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행정구역’ 엇박자, 지역 정치권이 책임있게 나서야
윤호중 장관, '행정구역' 해소 전제에...압박감 커진 '시간 싸움'
주민투표 '8월' 마지노선 사실상 물 건너가...'9월'엔 가능할까
행정구역 '2개 vs 3개체제' 입법 혼선문제 조속한 해결이 관건

2026년 7월 출범 목표로 추진돼 온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적용을 위한 준비 시간이 이제 11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최종 확정할 주민투표 실시 여부가 아직까지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정은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주민투표 시행 후 최소 1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며 주민투표가 완료돼야 할 마지노선을 6월로 제시했다. 이후 '8월'로 제시했다.
'8월 마지노선'은 12.3 내란사태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의 상황으로 6월 내 실시가 불투명해지면서 목표시점을 2030년으로 늦춰야 한다는 연기 불가피론이 대두되자 조정된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8월'도 이미 물 건너갔다. 주민투표 절차를 아무리 서둘러 한다 하더라도, 최소 한달은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빨라야 '9월'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8월까지는'이라고 강조해온 오영훈 지사도 마지노선을 다시 조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주민투표가 10월까지만 실시되더라도 내년 지방선거 적용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8월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정부의 결단에 의해 막바지 극적 성사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일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분위기는 제주도정이 그렸던 흐름도와도 거리가 있는 것이다.
제주도정 입장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 전폭적 호응 속에 주민투표 준비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민투표를 통해 기존 행정시에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가 대선 공약집에 포함되면서 기대감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기다렸던 이재명 정부의 첫 행정안전부 장관 임명이 이뤄진 시점에서, 상황은 더욱 묘하게 흘러갔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이 후보자 지위에 있던 지난 주 열렸던 인사청문회에서 "주민투표에 올리기까지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며 회의적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는 기초단체를 과거처럼 4개(4개 시.군체제가 아니라 (행정구역을) 2개 아니면 3개로 부활하자는 논의가 아직도 진행 중인데, 어느 쪽으로 선택이 돼야 주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의 서면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제주도 주민투표에 대한 적극적 검토 의지를 밝히면서도 전제 조건에 다름없는 원칙적 내용을 제시했다.
그의 입장은 "주민투표를 전제로 한 기초자치단체 설치에 대해 검토할 수 있으나, 주민투표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행정구역' 쟁점에 대한 사전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입장은 주민투표 실시 요구권자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제주사회 주목도는 컸다. 현행 제주특별법 제10조 2항은 "행안부 장관은 제주자치도의 계층구조 등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도지사에게 주민투표법 제8조에 따른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윤 장관의 입장은 상당히 무겁게 전해질 수밖에 없다. 답변의 내용도, 즉문즉답이 아니라 내부적 논의와 검토를 통해 제시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 기초자치단체 도입 무산되면, 책임은?
'행정구역' 쟁점에 대한 사전 해소 필요성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가 추진 중인 개편안의 지역 내 공감대 형성 여부 등 주민투표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 후에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는 점도 밝혔다.
즉, 행정구역 쟁점 해소와 지역 내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긍정'보다는 '부정'의 뉘앙스가 강하게 다가온다. 이 대통령의 대선 약속인 '주민투표를 통한 기초자치단체 설치'는 강조하면서도, 전제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임을 역설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주민투표가 불발돼 내년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무산되더라도,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이 아니라 제주도 귀책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에 다름 없다. 서면답변의 내용적 틀도 무산되는 상황에 대비해 그 책임이 정부가 아니라 제주도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기 위한, 프레임이 설정된 구성 아니냐는 시각이 표출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도의회 의견수렴 생략' 가능, 법적 근거는?
물론 윤 장관의 답변 중에는 다소 기대감을 갖게 하는 부분도 있다. 시간적 촉박함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주민투표 후 법률절차를 최소한도로 압축해 실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점이다.
