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괴수물 멸망의 이유를 알겠다
[김성호 평론가]
괴수물은 사실상 멸망했다. 21세기 들어 부활한 <고질라>와 <킹콩>의 변주한 시리즈는 변화한 시대에 제 자리가 없음을 입증했을 뿐이다. 지난 시대, 압도적 규격으로 극장을 찾은 이를 경악케 했던 괴수물은 오늘날 둔하고 식상한 무엇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간을 위협하는 건 지구온난화며 사라지는 일자리, 빠르게 증식하는 자본의 위협일 뿐, 건물만한 크기의 괴수가 아니란 것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때, 아직은 되살려낼 길이 있으리라고 소리치는 이들이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고질라>를 할리우드 스타일로 복원하고, 피터 잭슨이 <킹콩>을 부활시킨 것도 그 일환이었다고 혹자는 이야기한다. 전형적일지언정 드라마를 강화하고 기술적 혁신을 바탕으로 영상의 충격을 시험하는 에머리히와 잭슨의 선택은 완전히 끊긴 줄 알았던 괴수물의 명맥을 어찌저찌 이어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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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
| ⓒ UPI 코리아 |
그러나 <쥬라기 월드> 또한 괴수물이 가진 한계와 맞닥뜨릴 밖에 없었다. 규모로 승부할 밖에 없는, 또 현실과는 상당 부분 괴리될 수밖에 없는 설정 탓에 마치 시한부와 같이 유한한 생명력을 가진 시리즈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편마다 새로운 공룡을 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스스로를 옭아맨 끝에, 스티븐 스필버그 이후 30여 년의 시간을 성취로써 활용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를 3편으로 종식케 한 이유가 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가렛 에드워즈다. 규모와 힘 일변도로 승부하는 가렛 에드워즈는 이 시대 할리우드에서 어쩌면 가장 괴수물과 어울리는 감독일 수 있겠다. 에머리히나 잭슨, 또 트레보로우와 달리 규격 그 자체를 주무기로 삼는 가렛 에드워즈는 신작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무려 세 번째 괴수물 연출이다. 데뷔작인 <몬스터즈>가 첫 작품이었고, 규모 있는 괴수를 전면에 내세운 2014년 작 <고질라>는 그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고전 팬들에겐 차라리 우직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에게 모두가 끝났다고 여기는 유일한 공룡 프랜차이즈 일곱 번째 작품을 맡긴 건 전통적인 괴수물 팬들에겐 그럴 듯한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너무나 가렛 에드워즈다운 작품이다. 말하자면 정석적이고 통속적이란 뜻이겠다. 일단 기본적인 설정부터가 그렇다. 주인공은 조라 베넷(스칼렛 요한슨 분), 일종의 용병이며 해결사 격인 전직 군인이다. 위험한 공룡은 죄다 모아 적도 쪽 섬에다 격리한 세상에서 제약회사 경영자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 분)가 조라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막대한 돈을 제안하며 공룡 세 마리의 피를 뽑는 프로젝트를 수행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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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
| ⓒ UPI 코리아 |
위험천만한 여정에 앞서 조라는 믿을 만한 이들과 팀을 꾸린다. 마틴이 소개한 공룡 전문가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 분)를 시작으로, 은퇴 전 조라와 합을 맞추었던 용병 던컨 킨케이드(마허샬라 알리 분)와 그 동료들이 하나하나 작전에 합류한다.
영화는 이들이 배에 올라타고 목표인 세 공룡이 사는 적도 인근으로 나아가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계획은 틀어지고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우선은 목표 삼은 공룡부터가 그러하다. 계획은 5년 전 깨어난 공룡들 가운데 가장 큰 녀석들의 피를 뽑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섬에 다가서니 나타난 공룡들은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난감한 녀석들이 아닌가. 지적능력부터 운동능력, 규격까지가 기존의 공룡을 능가하는 존재로, 과거 섬에서 비밀리에 공룡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산한 이종이란 사실이 드러난다. 마틴은 이러한 사실을 감춘 채 조라와 팀원들로 하여금 작전을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음모 속에서도 조라와 팀원들은 퇴로가 없는 싸움 가운데 목적을 이뤄내기 위해 고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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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스틸컷 |
| ⓒ UPI 코리아 |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예고된 해피엔딩으로 향한다.
영화의 주된 악당은 유전자 조작이 이뤄진 공룡으로, 티라노사우르스에 다른 무언가의 유전자를 뒤섞은 이른바 '디스토루투스 렉스', 또 어떤 익룡에다 랩터를 뒤섞은 듯한 '뮤타돈'과 같은 것들인데, 사실상 공룡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상의 생명체다. 마치 <에이리언> 류 우주괴생명체 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파충류 형태 괴수에 공룡의 탈을 씌운 것으로, 본능적으로 혐오감과 공포를 일으킬 외양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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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포스터 |
| ⓒ UPI 코리아 |
가렛 에드워즈는 제가 연출한 영화에서 늘상 그러했듯 드라마는 최대한 전형적이고 단순하게, 연출은 규모로 승부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괴수물의 전통적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괴수물이 본래적으로 가진 매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려 한다. 2014년 작 <고질라>에서 확인된 장단이 그대로 재현되는 가운데,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가장 전형적인 할리우드 괴수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다. 본래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를 두고 서사의 완성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편의 독립된 예술작품이라기보단 차라리 놀이공원에 배치된 영상장치, 혹은 한 편의 예능에 가깝다. 관객이 기대하는 바를 효율적으로 이뤄주는 데 전념한다는 뜻이겠다. 이제껏 못 본 공룡이 등장해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들은 그를 극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관객에겐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그 자체로 충실한 작품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3년 공룡을 알에서 깨워 종말을 맞은 괴수물을 부활케 한 <쥬라기 공원>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만난 적 없는 존재를 스크린 위에 불러내고, 그로부터 긴장과 공포, 경외와 찬탄을 불러왔던 이 시리즈의 본래적 힘을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전적으로 외면한다. 익숙한 괴수, 오로지 규모로써 몰아치는 지난 시대의 기법에 이 영화는 기대고 있다. 그야말로 스필버그가 경계한 방법론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정말 새롭다고 할 수 있겠다. 다름 아닌 <쥬라기 공원>의 유산으로부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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