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는 대통령, 수석최고위원은 총리... 박찬대 "그렇다면 원내대표는 앞 두 글자 떼야죠 ㅎㅎㅎ"
[김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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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출마한 박찬대 의원은 17일 오후 오마이TV <최진봉의 보이는 라디오>와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했다. |
| ⓒ 오마이TV |
■ 방송 : 오마이TV <최진봉의 보이는 라디오> (16:00~17:00)
■ 진행 : 최진봉 교수
■ 대담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 최진봉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진봉의 보이는 라디오, 최보라 목요일 오후 순서 시작합니다. 오늘 특별한 순서 한다고 이미 공개 드렸고 예고해 드렸습니다. 찬 데부터 챙겨야 됩니다. 더우니까요. 오늘 날씨가 좀 선선해지긴 했습니다만 아직도 덥습니다 밖에는. 찬 데부터 생기는 최진봉의 보이는 라디오. 박찬대 후보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찬대 >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 최진봉 > 잘 챙기고 계시죠, 찬 데부터.
◎ 박찬대 > 네. 더울 때는 찬 데, 무더위에는 찬 데. 지금 전당대회가 항상 한여름에 있다 보니까 찬 데를 많이 생각합니다.
◎ 최진봉 > 그러니까요.
◎ 박찬대 > 사실 저번 내란이 일어났던 12월달에는 밖이 정말 춥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제 이름이 조금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좋습니다. 그때는 차다라는 뜻이 아니라 킥.
◎ 최진봉 > 발로 차다 할 때 킥.
◎ 박찬대 > 그렇죠. 찬대. 내란 세력, 내란 준동 세력, 내란 잔당 세력을 발로 찬대. 박찬대.
◎ 최진봉 >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는 방현석 교수님 오셨습니다. 어서 오시죠.
◎ 방현석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 교수님.
◎ 최진봉 > 방현석 교수님이 특별히 출연하신 이유가 우리 박찬대 의원께 질문할 게 있다고 그러셔가지고 제가 모셨습니다. 오늘 어떤 질문 먼저 하시겠어요.
◎ 방현석 > 제가 이번에 이재명 평전을 증보판을 펴내면서 굉장히 궁금했던 게 몇 가지 있었어요. 그래서 그중에 제가 박찬대 후보님한테 꼭 물어보고 확인해야 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제가 이재명 대통령님의 결정적인 순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지난 12월 3일 계엄의 밤인데. 그 계엄령이 처음 내렸을 때 이재명 당시 당 대표죠. 계양에 있는 집에서 김혜경 사모님이 운전하는 차 타고 여의도로 오면서 제일 먼저 한 게 라방 켜서 국민들에게 나라의 주인인 여러분들이 지켜주십시오. 국회로 모여 주십시오 이 방송을 하고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무려 15분 만에 김혜경 여사가 국회까지 주파해서. 당선되고 나서 재 봤거든요 제가. 경호 받으면서 당선 확실시될 때 여의도까지 오는 시간이 30분 걸렸더라고요. 그러니까 김혜경 여사 경호하는 차량들보다 더, 반, 15분 만에 주파해서 여의도 왔더라고요. 그래서 국회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게 이재명 당시 대표님께서 한 게 권한대행 순서를 20번까지 짜는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잡혀갈 순서 1번이니까 나 잡혀가고 나면 대행 스무 명을 짰는데. 그 번호를 지금까지 공개를 안 했어요. 1번부터 20번까지. 그래서 제가 1번이 누구고 2번이 누굴까를 궁금했어요. 알고 계세요? 본인이 몇 번인지?
◎ 박찬대 > 사실 뭐 우리 대통령께서 공개하지 않은 것을 제가 말씀드리긴 좀 어려운 것 같고요. 다만 제가 원내대표가 되고 난 이후에 두 번의 당 대표 자리가 빈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두 번째 당 대표 출마하실 때, 그때 제가 한 두어 달 직무대행을 했었고 이번에 이제 4월 4일날 윤석열이 파면되고 난 이후에 4월 7일날 다시 당 대표 자리를 내놓을 때 제가 다시 권한 직무대행을 했었죠. 아마 그러면 다 알지 않을까. 하하하.
◎ 방현석 > 그러니까 이미 대행을 대리를 두 번 이미 했고. 12월 3일날은 참 안 하게 된 게 다행이네요. 그걸 하게 됐으면 이제 잡혀갔어야 한 거니까.
◎ 박찬대 > 근데 실질적으로 이렇게 저도 12월 3일날이 지금도 생생한데.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저는 사실 미리 좀 예견을 했었어요. 우리가 2024년 4월달에 압승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처음에 뭐 영수회담을 하자 어쩌자 좀 걱정이 됐는지 했지만 아무런 내용도 없고 이행도 없었던 영수회담 이후에도 정치를 포기하고 계속 검찰의 칼끝을 계속 이재명 대표님한테 계속 겨누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모든 법안들 특히 특검법. 자기들의 비리를 드러내려고 하는 부분들을 완전히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이거를 보고서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요. 대표님 내가 볼 때는 저들이 2년 뒤, 아니 3년 뒤에 정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정치를 포기하고 이렇게 폭압적으로 나오는 그 자체가 결국은 자기들의 비리를 덮고 정권을 강제로 연장하기 위한 극단수를 쓸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더니 그대로 동의하시더라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에 내란이라든가 계엄에 대한 분명한 법적 물증은 없지만 그들의 행동을 봤을 때 분명히 우리는 심증을 갖출 수 있었고요. 뭐 이론이 없어도 꽃이 피면 봄이 오는 것처럼, 바람이 불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예견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니까 이제 이 부분에 대한 경고를 분명하게 해야겠다 해서 국정 감사 기관이었던 한 10월달부터는 우리가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 시작을 했죠.