"행정구역 개편 시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견수렴을 거쳐 법률 제정이 필요하나, 주민투표를 실시한 경우 지방의회 의견수렴은 생략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주민투표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실시한다면, 보통 60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 중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이 '30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는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다. 주민투표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받은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공표하여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 이내에 그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제8조 2항)하고 있다.
윤 장관의 설명은 주민투표가 실시된 경우 이후 절차에서는 도의회 의견청취 과정 없이 최대한 빠르게 가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지방자치법 규정을 들었다.
지방자치법 제5조 3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구역을 바꾸거나 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거나 설치하거나 나누거나 합칠 때에는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도록 하면서도,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간 제주도로서는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 제각각 법률안 발의, 주민투표 불가 명분 됐나
그러나 엄밀히 보면, 현재로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 급선무다. 도의회 의견수렴 절차 생략은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 시간적 촉박함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론의 하나일 뿐이다.
제주도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장관의 주민투표 요구 결단을 받아내는 것이 1차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민투표의 선결 과제로 제시한 '행정구역' 관련 쟁점의 해결이다.
물론 행정구역 쟁점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어차피 털고 가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윤 장관의 언급은 '사전 해소'라는데 있다. 이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주민투표가 불가하다는 의미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며 2개의 법률안이 제출된 것이 결정적 명분으로 작용한 듯 하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서귀포시)이 3개 기초자치단체(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 설치 법률안을 발의하자, 바로 뒤이어 같은 당 김한규 의원(제주시을)이 2개 기초자치단체(현행 제주시-서귀포시 체제) 설치 법률안을 발의했다. 지역 정치권에서 엇박자가 표출된 것이다.
정부나 국회에서 볼 때 기초자치단체 설치 방향성은 인정하더라도, 행정구역과 관련해서는 공감대 형성이 덜 됐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행정구역 논란은 2023년 공론화 과정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강조해 온 제주도정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한 셈이다.
제주도가 지난해 행안부에 제출한 주민투표 실시 건의문의 기초자치단체 행정구역은 '3개 체제안'이다. 행정체제개편위원회에서 권고한 내용을 수용한 결과다. 당초 제주도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의 주민투표안이 부쳐져 확정된다면, 국회도 주민투표 결과에 맞게 법률안을 처리할 것이란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쟁점 사전 해소라는 조건이 나오면서 상황은 크게 꼬이게 됐다. 무엇보다 주민투표 시행이 기약없이 미뤄졌다는 점이 무겁게 다가온다. 여기에 2개 법률안의 충돌 상황에서 제주도정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다. 쟁점 해소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행정구역' 쟁점 해결, 지역 정치권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이러한 상황이 빚어진데에는 제주도정의 책임도 적지 않다. 2건의 법률안이 발의된 시점이 지난 해 10~11월인데, 8개월 가까이 이렇다할 역할 없이 방기해 왔기 때문이다. 3개 구역 안의 정당성만 강조해 왔을뿐, 입법 대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는 것이 지방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건의 제각각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을 발의해 놓고, 원만한 조율 내지 도민사회 중지를 모아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 구역을 몇 개로 나눌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도민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도지사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서라도 도민사회 추가적 논의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도지사와 지역구 국회의원 모두 같은 당(더불어민주당) 소속임에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윤호중 장관이 서면답변을 통해 제기한 선결 과제는, 사실 도민사회에서도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제주시를 2개로 나누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크게 분출됐다. 도의회에서 관련 논의 때마다 강한 우려를 표하며 대책을 요구해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결단보다도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 더 급하고 중요하게 됐다. 입법 혼선문제를 조속한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관련 법률안을 발의한 지역 국회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지역 정치권이 조속히 논의의 장을 마련해 행정구역 쟁점 해소 방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내년 기초자치단체 출범 목표의 실현 여부는 지역 정치권의 협의 결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책임있는 논의를 기대한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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