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안성까지 엄마가 3년 내내 새벽기도 간 이유 [배우 차유진 에세이]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차유진 기자]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30년 만에 냉담(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판공성사 즉,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해성사를 3년(6회) 이상 보지 않은 신자를 쉬는 교우 또는 냉담자라고 한다)을 접고 성당에 나갔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익힌 성가와 기도문은 여즉 몸에 배어 있었는지 미사 중간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냉담을 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누가 뭐래도 엄마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홀로 성당 언덕길을 오르시던 모습은 늘 마음 한켠을 저릿하게 했다. 언젠가는 그 길에 길벗이 되어 외롭지 않게 해드려야 겠다고 마음 먹었건만, 무심했던 시간만 나날이 쌓여갔다.
비로소 엄마 곁에 앉아 함께 미사를 드리니, 강론 중에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얼마나 기쁘셨으면 그러셨을까.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죄송스럽기만 했다. 미사가 끝난 뒤, 사무처 관계자님께 가족 모임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를 물어봤다.
"올해가 '희년'이라고 하던데요.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희년'(Jubilee Year)은, 신앙 갱신과 회개를 위한 특별한 은총의 해로, 성경에서는 50년,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25년마다 선포한다. 희년 기간 중에 지정된 성지를 순례하며 고해성사, 영성체, 교황 지향 기도를 드리면 죄에 대한 벌을 완전히 면제받는 '전대사'(Plenary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다. 그야말로, 2025년 '희년'을 맞아 30년 묵은 냉담죄를 단번에, 말끔히 털어낼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성당부터 평소 가보고 싶었던 순교 성지까지, 서울 주변의 '전대사 지정 성당' 안내지도를 훑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나랑 '희년 맞이 성지순례 데이트'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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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주성당. 명동성당과 약현 성당 다음으로 지어진 100년이 넘은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 |
| ⓒ 이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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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즈넉한 행주성당 성전 내부 |
| ⓒ 차유진 |
미사를 마치고 성당 밖으로 나와보니 입구 옆에 '순례지 도장'을 찍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엄마와 나란히 행주성당이 새겨져 있는 순례지 도장을 흰 종이에 힘껏 눌러 찍었다. 때마침 언덕 너머로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성지순례의 첫 발자취를 환영해주는 반가운 인사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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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두산 성당 외부 모습. |
| ⓒ 차유진 |
'순교성지'란, 신앙으로 인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장소를 뜻한다. 실제로 순교가 일어난 곳에 성지로 세워진다.
한강변 절벽 위에 위치한 절두산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 최대의 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 수백명의 신자들이 참수되어 순교했으며, 시신은 한강으로 던져진 곳이다. 초기에는 '양화진 잠두봉'이라 불렸으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당한 이후 '절두산(切頭山, 머리를 자른 산)'이란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보성인은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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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두산성당 성전 안. |
| ⓒ 차유진 |
야외 성모상 앞에는 이미 여러 신자들이 자리를 잡고 묵주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엄마와 나도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묵주를 손에 쥐었다. 산중턱을 타고 불어온 청량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문득 생의 마지막 길목에 선 옛 순교자들도 눈 앞의 한강을 바라보며 같은 바람을 맞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도를 이어가던 중에도 그들의 숭고한 희생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몹시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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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두산 성당. 산책로로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순교비와 조형물마다 손을 얹고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 |
| ⓒ 차유진 |
절두산 성지는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피어난 순교자들의 굳건한 믿음이 지금도 살아 숨쉬는 성지다. 엄마와 함께 두 번째 순례지 도장을 찍고, 순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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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남터 성당 |
| ⓒ 차유진 |
한국천주교 4대 박해(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 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가 잇따르던 시절, 무려 10명의 외국인 사제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용산 한강가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라고 한다면, '새남터 성당'은 '사제들의 순교지'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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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남터 성당 입구 앞마당에 마련된 당시의 사형장을 상징하는 모래밭. 엄마가 무릎을 꿇고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묵주기도를 올리셨다. |
| ⓒ 차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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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남터 성당. 주문모 야고보 신부 흉상 |
| ⓒ 차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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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남터 성당 대성전. |
| ⓒ 차유진 |
"이게 뭐라고... 귀한 목숨을 그리 내어놓으셨습니까. 사랑하는 가족까지 저버려가며. 그냥 안 믿는다 하고, 속으로만 믿으시지...! 그게 진정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였을까요."
그러면서도, 순교자들의 고귀한 순명 덕분에 이렇게 당신이 편히 믿음을 지킬 수 있게 되었노라며, 감사함에 못내 깊은 한숨을 붉게 물든 한강에 조용히 흘려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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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현 성당. |
| ⓒ 차유진 |
엄마는 약현성당도 예전 신촌에 살던 시절,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며 지리를 훤히 알고 계셨다.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숨찬 오르막길도, 먼 길도 개의치 않으셨던 엄마의 헌신이 다시금 경이롭게 와닿았다.
약현성당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으로, 순교자들의 피와 신앙의 유산이 서린 곳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이들의 무덤 터 위에, 1891년 프랑스 선교사 코스트 신부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1998년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철저히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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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현 성당 성전 내부. |
| ⓒ 차유진 |
"그 먼 길을 왜 3년 동안이나 다녔어?"
"니 오빠 제대할 때까지지. 자식을 최전방에 군대 보내놓고, 잠이 올 턱이 있나(88년 입대 당시, DMZ는 긴장 완화와 국지적 도발이 공존하던 과도기였으며 군복무 기간도 3년이었다). 나같이 빽도 없는 게 어디가서 빌겠냐. 부탁할 곳이라고는 딱 한 군데 뿐인 걸. 3년 내내 새벽기도 올리고, 아침에 돌아와서 종일 일하고 그랬지. 그 덕분인가, 제대할 때 정말 손가락 하나 안 다치고 집에 왔더라."
우리 삼남매가 지금껏 큰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뒤에서 든든히 버텨준 엄마의 기도 덕분이었다는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 냉담을 푼 것도 뜻깊었지만, 희년을 맞아 성지순례를 다니며 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긴 시간은 더욱 특별했다.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한 순간들, 그리고 당신의 오랜 기도를 비로소 헤아릴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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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순례지에서 찍은 도장들 |
| ⓒ 차유진 |
덧붙이는 글 | 2025년 희년(성년, Jubilee Year)의 주제는 '희망의 순례자들'(Pilgrims of Hope)이다. 시작일은 2024년 12월 24일 (성탄 전야)이며, 종료일은 2025년 12월 28일 (성가정 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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