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아이들에게 배우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이순규 2025. 7. 1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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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가미 잇페이 글, 마메 이케다 그림 <주게무의 여름>

[이순규 기자]

어릴 적 여름방학은 기다림의 계절이었다. 학교라는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하루가 펼쳐지는 특별한 시간. 늦잠을 자고,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귀갓길의 노을. 그 무렵의 우리는 어떤 목표도 필요 없었다. 그냥 '지금'이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그 '지금'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는 훨씬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주게무의 여름 책표지
ⓒ 다산어린이
<주게무의 여름>은 그 '지금'의 빛을 잃지 않고 끝까지 품으려는 네 명의 소년 이야기를 그린다. '가쓰', '야마', '슈', '아킨'. 이들은 <주게무의 여름>은여름방학을 '최고의 방학'으로 만들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이 작품이 빛나는 이유는 그 모험이 결코 거창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곰을 이겼다는 전설의 할아버지를 찾아가고, 마을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고, 천 년을 산 칠엽수를 보러 가는 것 등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일상적인 여름의 놀이들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활동이 이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특별하다. 그것은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며, 함께이기에 더없이 반짝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장애는 전부가 아니야, 일부일 뿐이야"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가쓰'다. 근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쓰는 걷는 속도가 느리고, 체력이 약하지만, 누구보다 유쾌하고 똑똑하며,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그는 만담가가 꿈이고, 특히 '주게무'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주게무 주게무 고노스리키노 가메노스리다레…"로 시작되는 말장난 가득한 이름을 외우는 데 누구보다 열정적인 이 소년은,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담과 웃음을 무기로 자신과 주변을 환히 비춘다.

작가는 가쓰의 병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가쓰는 '장애아동'이 아니라, 꿈이 있고 유머가 있으며 친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이로 그려진다. 그의 친구들도 가쓰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 걷는 속도가 느려도 누구 하나 다그치거나 안쓰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장난을 치며 함께 기다려줄 뿐이다.

"가쓰에게 보통인 것은 우리 셋에게도 보통이었다"는 문장은 이 작품이 가진 깊은 감수성과 인식의 전환을 상징한다. 아이들은 가쓰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따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친구로, 동등한 존재로 함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연대는, 많은 어른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진정한 포용의 형태다.

"오늘의 꿈을 적으면 돼"

모험의 끝에 이르러, 아이들은 커다란 칠엽수 밑동 안에 자신들의 이름과 꿈을 적은 쪽지를 묻는다. "장래의 꿈 말이야. 그것도 적어 두자"는 제안에 누군가는 "아직 생각 안 해봤어"라고 대답하지만, 금세 "생각 안 했어도 괜찮아. 오늘의 꿈을 적으면 돼"라는 위로 같은 말이 돌아온다. 이 짧은 대화에는 어른 독자마저 잠시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늘 미래만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꿈, 오늘 하루 품은 바람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장면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정수다.

<주게무의 여름>은 성장소설이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주목한다. 가쓰는 내년이면 걷는 것도 더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말한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제발 도와줘." 이 고백은 너무도 솔직하고, 담백해서 뭉클하다. 그 순간, 모험은 의무가 아니라 약속이 된다. '함께'라는 이유로 시작된 이 여름은, 이들에게 평생 기억될 단 하나의 여름으로 남는다.

"신나게 실컷 놀아라. 넷이서 함께 다니면 뭔들 재미없으려고."

이야기 속 '곰잡이 할아버지'의 대사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신나게 실컷 놀아라. 넷이서 함께 다니면 뭔들 재미없으려고." 이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살아 있는 시간, 함께하는 존재의 소중함을 관통하는 진리다. 작가는 이처럼 유머와 진심을 동시에 담은 문장들로 작품 전반에 감동의 결을 깔아놓는다.

또한, 이 작품이 가지는 또 하나의 힘은 '자연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이 함께 흐른다는 점이다. 천신 마을의 숲, 강, 바위, 나무들은 인간의 시간보다 오래된 기억을 간직한 존재들이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뛰놀고, 쉬고, 감탄한다. 칠엽수의 속이 썩어 생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손바닥으로 그 역사를 느낄 때, 독자 역시 무언가 숭고한 감정에 젖게 된다. 아이들은 자라나고, 자연은 그 자리에 남는다. 그러나 그 찰나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의 진실을 발견한다.

<주게무의 여름>은 여름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더위와 반짝임, 땀과 웃음, 속도와 여백. 그 모든 감각이 이야기 속에 살아 숨 쉰다. 특히 이 작품은 판타지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마법 같은 여름'을 보여준다. 그 마법은 다름 아닌 우정과 유머,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논다. 살아 있기에 웃는다. 아프기 때문에 더 즐기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은 강요나 희생이 아닌, 자발성과 연대로 이뤄진다.

지금을 놓치며 사는 많은 어른들에게 <주게무의 여름>는 더 절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언제부터 우리는 다가올 미래만을 준비하며 살았을까.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것조차 놓친 채, 오직 성취만을 향해 달리지는 않았을까. 이 책은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이, 오늘이, 이 여름이 바로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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