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하다, 온마을이 쓰레기"…폭우 뒤 폭염까지 망연자실 [예산 르포]
“(치울)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어제 오후부터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이러다가 길이 막힐 거 같아요” 20일 오전 11시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 마을회관 앞. 포크레인이 마당에 쌓인 폐가구와 쓰레기를 연신 덤프트럭에 옮겨 담았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나자 마당에는 금세 쓰레기가 쌓였다. 지난 16~17일 내린 비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가전제품과 가재도구 등이 모두 못 쓰게 되면서 쓰레기 신세가 됐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닐하우스에서 썩고 있는 수박과 채소, 물에 잠겼던 축사에서 흘러나온 오물 등이 뒤섞인 냄새였다. 마을을 관통하는 작은 개천은 미처 떠내려가지 못한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으로 가득했다. 더운 날씨 탓에 주민들은 마스크도 쓰지 못하고 집안을 정리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예산은 낮 기온이 32도까지 오르면서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군(軍) 장병·주민 합심해 쓰레기 치워
주민들은 가구와 전자제품, 이불 등은 꺼내면 되지만 거실과 방을 가득 채운 흙더미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삽으로 퍼낸 뒤 다시 물로 씻어내고 퍼내기를 반복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수해 복구 지원에 나선 육군 32사단 장병들이 집안을 오가며 가구를 날라 그나마 힘을 덜었지만, 주민들은 “막막하다, 도저히 기운이 나질 않는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마을 잠긴 예산 하포리…쓰레기 산더미
김씨의 동생은 비닐하우스(시설재배) 7동이 모두 물에 잠겼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딸기 농사를 짓던 동생은 그동안 투자했던 자금과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고 한다. 김씨의 동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올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몸만 피해던 주민들 폭염에 복구작업 어려움
하포리 주민 이경호(72)씨는 “논은 그나마 쓸만한 데 수박과 쪽파, 고추 등은 싹 다 죽어버렸다”며 “마을이 잠긴 뒤 (삽교)중학교에 대피했다가 이틀 만에 돌아왔는데 이건 사람이 살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내와 함께 몸만 피하느라 차량과 트랙터가 고스란히 물에 잠겨 폐차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마을 앞 도로까지 쌓인 쓰레기 처리 난항
삽교천을 경계로 하포리와 마주한 예산 고덕면 구만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군 장병과 공무원이 투입돼 집안에 쌓인 가재도구를 밖으로 옮겼다. 구만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의용소방대원은 “그 많은 인력은 다 어디로 갔어요? 여기는 주민이 다 노인이라 군 장병이나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를 더 투입해 마을 입구와 도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해줄 것도 요청했다.

충남 시·군 "도움 손길 필요하다" 하소연
폭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홍성군도 복구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용록 홍성군수는 이날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400여 명의 공무원을 각 마을에 보냈다. 홍성군자원봉사센터는 “집중 호우로 농경지와 주택, 축사 침수 피해가 발생해 지원이 필요하다”며 전국에 자원봉사자 긴급 모집을 요청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20일 충남 당진과 예산을 찾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건의했다. 윤 장관은 “실태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팀을 구성한 뒤 각 지역에 파견하고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예산·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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