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사였던 그녀는 왜 알코올 중독자가 됐을까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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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봄밤> 스틸컷 |
| ⓒ (주)시네마달 |
01.
강미자 감독의 영화 <봄밤>에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 술에 의존해 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영경(한예리 분)과 무일푼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수환(김설진 분)이다. 두 사람의 어긋난 삶은 어느 순간 불현듯 서로를 알아보고 온 마음을 다해 마지막 잔해와도 같은 감정을 불태운다. 뜨겁게 솟아오르는 감정은 아니다. 어떤 갈등이나 사건도 이 이야기 속에서 격렬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느리고 조심스럽다. 그런 침묵에 가까운 리듬 속에서 전개되는 67분의 이야기, 권여선 작가의 단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두 인물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일관된 걸음을 시작한다. 관객들에게는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술자리의 모습일 테다. 영화적 허용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저렇게까지 모든 사람이 상 위에 엎드린 채로 기절한 것처럼 취해 있을 수 있을까. 단 두 사람, 영경과 수환만은 예외다. 영화가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역시 이때부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술 취한 영경을 업고 그의 집으로 향하는 수환과, 제대로 된 돌아갈 곳도 없이 홀로 영경의 집을 떠나오는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 또한 다르지 않다.
02.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침묵에 가까운 리듬에도 불구하고 앞서 두 인물의 감정을 '불태운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서로의 삶에 개입한 이들의 삶이 강한 진동을 경험하고 그에 준하는 파동을 일으키게 되어서다. 마주하기 전의 삶에 깊은 상흔이 남겨져 있었다는 뜻이다. 세 번째 술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처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망가진 내면의 회복 대신 망각을 선택한 여성과 부서지기 시작한 외면의 수복 대신 마비의 과정을 따르기 시작한 남성이다.
전직 교사였던 영경은 현재 알코올 중독자다. 서른에 결혼해 1년 반 만에 이혼을 경험했고, 아이와도 강제로 헤어지게 된 여성.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 침묵한다. 말 대신 술을 마시고, 감정을 일으키고 되새기는 대신 망각을 선택한다. 무심함이 아닌 고통을 삼키는 방식이다. 한편, 수환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전 재산마저 잃은 신용불량자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으로 인해 절망에 익숙해져 버렸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인해 신체마저 기능을 잃어가는 중이다. 의료 보험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어 치료조차 받을 수 없다. 어떤 여력도 남지 않아 타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신의 감정마저 꺼내놓을 의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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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봄밤> 스틸컷 |
| ⓒ (주)시네마달 |
그런 카메라의 눈 속에는 어떤 연애적 시점도 포착되지 않는다. 옥탑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던 영경의 말 직후, 두 사람이 현관문 앞에 쓰러져 앉아 열렬히 끌어안는 장면이 하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장면을 사랑의 시작, 구원과 같은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이 모습은 오히려 '죽을 길은 있다'라던 수환의 말로부터 두 사람 모두 멀리 달아나 벗어나려는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다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명한 사랑이다. 다만, 어떤 관계로부터의 호혜를 획득하기 위한 비상이 아니라 서로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 위한 이생의 마지막 잠수에 가깝다. 영경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수환을 돌보고, 알코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영경의 곁을 수환이 지키는 이유다.
그런 감정적 연결에도 불구하고, 영경과 수환은 서로에게 완전히 가닿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탓이다. 신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수환은 낮에 머무는 인물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밤만 되면 술을 찾는 영경은 그렇지 않다. 밤에 머문다. 두 사람에게는 낮과 밤의 거리만큼, 꼭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는 행위를 돕는 것 이상으로 수환의 신체적 문제를 대신할 수 없는, 술에 취해 흘린 눈물을 닦아주는 일 외에 영경의 정신적 문제를 도울 수 없는 현실적 한계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서도 그 근거는 얻을 수 있다. 두 가지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테이크는 꽤 오래 유지되는 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롱테이크'까지는 아니지만, 시간을 편집하는 대신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쪽에 더 집중한다. 감정을 펼쳐 보이며 사건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의 잔재를 부스러기 하나까지 흡입하는 쪽이다. 이런 방식은 인물 사이의 감정을 드러내는 쪽에서도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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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봄밤> 스틸컷 |
| ⓒ (주)시네마달 |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 오오 인생이여."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잠시 헤어지는 공간, 수환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 입구의 오솔길은 그런 '등 뒤'의 감정을 서로가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을 때도 있긴 하지만 외박에서 돌아오는 영경과 그런 그녀를 탓하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수환의 모습은 그들이 붙잡고 있는 유일한 미련처럼 보인다. 서로가 아닌 이 생(生)에 대한 연연(戀戀)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가운데 하나인, 두 사람의 재회.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서다 결국 끌어안게 되는 모습에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런 말과 감정이 몸짓으로 발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술에 취해 다시 망각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 이와 이제 더 이상 그런 존재를 업어줄 수 없는 이의 모습을 카메라는 이번에도 교차하며 최대한 천천히 포착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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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봄밤> 스틸컷 |
| ⓒ (주)시네마달 |
이렇게 길게 내려쓰고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프레임을 내내 빼곡히 채우고 있어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응축된 것들이 크게 터지지 못하고 새어 나오다가 다시 채워지고, 또 새어 나오다 이내 채워졌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봄밤> 속의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는, 그런 메타포로도 여길 수 없는 이 사랑이 내게는 진짜처럼 느껴진다.
돌봄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타인을 돌보는 일,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는 일,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일. 극 중 두 사람은 모두 타인을 돌보는 일과 타인으로부터 돌봄 받는 일을 빼앗겼다가 잠시 되찾는다. 극의 어느 장면에서도, 어쩌면 엔딩 이후의 삶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는 일만큼은 단 한 순간도 가질 수 없었던 이들. 역설적이게도 이 관계가 진짜 사랑처럼 여겨졌던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게 자신이 개입된 사랑보다는 오롯이 타인인 사랑이 더 애틋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현실 이상의 것들이 조금도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 카메라의 의지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완성한다. 결코 서둘지 말라는 시언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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