을 배제함으로써 임상시험을 진행시키기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임산부를 배제함과 동시에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라는 광범위한 정의의 배제조건이 만들어진다(Benjeaa&Geysel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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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과 남성의 약물 반응 데이터를 분리해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밀하고 성별에 민감한 의약품 안전성 및 효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
| ⓒ AI 생성 이미지 |
임상시험에서 성별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임상시험 참여자의 성비를 1:1로 맞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질병의 성별 유병률을 반영해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임상시험 이전 단계인 동물 실험에서도 대부분 수컷 동물만을 사용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동물실험과 초기 임상시험부터 여성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성별에 따른 약물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성별분리 통계'의 수집과 분석이 필수적이다. 여성과 남성의 약물 반응 데이터를 분리해 분석함으로써, 보다 정밀하고 성별에 민감한 의약품 안전성 및 효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Benjeaa&Geysels, 2020).
이러한 문제를 단순한 과학적 편향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며, 이는 의료체계 전반에 내재한 구조적 젠더 불평등의 일환이다. 젠더 불평등은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흔히 임신중지나 산부인과 의료 접근과 같은 직접적인 차별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나 보건의료, 특히 의약품 이용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훨씬 더 은밀하고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별 및 젠더 차이를 인식하고 반영할 수 있는 '페미니즘 렌즈(Feminist Lens)'를 보건의료 정책과 실천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렌즈는 남성 중심의 기존 시각과 구조를 재구성하고 건강과 보건의료체계 내 권력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젠더 불평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성별 차이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는 젠더 정체성의 다양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젠더에 따른 건강 영향과 의료 접근성의 차이를 환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로 나아가기 위해 '젠더의학(gender medicine)'이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서은솔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약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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