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 스타벅스 구석에서 열 살 아이가 쓴 기적

김수나 2025. 7. 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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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한때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아이랑 한국어로 대화가 안 돼요. 마음은 있는데 말이 안 통해요."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지만, 한글로 또박또박 그 장면을 적은 글을 들여다보니, 아이의 눈엔 이 상황도 그저 재밌고 신비한 장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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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한국어를 지켜주고 싶어서... 책 '파랑새' 문장을 손글씨로 적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수나 기자]

올해 여름, 우리 가족에게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미국 중부, 켄터키주 루이빌의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우리 삼남매 중 첫째가 한국 교보문고에서 주최하는 '예쁜 손글씨 대회'에 입선한 것이다. 해외에 살고 있지만, 한글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는 우리 가족의 노력에 의미 있는 보상이 찾아온 셈이다.

남편의 유학과 일 때문에 미국에 온 지 벌써 10년.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딸, 예비 초등학생인 둘째 딸, 그리고 얼마 전 태어난 아기를 키우며 지낸다.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한 날들 속에서도 나를 가장 깊게 사로잡는 고민은 언제나 같았다.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때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생기면서, 영어는 빠르게 입을 타고 흘렀고 한글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읽고 쓰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어떤 엄마는 말했다. "이제 아이랑 한국어로 대화가 안 돼요. 마음은 있는데 말이 안 통해요."

그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도 같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한국어를, 한글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이가 단지 언어를 잊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놓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글쓰기'라는 답에 닿았다.

스타벅스 구석에서 시작된 글쓰기

이번 여름방학, 나는 두 딸과 함께 교보문고 예쁜 손글씨 대회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의 여름방학은 한국보다 훨씬 길다. 두 달 반 넘게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이 한글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손글씨 연습은 켄터키 시골에 있는 작은 스타벅스 구석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아기 띠를 맨 채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각자 책을 펼치고 문장을 고르고, 연필을 쥐고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 스타벅스 구석에서 시작된 한글 쓰기 켄터키주 루이빌 작은 시골 카페에서 두 아이가 한글로 글을 쓰고 있다.
ⓒ 김수나
우리가 참여한 손글씨 대회는 '교보문고 예쁜 손글씨대회'였다. 올해로 제11회를 맞은 이 대회는 '손으로 한 줄, 마음을 적다'는 주제로, 손글씨로 감동을 전하고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내국인(대한민국 국민)이 참가할 수 있으며, 유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심사가 이뤄진다. 예선은 4월 15일부터 6월 17일까지, 본선은 7월 10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되며, 최종 수상자는 9월 3일 발표 예정이다. 대회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도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설렘을 느꼈다.
▲ 교보 손글씨 대회 교보 손글씨 대회 포스터
ⓒ 교보문고
여덟 살 첫째 아이는 <파랑새>를 읽고 "이번에는 '행복의 나라'에 도착했어요"라는 문장을 골랐다. 아이는 이 문장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평소 "행복은 어디에 있냐"는 질문을 자주 하던 아이가, 이제는 책 속에서라도 '행복의 나라'에 닿을 수 있다는 말에 위로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여섯 살 둘째 아이는 <빨간 모자>에서 늑대가 할머니로 변장해 아이를 속이려는 장면을 골랐다.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지만, 한글로 또박또박 그 장면을 적은 글을 들여다보니, 아이의 눈엔 이 상황도 그저 재밌고 신비한 장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거친 대사 속에서도 아이만의 순수함과 상상력이 묻어났다.

그리고 나는, 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에서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며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문장을 택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붙잡아주는 말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이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 이민자의 일상 속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 세 모녀의 예선 응모지 세 모녀의 교보문고 손글씨 대회 예선 응모지다.
ⓒ 김수나
그날, 파랑새가 날아왔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응모한 지 몇 주가 흘렀다. 사실 참가자 수만 해도 7만 5천 명이 넘는다고 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여름의 작은 프로젝트로,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귀하의 작품이 입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째 아이의 작품이 본선에 오른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아이는 두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쓴 글이 상을 받았대요!"

입선 사실을 확인한 후, 본선 응모를 준비하며 걱정이 앞섰다. 응모 자격에는 '내국인'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거주 중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보문고 측에 전화로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다행히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해외에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 외가에 부탁해 한국→미국→한국으로 우편이 오갔다. 국제 특급 우편 비용만 해도 15만 원이 들었지만, 나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 돈보다 훨씬 더 큰 가치—한글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아이가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아동부 입선, 첫째의 글씨 아동부 입선작 만 8세 첫째의 글씨다. 파랑새 책의 한부분을 담았다.
ⓒ 김수나
▲ 교보문고에서 날아온 상장 교보문고에서 받은 상장. 아이는 이 상장을 받고 한글쓰기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 김수나
한국어는 곧 자부심입니다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해외에서도 한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으면 한다. 아직 본선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아이는 한글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자부심이 생겼으며, 나는 아이와 함께 한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을 선물 받았다.

무더운 여름, 우리는 작은 카페 한쪽에서 글씨를 쓰며 마음을 적었다. 흘러가는 방학의 하루하루 속에서 아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을 글로 옮겼다.

글씨를 쓰는 동안 우리 사이엔 말로 다 하지 못한 온기가 있었고, 한글이라는 다리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걸음 가까워졌다. 비록 타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어를 읽고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고향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가 '행복', '예쁨',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한글로 적어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문화 속에 살아가든, 한국어와 함께 자란다는 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켄터키의 작은 집에서 한글 책을 펴고, "행복이란 바로 곁에 있어요"라고 소리 내어 읽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래, 미국에 있어도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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