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 스타벅스 구석에서 열 살 아이가 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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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아이랑 한국어로 대화가 안 돼요. 마음은 있는데 말이 안 통해요."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지만, 한글로 또박또박 그 장면을 적은 글을 들여다보니, 아이의 눈엔 이 상황도 그저 재밌고 신비한 장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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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나 기자]
올해 여름, 우리 가족에게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미국 중부, 켄터키주 루이빌의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삼남매 중 첫째가 한국 교보문고에서 주최하는 '예쁜 손글씨 대회'에 입선한 것이다. 해외에 살고 있지만, 한글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는 우리 가족의 노력에 의미 있는 보상이 찾아온 셈이다.
남편의 유학과 일 때문에 미국에 온 지 벌써 10년.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딸, 예비 초등학생인 둘째 딸, 그리고 얼마 전 태어난 아기를 키우며 지낸다.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한 날들 속에서도 나를 가장 깊게 사로잡는 고민은 언제나 같았다.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때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생기면서, 영어는 빠르게 입을 타고 흘렀고 한글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읽고 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어떤 엄마는 말했다. "이제 아이랑 한국어로 대화가 안 돼요. 마음은 있는데 말이 안 통해요."
그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도 같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한국어를, 한글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이가 단지 언어를 잊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놓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글쓰기'라는 답에 닿았다.
스타벅스 구석에서 시작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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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 구석에서 시작된 한글 쓰기 켄터키주 루이빌 작은 시골 카페에서 두 아이가 한글로 글을 쓰고 있다. |
| ⓒ 김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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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 손글씨 대회 교보 손글씨 대회 포스터 |
| ⓒ 교보문고 |
여섯 살 둘째 아이는 <빨간 모자>에서 늑대가 할머니로 변장해 아이를 속이려는 장면을 골랐다.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지만, 한글로 또박또박 그 장면을 적은 글을 들여다보니, 아이의 눈엔 이 상황도 그저 재밌고 신비한 장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거친 대사 속에서도 아이만의 순수함과 상상력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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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모녀의 예선 응모지 세 모녀의 교보문고 손글씨 대회 예선 응모지다. |
| ⓒ 김수나 |
그렇게 글을 쓰고, 응모한 지 몇 주가 흘렀다. 사실 참가자 수만 해도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여름의 작은 프로젝트로,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귀하의 작품이 입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째 아이의 작품이 본선에 오른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아이는 두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쓴 글이 상을 받았대요!"
입선 사실을 확인한 후, 본선 응모를 준비하며 걱정이 앞섰다. 응모 자격에는 '내국인'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거주 중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보문고 측에 전화로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다행히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해외에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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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부 입선, 첫째의 글씨 아동부 입선작 만 8세 첫째의 글씨다. 파랑새 책의 한부분을 담았다. |
| ⓒ 김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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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보문고에서 날아온 상장 교보문고에서 받은 상장. 아이는 이 상장을 받고 한글쓰기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
| ⓒ 김수나 |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해외에서도 한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으면 한다. 아직 본선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아이는 한글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자부심이 생겼으며, 나는 아이와 함께 한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을 선물 받았다.
무더운 여름, 우리는 작은 카페 한쪽에서 글씨를 쓰며 마음을 적었다. 흘러가는 방학의 하루하루 속에서 아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을 글로 옮겼다.
글씨를 쓰는 동안 우리 사이엔 말로 다 하지 못한 온기가 있었고, 한글이라는 다리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걸음 가까워졌다. 비록 타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어를 읽고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고향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가 '행복', '예쁨',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한글로 적어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문화 속에 살아가든, 한국어와 함께 자란다는 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켄터키의 작은 집에서 한글 책을 펴고, "행복이란 바로 곁에 있어요"라고 소리 내어 읽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래, 미국에 있어도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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