◎ 최진봉 > 그리고 처음에 출발할 때도 사실은 박찬대 원내대표께서 그 당시에 직접 의원들한테 빨리 모이라고 소집 명령도 내렸고 대표가 직접 전화하신 거잖아요. 그때도.
◎ 박찬대 > 네. 그렇습니다. 일단 대표 전화를 제가 받았는데요. 그 시간은 정확하지 않아요. 왜냐면 저도 대표님도 계엄이 터진 것을 알고 국회로 가야겠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게 둘 다 망설이지 않았는데 집 밖으로 나오는 게 사실은 상당한 두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나중에 말씀을 들어보니까 대통령께서도 혹시 현관 밖에 체포조가 나와 있을 거를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 방현석 > 그래서 김혜경 여사가 먼저 나가서 미리 확인해보고 조사한 다음에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이재명 당시 대표님을 모시고 나가서 뒤에 태워서 운전해서 왔죠.
◎ 박찬대 > 그래서 유튜브를 틀기 전에 전화를 주셨는지 틀고 난 후에 주셨는지.
◎ 방현석 > 본인도 모르시는군요. 집에서 전화를 했어요. 집에서 제일 먼저 첫 임무. 계엄령이 터진 다음에 첫 전화를 해서 첫 임무를 맡긴 사람이 박찬대 원내대표죠.
◎ 박찬대 > 그렇죠 왜냐면 이제 국회의원들을 소집할 원내대표는 저이기 때문에 그래서 통화를 했습니다.
◎ 방현석 > 그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제1번 임무를 맡긴 게 박찬대 원내대표인데 그때 뭐라고 지시하셨어요?
◎ 박찬대 > 국회로 소집해야 된다.
◎ 방현석 > 국회로 다 집결시켜라. 그 지시를 했죠.
◎ 박찬대 > 또 서로의 신변에 대해서 서로 물었습니다. 서로 괜찮냐 그렇게 얘기를 했고. 사실 저는 첫 전화는 저기한테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받았어요.
◎ 최진봉 > 아 그래요? 처음 전화는.
◎ 박찬대 > 예. 첫 전화는. 첫 전화는 아마 내가 천준호 비서실장한테 받았던 것 같아요. 계엄이 터지자마자 바로 인식을 못 하니까 한 10시 30분 조금 안 돼가지고 계엄 선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전화를 받고서 바로 밖으로 나왔죠. 그리고 나서 바로 이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일단 국회로 모이는 것으로 이렇게 진행을 했고 나중에 우리 대통령님의 유튜브 송출을 알게 되었습니다.
◎ 방현석 > 올라오면서 차에서 안 거고요 이제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그거를 하고 그다음에 단체방에 '국회로' 딱 세글자를 의원님들 방에 올리고 그리고 김혜경 여사님이 운전하는 차 타고 여의도로 달려오면서 라방을 하고 들어와서 그다음에 20명 리스트 짜고. 그 20명에서 아마 박찬대 의원님이 1번이었는지 김민석 수석이 1번이었는지.
◎ 최진봉 > 아마 박찬대. 왜냐면 원내대표가 어쨌든 그다음에 승계하는 게 맞잖아요. 기본적으로 대표가 만약 궐의상태가 되거나 어떤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되면 그다음 승계는 원내대표가 하는 거죠.
◎ 박찬대 > 네. 그렇습니다. 일단은 우리 당의 룰 자체는 그때 어떻게 정했냐면 그 전에 우리 대표한테 한번 위기 상황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구속 심사를 한번 한 적이 있었죠. 그때 23일의 단식을 하고 녹색병원에 가 있는 사이에 사실은 수원지검에서 불렀고 나중에 이제 체포영장 이런 거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만약에 구속이 된다라고 하면 당무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대표는 자격은 유지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회의를 주재하기 어려우니까 그때 역할을 좀 나눴었습니다. 그때 원내대표는 홍익표였고 그다음에 최고수석은 정청래였죠. 그래서 이제 당무는 정청래한테 맡기고 그다음에 원내는 원내수석한테 맡기는 걸로. 그런데 만약에 대표 자체가 만약에 유고가 되거나 자리가 없다라고 하면 바로 승계는 원내대표가 하는 것으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방현석 > 그래서 맡긴 첫 번째 임무. 의원들을 국회에 집결시켜라. 그 임무를 어떻게 집행했어요. 달성하기 위해서.
