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이 대신 美대통령 사인…필체 그대로 복제 '오토펜' 논란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행사에서 집어 든 건 다름 아닌 검은 펜 한 자루였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재탈퇴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조치 78개를 철회 등 행정명령 8건에 대한 줄서명에 나선 것. 이날에만 200여개의 명령이 서명됐다. 그의 펜이 움직일 때마다 행사장엔 지지자들의 환호가 가득 찼다.
이처럼 미국에서 대통령의 친필 서명은 권력 행사의 핵심이다. 서명이 본인 의사 없이 이루어졌다면, 민주주의 근간과 정치 시스템 전반의 책임 구조가 흔들린다는 이유에서다. 효율성과 신속성 중시 여겨 전자서명의 효력을 인정하는 한국과 다른 인식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에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오토펜(autopen)’ 사용 여부에 대한 진실공방은 거세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토펜은 7살짜리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나 쓰는 것이지, 국가적 결정에 사용돼선 안 된다”고 비판하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일부 사면·감형 명령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인지 저하 등 정신건강 문제 삼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행정명령을 통해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은 바이든 전 대통령의 참모 10여 명에 대한 소환을 추진 중이다. 반면 바이든 전 대통령은 “거짓”이라며 “모든 사면은 구두로 승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백악관은 국가기록원에 ‘pardon(사면)’, ‘clemency(감형)’ 등 핵심어가 포함된 이메일 수만 건을 제출했고, 보좌진이 바이든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에 따라 오토펜으로 서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지난 14일(현지시간) 전했다.

오토펜은 대통령의 필체를 정교하게 복제하는 기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대통령들의 서명 부담을 덜기 위해 수십 년간 사용됐다. 현재 오토펜은 백악관이 아닌 인접한 아이젠하워 행정동 4층에 보관돼 있다.
1983년 지역매체 워싱토니언은 “존 케네디(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오토펜을 활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엔 법무부가 “결정은 대통령 본인이 내리고, 서명은 위임할 수 있다”는 공식 유권 해석도 내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프랑스에서 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일 때 오토펜을 활용해 미국 내 ‘패트리어트법’ 연장안에 서명했다. 당시 백악관은 “오바마가 전화로 직접 결정을 내렸으며,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오토펜 그 자체보다 사용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중요한 셈이다. 대통령 서명의 효율성을 높여온 기술적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오토펜이 현재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외신 평가가 나온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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