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북클럽] 예술 관련 일하던 경력단절 여성이 집에서 벌인 일

김현진 2025. 7. 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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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갤러리 2303의 대표, 강언덕 작가의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를 읽고

시민기자 북클럽 4기입니다.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글로 잘 담겠습니다. <편집자말>

[김현진 기자]

아이 방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치우고 아이가 읽지 않는 책을 옮겼다. 가구 배치를 바꾸었더니 좁아 보이던 방에 여유 공간이 생겼다.

우연히 그림 하나를 사들였는데 그걸 아이 방에 걸어주고 싶었다. 그림을 걸려면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고 그림이 잘 보이려면 주변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림의 자리를 챙기다 보니 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조금만 힘을 쓰면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방치했구나 싶었다.

말끔히 정돈되어 여유 공간이 생긴 방이 내 마음 같았다.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하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과는 다른 생각과 상상이 자라날지도 모르고. 물론 정리된 방을 보고 가장 기뻐한 건 딸아이였다. 그림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족이 사는 집을 갤러리로 씁니다
▲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 강언덕 작가는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갤러리로 열었다.
ⓒ 알라딘
삶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는 책이 있다.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강언덕, 2025년 5월 출간)가 내겐 그랬다. 집뿐만 아니라 일과 삶까지도 힘닿는 대로 잘 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삶을 정돈해 여백을 만들면 타인과 세상을 향한 문 하나를 그려볼 수 있다고, 용기내어 그 문을 열면 뜻밖의 연결로 삶이 확장될 거라고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강언덕 작가는 자신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갤러리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개방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다년간 일했으며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 뒤에도 여러 문화 정책 연구에 참여하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 관련한 일을 지속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던 차에 그림을 구매해 집에 걸었고 그걸 본 지인의 관심에 그들의 그림 구매를 위한 매개자 역할을 자처해 나섰다.

그림이 걸려 있어야 하는 곳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 삶의 맥락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그림의 최종 종착지는 미술관이 아니라 결국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 26쪽

저자는 그랬던 경험을 통해 그림의 종착지가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작가와 구매자 사이 '매개자'로서의 역할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경력 단절 여성으로 저자가 머물러야 하는 장소가 집이었고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 더욱 집을 떠날 수 없는 상황. 저자에게서 '집'이라는 공간을 갤러리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싹텄다.

집을 갤러리로 쓰겠다는 말을 처음 들은 저자의 남편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당신 미쳤어? 제정신이야?"(31쪽) 그랬던 남편은 시간이 흘러 마이너스 통장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사는 그림 애호가로 변모한다. 하우스갤러리 운영은 성공적이었고 그 집은 저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림 작가들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장소, 저자의 꿈과 작가들, 그림 애호가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장소로 거듭났다.

저자는 '지속 가능한 하우스갤러리'를 위해 '형식 따위는 과감히 털어내고', '집중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 고민했다'. '반드시 없어도 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뼈대만을 남기는 것'에 집중했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림이므로 어떤 작가를 선택할까, 어떻게 전달할까에 방점을 찍었다.

책에는 저자만의 안목과 감각으로 발굴해낸 작가들의 삶과 예술 이야기가 빼곡하다. 그들의 그림 앞에서 울고 웃으며 공명한 관람객의 따뜻한 에피소드도. 작가가 누군가의 공간에 그림을 걸고,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그림 앞에서 눈물짓는 반짝이는 사건도. 저자와 저자의 집, 하우스갤러리를 중심으로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사람들과 삶, 그리고 예술이 점점이 아로새겨진다.

밤하늘을 한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하나 둘, 어둠 속의 별이 돋아난다. 오래 밤하늘을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 안다. 책을 읽다보면 밤하늘을 바라보듯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머리 속에 하나둘 돋아난다.

그 중에는 육아나 가족을 돌보느라 그림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작가들이 그들의 여건을 이해해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저자와 인연이 닿아 삶의 다음 장(張)으로 건너가는 이야기도 들어 있다. 다음 장이란 관람객들과의 공명으로 그림과 삶이 겹쳐 풍성해지는 장(場).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가 반기는 서사이자 기다리는 세계다.

강언덕 작가의 집에서 그림과 사람이 만나고, 그림이 누군가의 집으로 옮겨가면서 무수한 선들이 그려진다. 그 연결을 타고 위로와 격려, 감동과 치유, 웃음과 함께 창조적 에너지가 흐른다. 작은 집을 열었을 뿐인데 거기서부터 무한하게 열리는 문들, 그렇게 확장되는 세계를 책은 보여준다.

삶에 새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평소 새를 좋아하고 새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나의 눈에 그림 하나가 쏙 들어왔다.
ⓒ 김현진
책을 읽고 운 좋게 저자의 북 토크에 다녀왔다. 마침 하우스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북토크라 집과 저자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하우스갤러리는 서울의 오래된 30평대 아파트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는데 눈에 확 띄이게 현대식으로 고친 것도 아니었다.

벽면을 하얗게 정돈해 여백을 마련하는 정도의 수수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이 머무는 공간.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흔한 아파트 같아 더 친근하고 편안했다. 보통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갤러리로 쓰기 위한 여백을 마련하기 위해 날마다 들였을 정성과 수고만은 짐작하고도 남았고.

손수 내린 커피를 잘 빚은 커피잔에 담아 내어주는 집. 벽에 걸린 그림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때마다 쉽고 친절하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무궁하게 펼치는 저자. 그 집에 머무는 동안 다정하고도 믿음직한 환대를 받았다.

원하는 일과 삶을 일구기 위해 힘껏 자신을 쓰며 집과 삶을 돌보고 정성을 쏟는 저자의 모습에서 커다란 영감을 얻었다. 뜻하는 일이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집이든 나 자신이든, 타인과 세계를 향해 활짝 열 때 무엇이든 가능해진다고. 타인이라는 나와 다르게 빛나는 조각을 연결할수록 삶이라는 퍼즐이 근사해질 거라고.

그날 하우스갤러리에 걸려 있던 그림 중 하나를 덜컥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평소 새를 좋아하고 새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나의 눈에 그림 하나가 쏙 들어왔다. 머리에 파란 털이 난 새 한 마리가 먼 곳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 새가 지나간 자리에는 불가사리, 조개, 별, 돌멩이처럼 작고 예쁜 것들이 빛난다.

그림이 도착했다. 덕분에 집과 삶을 정리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가 건넨 메시지를 그림과 함께 벽에 걸었다. 나를 열면 미지의 가능성이 삶에 담긴다고.

《 group 》 꾸역꾸역 북클럽 : https://omn.kr/group/bookclub_04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잘 담아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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