◎ 박찬대 > 바로 저기다가 올렸죠. 바로 우리 텔레방에다가. 우리 의원들이 다 들어와 있는 전체 방에 지금 당장 국회로 집결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수석들을 비롯한 원내대표부를 먼저 소집을 했죠.
◎ 방현석 > 그러니까 굉장히 놀라운, 세계가 놀란 일이죠. 단 두 시간 안에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집결하는. 그것도 서울 지역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전국에서 있던 의원들이 달려와서 국회를 채워서 성원을 만들어서 그걸 해제시키는 놀라운 장면을 보여줬는데 그게 이제 사실은 이재명 대표님이 너무나 상황을 정확히 꿰고 그 상황에서 뭘 해야 되는지 알고 거기에 맞게 국민들에게 집결을 호소하고 그리고 그 앞서서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으로 모이도록 그 임무를 박찬대 대표님에게 줬고 그걸 대표님이 정확하게 집행해서 야전 사령관으로서 계엄군들을 진압하고 계엄을 해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죠.
◎ 박찬대 > 아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떤 그런 결단과 두려움 없는 용기가 있었을까 사실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대표님 전화를 받고 바로 국회로 달려왔죠. 이미 경찰들이 이렇게 보이기 시작을 하더라고요. 대표님과 저는 당연히 체포될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경찰을 피해서 처음부터 우리는 그냥 담을 넘었고요. 대신 체포 1순위가 우리 대통령님 아닙니까. 대통령님은 우리 국민들이 세운 깃발이기 때문에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원내대표인 저는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저는 무조건 국회의 본회의장으로 가고 우리 대표님은 사실은 은밀한 곳에 대기시켜 놓고 있었죠. 그리고 전화 통화를 이제 엄청나게 많이 했죠. 그래서 이제 저는 국회 담을 넘자마자, 물론 넘다가 부상도 당했는데 일단 자전거를 타고서 국회 전체를 한 번 돌아봤어요. 그리고나서 국회 본회의장으로 바로 가서 사무총장을 만나고 그다음에 경계를 분명하게 지시를 하고 바로 원내대표실에서 작전 회의를 짜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에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기다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 방현석 > 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님이 국회 안에서 비밀 장소에서 성원이 되기를 대기하면서 두 사람한테 계속 전화를 하죠. 지금 박찬대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야전 상황 보고 받고 또 하나 전화는 위성락 의원에게 전화를 계속하죠. 그래서 위성락 의원이 미국을 비롯한 외교 라인들을 총동원해서 대통령님이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우방들에게 윤석열의 불법적인 계엄령을 절대 인정하고 동조하지 마라. 이건 불법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주권을 침해한 일이다. 특히 미국이, 이게 직전 계엄령이 1980년에 있었던 거라 45년 만에 계엄령 처음 한 거예요. 박정희 때 세 번 하고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다음에 두 번 하고 그 마지막이 1980년 5월에 전두환 반란군이 전국확대.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확대 계엄을 내리면서 광주 민중들을 학살을 한 날이잖아요. 그럴 때 이제 있었던 게, 결정적인 게 미국이 그걸 묵인하고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인정해 줌으로 인해서 광주 민중들을 계속 학살할 수 있었던. 그것 때문에 당시 1980년대 반미감정이 굉장히 높아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미 문화원 점거도 하게 됐고.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이번에 또다시 미국이 윤석열의 계엄, 불법 계엄을 인정하고 묵인한다면 이번에는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더 높아질 거고 한미 관계에 치명적인 손해가 온다. 미국이 신속하게 입장을 표명해 줘라.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날 새벽 1시 반 경에 미국 코멘트가 나오잖아요. 우려한다. 동의하지 않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냄으로써 사실은 제2, 제3 계엄이 불가능하게 한 거죠. 그러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핵심적인 역할을 세 개를 딱딱 차례대로 한 거죠. 제일 먼저 국회의원들을 집결하도록 박찬대 원내대표에게 지시하고 그걸 성공시키라고 임무를 주고. 두 번째는 국민들에게 직접 라방을 켜서 국회로 집결해서 주인들이 지켜주시라 요구를 하고. 세 번째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이 이 계엄에 동의하지 않도록 외교력을 펼친 거죠. 아마 우리나라 외교 역사에서 이처럼 빛나는 외교적 승리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최진봉 > 어쨌든 이제 중요한 건 박찬대 의원의 말을 들어야 되니까 교수님 이제 두 번째 질문을.
◎ 박찬대 > 아니 교수님 말씀을 이제 들어보니까 한편으로 사실 조태열에 대해서 지금 미국 대사가 계속 전화를 하는데 안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전문 용어로 씹은 거 아니에요. 이 중차대한 일이 벌어졌는데 TV에는 계엄 선포가 나와 있는데. 아니 미국 쪽에서 물어보는데 그거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있었던 거니까 엄청나게 다급하게 했던 거죠. 갑작스럽게 한 계엄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1년 가까이 준비하거나 1년 이상 준비했던 부분인데. 실질적으로 무도한 윤석열 정권에 우리가 저항해서 각종 민생법안 그리고 개혁법안 그리고 특검법 그리고 탄핵안들이 그리고 예산, 그다음에 명태균에 대한 녹취록. 그게 다 우리 원내전략에서 나왔었거든요. 급하게 12월 3일날 헛발질할 정도로 당혹하게 계엄을 선포했던 것 아닌가. 준비는 미리 돼 있었지만 치밀하게 차분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서두르다가 크게 꼬였던 그런 느낌이 드는데 이 부분도 좀 하늘이 돕기도 했지만 저도 깜짝 놀란 거는 뭐냐 하면 저한테 전화하고 난 다음에 바로 라방을 트신 것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었을까.
