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학맥, 회연서원을 걷다

여경수 2025. 7. 21. 09:5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를 다녀왔다.

일요일 오전에는 성주 10경 중 하나인 회연서원을 찾았다.

성주군에서 운영하는 문화관광해설 프로그램을 미리 신청해, 회연서원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 에도 성주가 한강 정구의 고향임이 기록되어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경수 기자]

지난 주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를 다녀왔다. 일요일 오전에는 성주 10경 중 하나인 회연서원을 찾았다. 성주군에서 운영하는 문화관광해설 프로그램을 미리 신청해, 회연서원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날 수 있었다.
 회연서원 입구
ⓒ 여경수
회연서원은 조선 시대 학자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민들이 세운 서원이다. 정구의 호는 한강이며, 그는 외증조 김굉필의 도학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퇴계학과 남명학을 융합해 새로운 학통을 세웠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성주가 한강 정구의 고향임이 기록되어 있다.

정구는 회연초당을 세우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제자들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했다. 낙동강은 내 고향 구미를 가로지르는 강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고산 황기로의 매학정, 여헌 장현광의 부지암 이야기를 들으며, 강을 따라 흐르는 유학의 전통을 어렴풋이 짐작해 왔다. 구미의 월암서원과 동락서원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경치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1627년, 정구의 제자들이 그가 머물렀던 회연초당 터에 서원을 세우고 '회연서원'이라 이름 붙였다. 이후 숙종 16년(1690년)에는 왕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함께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회(檜)'는 전나무를 뜻한다.

서원 입구에는 '현도루(見道樓)'라 불리는 누각이 있다. 일반적으로 '見'은 '볼 견'으로 읽히지만, 높은 이를 만날 때는 '뵐 현'으로 발음된다. 예컨대 '알현(謁見)'의 '현'처럼 말이다. 회연서원에는 정구의 문집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으며,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는 설과 숙종의 친필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회연서원 강당
ⓒ 여경수
서원 내부에는 교육 공간인 강당, 정구의 위패를 모신 사당, 유생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유물을 전시한 숭모각, 성주 지역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한 향현사 등이 있다. 특히 앞뜰인 백매원은 정구가 직접 가꾼 공간이다. 지금은 그곳에 그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서원 옆으로는 대가천이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무흘구곡'이라 불리는 아홉 개의 경승지가 이어진다. 제1곡 봉비암(성주)부터 제9곡 용추곡(김천)까지 펼쳐진다. 우리는 회연서원 뒷길을 따라 봉비암까지 걸어올랐다.

바위에 앉아 대가천과 그 너머 들과 산을 바라보니, 아득한 시간 속 성주의 옛 풍경이 바람결에 되살아오는 듯했다. 그 정경 속에서 정구와 제자들의 사색과 학문이 스며든 시간이 한 장의 수묵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 풍경은 겸재 정선의 붓끝에도 담겼으며, 그 그림은 오늘날까지 회연서원의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