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대 자산가'도 빠진 무속, 그 위험한 유혹
[김관식 기자]
무속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제도화된 종교가 국가와 사회의 틀 안에서 자리잡아 가는 동안 무속은 그저 '미신'으로 치부되며 방치돼 왔다. 그러나 무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전 대통령 윤석열씨는 20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고 등장해 논란을 일으켰고, 임기 내내 무속 관련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대두됐다. 지난해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무속인이었다. 권력층은 무속과 손을 잡고, 우리의 세계관과 믿음을 형성해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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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치된 믿음> 책 표지. 무속인은 누구인지, 어떤 존재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세 명의 기자가 탐사한 무속의 사회학이다. |
| ⓒ 바다출판사 |
2014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무속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판결문 1990건을 모두 검토하고, 무속 행위와 관련한 형사 사건을 직접 추렸다. 그들은 인왕산, 계룡산 등 소위 '용한 기도터'를 찾아다니며 무당 52명과 무속 전문가 16명, 무속 범죄 피해자들을 인터뷰해 책에 녹였다.
지난 11일 이 책을 쓴 세 명의 기자와 서면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더 자세한 취재 배경과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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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손영하 기자, 이성원 기자, 이서현 기자 |
| ⓒ 이성원 |
이성원 : "한국일보 경제부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해 9월 말까지 '방치된 믿음: 무속 대해부'를 쓴 탐사기획부(엑설런스랩)에서 근무했다. 치매 실종을 다룬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모성사망과 산과 의료 붕괴를 다룬 '산모가 또 죽었다' 등을 썼다."
손영하 : "2017년에 한국일보에 입사, 사회부와 국제부를 거친 후 엑설런스랩에서 이번 기획기사에 참여했다. 현재는 미래기획탐사부에 있다."
이서현 :
"2022년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엑설런스랩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기사가 나갈 즈음에는 사회부 법조팀에 있을 예정이다."
- 첫 장 '피고인, 무죄일지 유죄일지 신령님께 물어보세요'부터 숨이 턱 막혔다.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 파트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서현 : "책에는 무속인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부부와 사기꾼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은 뒤 착취당하다 여전히 무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보 없이 시작된 취재였기에, 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직접 찾아가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60건의 사건을 지역별로 나눠 팀원 전원이 한 달간 전국을 돌며 발로 뛰었다.
무더운 여름,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역에서는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고,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일이 많아 힘든 시간이었다. 취재 마감 일주일을 앞두고 피해자 일부가 응해주었고, 그중 두 사례를 기사에 실을 수 있었다. 사기꾼 무속인들은 피해자들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노린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들은 여파를 이겨내고 있었지만, 인터뷰 중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도 무척 안타까웠다."
-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성원 : "2024년 6~7월, '산모가 또 죽었다' 기획을 마친 뒤 탐사기획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주말 저녁, 아내와 함께 OTT 콘텐츠 <귀신전>을 보던 중 무속인의 퇴마 장면을 접했고, 그때 "무속에 대한 심층보도가 있었냐"는 아내의 말이 계기가 됐다.
모형 칼로 사람 몸을 훑는 장면을 보며 '저러다 사람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속이 단순한 종교나 문화가 아닌 사회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문제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무속 범죄와 착취, 가스라이팅, 성범죄 등을 다룬 '무속의 사회학' 기획이 본격화됐다.
무속인 범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무속인이 어떤 존재인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국정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심까지 받는 이들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는 모순적 존재였다. 종교인이라도 사회적 대우가 다른 이유, 그리고 무속인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 무속 신앙은 전통문화로서는 보존 가치가 있다고 정부도 인정하지만, 신앙 그 자체로는 여전히 제도권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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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기자 등 3명은 무속인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문 1990건 중 320건을 추렸다. 사진은 법원 도서관에서 사건 판결문을 적어온 것이다. |
| ⓒ 이성원 |
손영하 : "한국 사회에서 무속신앙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제도권에서는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을 제목을 통해 보이고 싶었다. 이직, 결혼 등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점이나 사주를 보는 일은 흔하지 않나. 일부 무속인은 이런 행위를 악용한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기성 언론에서도 이를 진지한 주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싶었다."
-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사례처럼 제도화된 종교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무속신앙의 고유한 문제점도 드러났을 것이다. 취재 전과 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성원 : "무속신앙은 기성 종교와 달리 일정한 교리가 없다. 어떤 틀도, 체계도 없다. 문제는 신앙이라는 이유로 부도덕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 무속인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부 무속인들은 '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식의 주장을 마스터키 삼아 부도덕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기성 종교는 일정한 교리와 윤리 기준이 있지만, 무속 신앙은 그런 기준이 없어 문제가 된다. 이처럼 교리 없는 구조를 악용하는 한, 무속 범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무속신앙이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손영하 : "피해자 대부분이 이미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대부분 큰 사고를 겪었거나 가족 문제 등으로 의지할 대상을 찾던 상황에서 무속인이 이를 악용했다. 무속 피해는 다른 범죄와 달리 쉽게 털어놓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피해자 보호의 한계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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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가 손바닥에 새긴 '왕(王)'자 논란 |
| ⓒ 남소연 |
이성원 : "무속을 찾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불안' 때문이다. 정치 역시 불확실성이 큰 영역이라, 정치인들이 무속에 의존하는 심리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속 업계에서는 '백억대 자산가는 믿지 않지만, 천억대 자산가는 믿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정치는 이성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무속의 신비한 힘에 기대 정치적 매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헛된 믿음'이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 사회 고위층이 무속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손영하 : "우리가 만났던 여러 무속 의존자들은 '무속인의 말을 듣고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남편이 풀려났다'는 등의 구체적인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처럼 무속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신뢰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특히 선거나 승진처럼 결과를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경향이 더 짙어진다. 실제로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한 군인 출신 역술가를 만나기도 했다."
- 군인 출신 역술가?
손영하 : "그렇다. 그는 내부 승진에 실패한 뒤 역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 책을 보니, 무속 범죄 피해자가 엄연히 있는데도 무죄로 선고되는 비율이 10%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법원이 이런 양형을 내리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건가?
이성원 : "법원은 기본적으로 성인은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무속에 빠져 피해를 봤더라도, 판단과 선택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무속인 측 변호인들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무속을 믿었고, 의사결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한 성폭행 피해 여성의 재판에서 변호인이 피해자의 주관적 믿음에 초점을 맞춰 반박을 시도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문에서도 피해자의 '허황된 믿음'을 지적하는 사례가 자주 보인다. 이러한 인식이 무속 범죄 재판에서 양형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 상식을 벗어난 과도한 무속 행위를 유도하거나 돈을 뜯어냈을 경우에도 처벌이 어려운 건가?
이성원 : "명백한 폭력 사건은 엄정히 처벌되지만, 실제 무속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법원은 사기로 보지 않는다. 굿이나 기도가 위로와 안정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실제 굿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무속인을 처벌하기 어렵다.
신당 내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고 CCTV 등 증거가 부족하면 처벌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신당이라는 폐쇄적인 공간 특성상 피해자가 입증 책임이 커, 이로 인해 무속 범죄의 실형 선고율은 낮은 편이다."
- [인터뷰②] "성노예·외도 무속 유튜브 영상, 대본 있어... 내부고발로 확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무속신앙 자체나 모든 무속인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무속인이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와, 그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습니다. 한국일보 이성원 기자 등도 이 지점에 집중했습니다. 무속을 빙자한 범죄는 단호히 다뤄져야 하며, 동시에 신앙의 본질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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