◎ 방현석 > 그런데 이제 거기에도 제가 볼 때 박찬대 대표의 큰 공로가 있었다. 사실은 그날 이재명 대표님이 민주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이런 게 가능했을까. 그걸 또 수행해 낸 박찬대 대표가 있었으니까 이게 콤비가 있으니까 그날 계엄 해제가 가능했던 거 아닌가. 특히 결정적인 건 그게 가능했던 거 이재명 대표님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서 다들 이제 이선에 물러나라 또 우리나라 일반적인 정치 문법이 대선에서 패하면 외국에 나가서 유학한다 뭐 이러면서 한 1, 2년 있다가 돌아오는 걸 상식처럼 이렇게 돼 있어서 좀 쉬어라 그랬을 때 고민하고 있을 때 계양을에 출마했고 다시 당 대표로 이렇게 복귀했잖아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뭐 이렇게 빨리 돌아오냐 좀 쉬어야지 그럴 때 가장 앞장서서 아마 계양을 출마를 권유하고 계양 선거가 진행됐을 때 당 선거대책본부의 아마 대변인을 맡아서 최일선에서 얼굴마담 역할을 하면서 또 몸으로 다 뛰었죠. 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12월 3일 내란도 진압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 왜 다들 다수가 제가 알기로 좀 안 나갔으면 좋겠다. 좀 이선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그랬을 때 박 대표님은 이재명 대표께 그렇게 강력하게 일선에 나서야 된다. 물러설 때 아니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 박찬대 > 사실은 제가 이재명 대표님을 안 것은 2010년도에 성남시장이 되셨을 때부터 알고 있었고. 2016년도에 송영길 대표와 함께 판교 테크노파크에 가서 간담회를 했던 경험이 있고 그리고 또 그해 여름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을 때 격려 방문을 갔던 적은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제가 이재명 대표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됐던 것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2021년 7월 1일입니다. 그때 20대 대선에 예비 후보로 등록했을 때 캠프에 조인하면서 수석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3월 10일날 석패하는 순간부터 다시 복귀하는 5월 8일까지 약 두 달 정도의 기간만 사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늘 대선 패배에 대한 아픔을 달래면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건가 그거에 대한 고민은 많이 있었거든요. 아마 그 두 달 동안 일부는 좀 회복이 있었어야 될 거고 또 일부는 앞으로의 진로를 어떻게 잡을 건가 정말 깊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저한테도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 제 의견을. 여기서 복귀하는 게 좋겠나 보궐선거를 통해서 아니면 일반적인 문법에 따라서 잠깐 외유를 하는 게 좋은가 이런 질문이 있었는데 저도 같이 깊이 있게 고민을 하다가 출마하는 게 낫겠다. 우리한테 지금 주어져 있는 것은 과거의 문법을 따르는 그런 관례적인 것이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버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치밀하게 치열하게 싸워나가야 된다. 왜냐면 그때까지만 해도 윤석열 정부의 칼끝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376번이나 압수수색을 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죽이고자 하는 그 치열한 의도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거든요. 근데 이제 저는 여기서 우리가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계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인지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그때 이제 인천의 국회의원 허종식 의원하고 제가 처음으로 소통관에서 계양을로 복귀하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라고 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방현석 > 그게 이재명 대통령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이제 병법 책을 좋아하잖아요. 병법 책을 읽으면서 아마 힌트를 얻은 것 같은데. 큰 전쟁에서 지고 나면 진 쪽은 대체로 괴멸한다. 크게 무너져버린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그 진영은 무너져도 이긴 쪽이 잘하면 그 나라가 괜찮다. 근데 그렇게 졌는데 이긴 쪽이 엉망으로 해버리면 이쪽이 무너져버리면 그건 나라가 망해버린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처음 하는 거 보니까 굉장히 걱정스럽고 좀 망하는 길로 간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나라가 진짜 망하겠다. 그렇게 해서 본인이 아 그때 좀 욕심 많은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결심했다고 그러는데. 그때 만약에 진짜 복귀해서 준비하지 않았으면 윤석열이 이렇게 나라를 엉망으로 끌고 가고 결국 계엄령으로 갔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그런 신의 한 수를 두게 하는 데 우리 박찬대 대표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군요.
◎ 박찬대 > 솔직히 고백을 하면 출마하겠다라고 하는 의지를 우리 이재명 대통령께서 저한테 보인 것은 아닌데 수석대변인을 하면서 대장동부터 비롯해가지고 온갖 고초를 수석대변인으로서 내가 막아내는 과정 속에서 좀 마음이 많이 통했던 것 같아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을 제가 정확하게 뚫어본 것 같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명분을 드리고 그분이 결심할 수 있게끔 해줘야 되겠구나 해서 시작된 게 기자회견이었고요. 그 기자회견을 기초로 해서 바로 5월 8일날 계양으로 복귀하는 출정식을 하게 됩니다. 그때 제가 가가지고 엉겁결에 사회를 보면서 그때 비서실장이 돼서 보궐선거를 같이 치렀고요. 그리고 보궐선거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있습니까. 인천에 어떻게 보면 한번 가보지도 않았는데 거기서 다시 살아나야 되니까. 그때 우리한테 굉장히 용기를 줬던 게 뭐냐면 2022년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에요. 그래서 부모님 집에 갈 땐데 모이겠나. 또 그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어요. 많은 불교 신자들이 절에 갈 텐데. 그리고 또 그날이 일요일이면서 11시였어요. 많은 기독교들이 교회를 갈 텐데. 어버이날에 부처님 오신 날에 주일날 11시고. 그런데 그때 그 계양산에 구름 같이 몰려 있었던. 패장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수없이 많은 지지자들이 계양산을 가득 메꾸는 걸 보고 우리가 거기서 정말 용기와 위로를 얻었던 것 같거든요. 그때 사진들을 보면요 마스크 쓰고 둘이 부둥켜안고 사회를 보고 선언하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 그게 다시 우리가 일어나는 시발점 아니었나 그 생각이 듭니다.
◎ 방현석 > 네. 그게 이제 시발점이 돼서 결국 당원주권주의, 국민주권주의 이게 실현되면서 사실은 당의 주인으로 당원들이 자리 잡고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란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서 12월 3일 내란진압 빛의 혁명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이제 당원주권주의 말은 쉽지만. 특히 국회의원들은 굉장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잖아요. 과거에도 보면 뽑힐 때까지야 머리 숙이고 뭐 주권자들한테 하지만 막상 뽑히고 나면 주권자들은 아랑곳 않고 다음 선거 때까지는 자기들 뜻대로 이렇게 했는데. 정말 이재명 대통령이 되면서 당이 바뀌었잖아요. 그 전과 완전히 다른 정당.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고의 민주 정당, 최강의 당이 됐잖아요. 그런데 그 국회의원들이 정말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국회의원들이 정말 헌신했다는 걸 결정적으로 12월 3일날 밤에 보여졌잖아요. 그렇게 국회의원들이 사익을 앞세우지 않고 국민들이 원하는 국민들의 이익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게 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원내대표로서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했어요?
◎ 박찬대 > 사실 그 얘기 많이 합니다. 나는 우리 이재명 대표님의 어록 중에서 가장 내가 감동 받고 실제로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뭐냐 하면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국민이 한다 그 말이거든요. 사실 우리 21대까지만 해도 아직 계파가 남아있었어요. 지금은 우리 계파 정치 하지 않고 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당심은 어디 있었냐면 여의도에 있었고 그 여의도의 마음은 국회의원의 마음이었으며 그거를 가장 강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계파의 리더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당원들의 목소리가 말로만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됐었고 또 심지어 천 원짜리 당원이라고 하는 그런 비꼬임도 우리가 받지 않았습니까. 근데 21대에서 그런 아픔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을 결정적으로 털어나갔던 게 22대 경선 과정에서 당원이 진정한 주인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게 되면서 22대에 구성됐던 이 국회가 당원주권주의에 의해서 공천받고 승리했던 그 내용이 반영됐던 것이거든요. 그러니까는 우리가 24년 4월달에 22대 총선을 치르고 새로 구성된 국회는 이미 계파도 아니고 당원주권에 의해서 당원주권 또는 당원중심 대중정당으로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12월 3일날 계엄 때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재명 대통령님과 제가 계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고. 두 번째는 일치단결 되어 있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뜨거운 마음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던 것 아닌가. 또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찔한 게 국회의원들 170명이 그대로 국회로 가 있으면 그대로 잡아들이면 되거든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가 돼서 그대로 수거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거를 감수하고 몰려들었던 것은 우리 21대 국회와 22대 국회는 완전히 다른 국회가 이미 되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는 제가 24년 5웚 3일 자에 원내대표가 되고 나서 이전까지 하고는 완전히 다른 국회. 민주당의 국회의원을 만들겠다 해서 말한 게 말로만 하는 국회가 아니라 행동하는 국회 그리고 실천하는 개혁 국회를 만들겠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 방현석 > 그래서 박찬대 원내대표의 성과에 대해서 제가 이재명 대통령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영상을 하나 찾아놨어요. 한 번 보죠.
◎ 최진봉 > 한 번 보죠 그럼. 어떤 영상 있는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24.06.06. 이재명 당 대표 깜짝 소통 라이브]
◎ 박찬대 > 얼마 전에 제1차 원내대책회의를 했어요. 오늘이 1찬대 이렇게 했거든요?
◎ 이재명 > 1찬대. 계속할 거 아냐. 2찬대. 3찬대. 5찬대. 100찬대.◎ 박찬대 > 대표님 오늘이 몇 차인지 아십니까?
◎ 이재명 > 100차 라면서요. 100차? 이거 이상한데.
◎ 박찬대> 이게 100찬대요. 100찬대요.
◎ 이재명 > 하하하.
◎ 박찬대> 이 이후에는 박찬대가 합니다. 하하하.◎ 방현석 > 아마 대통령님 표정을 한번 익숙하신 분들은 볼 텐데 다 특징이 있어요. 저 표정이 아무 때나 나오지 않거든요. 본래 이제 형님이나 가족들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이재명 대통령님이 어릴 때 굉장히 개구쟁이고 밝고 또 재롱 잘 떨고 그래서 어머니한테 사랑을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정치하고 나서 그 웃음을 잘 보기 어려워서 제일 가슴 아프다고 그런 얘기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잘 안 보이는 웃음들이 가끔가끔 나타나는데 저 장면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재명 대통령님의 정말 저건 가장 만족스러울 때 또 허심탄회할 때 허물없을 때 하는 웃음이었거든요. 저건 아마 100차에 걸쳐서 회의를 하는 동안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끌어 온 그 국회의 성과. 박찬대 대표의 성과에 대해서 그만큼 만족하고 인정하는 그 표정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그렇잖아요. 작은 일 맡겨서 확인되면 그다음 일 또 주고 또 주고 이렇게 쓰잖아요. 그래서 21대 대선 때 결합해서 이렇게 일을 해보고 그다음에 또 보궐선거 때 일해 보고 원내대표 그다음에 또 이제 이번에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는 그럼 대통령님이 박찬대 원내대표님한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 박찬대 >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우리 집사람 얘기를 잠깐 하면. 아까 여러 가지 성과가 보여주신다 그래가지고 나도 뭐가 나올까 이렇게 했는데 저랑 생각이 똑같았던 것 같아요. 제가 1년 1개월 열흘 동안 원내대표를 하면서 그사이에 두 번의 당 대표 직무대행을 하고 그리고 이제 대통령을 파면한 다음에 대선이 이루어졌을 때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을 했으니까 얼마나 많은 원내전략이 있었겠어요. 거기서 실패 없이 성취도 많이 있었는데 누가 딱 묻더라고요. 제일 기억나는 게 뭐냐. 그래서 저도 지금 우리 교수님하고 똑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웃을 일 하나 없는 그 사람 웃기는 게 사실 나는 가장 보람이 있었다. 그냥 소소하게 얘기했는데 집에 갔는데 집사람한테 칭찬을 받았어요. 당신이 어떤 얘기한 거보다 그 얘기가 가장 자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랬는데 우리 교수님께서 저 영상 틀어주실지는 저는 상상도 진짜 못했어요.
◎ 방현석 > 저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정말 너무나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저 밝았던 모습들이 감춰져 있었는데 그게 확 드러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마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님이 마지막 탄핵 의결 이끌어 낸 다음에 국회에 들어와서 못 나오고 있다가 처음 국회 밖에 나와서 빛의 혁명 집회 현장에 나와서 마이크 잡았을 때도 얘기했고 그다음에 한번 저녁 드시는 자리에서도 그 얘기 하셨는데 지난 정권, 문재인 우리 민주 정부 때 많은 것을 했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을 못 바꿔 줬다. 정권 바꿔 줬는데 그 추운 겨울에 촛불 들고 촛불 혁명해서 정권 바꿔 줬는데 국민의 삶은 달라진 게 뭐가 있냐. 민주당만 좋아진 것 아니냐. 그런 말이 가장 가슴 아팠다. 우리는 다시는 그런 얘기 들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정말 우리 국민들을 실망 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의 삶을 바꿔야 된다. 그래서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행보 하나하나가 진짜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우리가 돌아보면 성남시장 선거해서 첫 시장 할 때보다 두 번째 시장 선거에서 분당 득표율이 5% 올랐어요. 분당은 완전히 강남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데 5%가 올라간 거예요. 똑같은 사람인데. 경기도의 지지율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재명 대통령 같이 성남시장을 해주면 경기도지사를 해주면 전국이 달라지죠. 정말 이번에 대한민국을 바꿀 차례라고 생각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거기로 갈 텐데 그러기 위해서 당이 정말 잘 해줘야 된다. 정부는 저는 뭐 대통령님이 잘할 거라고 믿고. 그러려면 당이 그걸 확실하게 뒷받침해줄 국민의 삶을 바꾸는 당으로 만들어지기를 원하리라고 생각하는데 박찬대 대표님은 어떻게 그걸 바꾸려는 대통령하고 소통해서 이걸 나라를 국민의 삶을 바꿀지 한 번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박찬대 > 네. 사실 제가 이번에 당 대표에 출마하게 된 게. 참 우리 교수님이 직관적이시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짚으시는 것 같아요. 표현되지 않았던 마음속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만드는데. 한 가지 사례를 들면 제가 저번 대선 기간에 이재명 후보하고 청계광장에서 처음 인사할 때 그 무대에서 손잡고 인사드렸던 게 처음이고. 마지막 날 여의도에서 마무리 유세할 때 무대 밑에서 봤던 게 딱 처음이거든요. 그리고나서는 완전히 각자 움직였죠. 그래서 저는 이재명 후보께서 다니지 못하는 험지 중심으로 다녔어요. 충남북, 그리고 강원도 전역,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을 다녔거든요. 정말 죽기 살기로 했어요. 직선거리로 4,400km고 나를 선행했던 선행 팀장 말로는 15,500km를 달렸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 낸 게 뭐냐면 대구 지지율 저번에 21%였는데 23%로 올리고 그다음에 경북은 23%에서 25%로 올리고요 대표님하고 저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29%에서 30%를 살짝 넘겼어요. 그렇게 죽기 살기로 했는데도 우리의 평균 득표율은 한 23~4%밖에 안 됐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30일 지나고 나서 대구 경북에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지지율이 얼마가 나왔냐면 60% 가까이 나온 거예요. 56, 57 정도. 아 그래서 영남 사람들도 민주당을 무조건 미워하고 영남 사람들이 국힘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그런 결과를 보였지만 그들이 정치한테 원하는 것은 누가 정권을 잡든 국민의 삶을 바꾸고 국민의 삶을 높여주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도모하는 그런 일하는 대통령, 그리고 정치적 효능감을 주는 정치 집단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희망을 보게 됐거든요. 오늘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성남시장으로 분당을 바꾸고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을 이끌어냈는데 이 한 달 동안의 대통령. 그것도 총리도 아직 인준받지 못하고 어떤 내각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노력했는데 그 일하는 모습을 보고 영남에서는 지지율이 60% 가까이 세 배 가까이 올라가고 또 주가는 2,600에서 3,200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환율은 떨어지고.
◎ 방현석 > 윤석열이 2,600에 받아서 2,400으로 끝내놓고 나갔죠.
◎ 박찬대 >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아 이게 우리 국민이 바라는 정치구나. 이게 우리 국민이 바라는 일하는 대통령 그리고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정치에 대한 기대가 있구나 이 생각이 듭니다.
◎ 방현석 > 국민의 삶을 바꾸는 민주당.
◎ 박찬대 > 그래서 저는요 유능하고 일 잘하는 대통령 더이상 혼자 일하게 하면 안 되겠다. 저번에 30일 만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데 아 저는 짠하더라고요. 혼자 일한 거 아닙니까. 시간이 얼마나 모자라겠어요. 그래서 서른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이래서 내가 여섯 시간은 채워드려야 되겠다 이 생각이 들었고요.
◎ 방현석 > 여섯 시간 채워드리는 당 대표.
◎ 박찬대 > 그래서 그분이 하고자 하는 그 일을 받쳐주기 위해서 재정과 예산을 심사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는 거. 그리고 필요한 개혁 이거는 내가 입법으로 보완하는 거. 그래서 요새 제가 굉장히 서두르고 있습니다. 원내대표 마지막에 3특검을 동시에 발족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나서 오늘은 또 뭘 얘기했냐면 국정조사 두 개 해야 된다.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하고 사법 내란에 대한 국정조사도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고 내란종식특별법도 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잘 싸워도 이거는 공정성을 훼손하는 마음이죠. 더 중요한 것은 민생을 회복시키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통합시켜야 되거든요. 대통령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받쳐주는 당정대 원팀을 만들어야 되는데 지난 5년 동안 모든 영역에서 함께 해왔던 제가 그나마 대통령께서 국정을 펼쳐나갈 때 좀 더 든든하고 마음 편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떤 쓴소리를 하더라도 제 진정성을 알기 때문에 고깝게 듣지 않고 서로 합을 맞춰가지고 우리 국정을 성공시키지 않을까 이런 확신이 들어서 나서게 되었고요. 제가 6월 13일날 살아서 원내대표의 임기를 마친 것에 대해서 국민들께 감사하다 얘기해놓고 딱 열흘 뒤에 다시 죽으러 들어왔거든요. 그래도 행복한 것은 뭐냐면 우리 이재명 대표님이 376번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그리고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법정에 서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제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이재명 대표를 향해서 날아오는 저 수없이 많은 화살을 내가 방패가 돼서 일부 막아주고 정 안되면 내가 대신 한두 대라도 맞아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 고비를 넘기고 대통령으로 세웠고 국민주권정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대신 죽겠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여섯 시간 해주겠다. 얼마나 쉽습니까. 얼마나 건전하고 좋습니까.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사실 이번 전당대회에 나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방현석 > 윤석열 정권과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큰 차이 딱 하나는 윤석열 정권은 오직 힘을 신뢰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통령 정부는 국민의 신뢰의 힘을 신뢰하는. 그래서 신뢰하는 게 얼마나 능력이고 힘인가. 그래서 신뢰를 하기 때문에 직언할 수 있고 함께 일할 수 있고 저렇게 윤석열처럼 밑에서 아부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언할 수 있는 당 대표가 필요하고 직언을 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그런 신뢰의 힘이 새로운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민주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진봉 > 방 교수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셔 가지고.
◎ 박찬대 > 아니 저보다도 저를 더 잘 아셔서 제 마음을 정리해 주시네요.
◎ 최진봉 > 시간이 별로 없어서. 잠깐 그러면 방 교수님 이제 보내드리고 한 10분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남을 것 같은데 어쨌든 얘기 나누도록 하고. 저희는 잠깐 광고 보고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최진봉 > 네. 다시 돌아왔습니다. 광고 보시는 동안 제가 이제 박찬대 의원하고 개인적인 얘기를 나눴고요. 질문 이제 15분 정도 남았으니까 빨리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판세. 왜냐면 사실 출발할 때는 늦게 출발하셨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나 이런 결과들이 박찬대 후보가 약간 좀 뒤지는 걸로 나왔는데 최근에 들어서 조금 약간 변화가 있는 걸로 보여지는데 본인 후보 입장에서는 판세가 어느 정도 흔들리고 있다고 보십니까. 어떻습니까.
◎ 박찬대 > 일단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현장에 갈 때마다 사실 뜨거운 지지세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저랑 같이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우리 국회의원들은 지난 13개월, 14개월 동안 원내대표로서 헌신하는 제 모습, 그다음에 170명의 그 정말 개성 있고 유능하고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는 그 의원들을 어떻게 모시면서 분열되지 않게 하나의 팀으로서 내란을 극복하고 정권을 재창출한 지 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그분들은 저의 지난 성과와 실적 그리고 몸으로 같이 경험해서 알았던 부분이 저를 지지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는 사실은 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그리고 이제 현장에 가게 되면 아니면 우리 유튜브라든가 각종 사이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댓글의 내용들을 보게 되면 정치 고관여층으로부터는 박찬대가 적합하다라는 박찬대를 지지하겠다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압도적인 거죠. 댓글 같은 경우도 뭐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판세라든가 여론을 보게 되면 아직은 제가 추격하는 입장인 것 같은데요. 지금 상태로 고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실 여론조사는 전체 100%에서 30% 해당이 되고 실질적으로는 권리당원과 대의원들의 포션이 한 70% 되기 때문에 지금도 분명히 판세는 비등하거나 불리하지 않다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고요. 그리고 여론도 점차 변하고 있고 일부는 오차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든가 일부 역전되는 그런 사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좀 많이 남았죠. 오늘 27일이니까 한 보름 정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보름 동안이면 사실은 마지막 추격세 추세가 어떻게 되는지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확신이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 최진봉 > 네. 알겠습니다. 그다음에 내란특검법 관련해서 이제 여러 번 말씀하셨고 오늘도 2국조 말씀 또 하셨잖아요. 내란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대표가 되신 다음에 내란 종식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겠다, 강력히 싸우겠다는 의지도 밝혀주셨는데 2국조와 내란특검법 아까 잠깐 언급을 하시긴 하셨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 박찬대 > 내란특별법 같은 경우에는 지금 저쪽에 혁신위원장이 사실 몇 사람을 지목을 해가지고 빨리 거취를 밝혀라. 네 사람을 지목하지 않았습니까. 네 명뿐이겠습니까. 실질적인 주범들인 윤석열 김건희 그다음에 김용현 이런 사람들은 빠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실질적으로 계엄을 해제하는 표결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추경호 원내대표라든가 권성동 원내대표라든가 또는 비대위원장 권영세라든가. 이런 사람들만 합쳐도 일단 열 명이 넘어가요. 그래서 저는 내란특별법을 냈었던 거는 뭐냐면. 저희가 원내대표 그만두면서 3특검을 동시에 발족했잖아요. 동시에 발족한 그 3특검으로 인해서 그동안 국민적 의혹이 쌓였던 그 모든 것들.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 모든 것을 3특검이 경쟁적으로 밝혀낼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검사 조직을 믿지 못해서 특검을 만들었다면. 아니 그러면 재판부는 어떻게 할 거냐. 조희대를 경험하고 지귀연을 경험한 우리 입장에서는 내란과 관련해서도 특별 재판부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하는 국민적 요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특별재판부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내란 잔당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국민의힘에 대해서 혈세를 투입할 수 있겠느냐. 국고 보조금 회수해야 된다. 그리고 또 계엄이 발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사 알박기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 다 뽑아내야 된다. 뭐 그런 부분들. 그리고 우리가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가지고 지금까지도 일본하고의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고 가끔씩 건국절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뉴라이트가 등장해서 아직도 국민들을 분열로 이르고 갈등 일으키게 하기 때문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근저를 흔들었던 내란은 이제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내란 종사들에 대해서는 사면을 영구히 금지해야 된다. 그리고 우리 시민들이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시민들에 대한 기념사업을 해야 될 거고요. 그리고 대통령을 탈옥시키고 난 이후에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얼마나 많은 증거를 인멸했습니까. 그러니까 제보자 양심고백자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감면이 요구되고 있다. 뭐 이런 것들을 반영한 것이 내란종식특별법이죠. 이 부분은 제가 집계를 했지만 머슴으로서 주인인 국민이 지적했던 내용들을 내가 모아서 낼 뿐이다. 그래서 3특검에 의한 수사. 그다음에 내란종식특별법에 의한 마무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 아닌가.
◎ 최진봉 > 그게 내란의 종식이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 박찬대 > 그렇죠. 그리고 지금 지귀연 판사와 관련해서 지금 내란과 관련된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지를 못해요. 교훈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정조사하자. 지귀연 조희대 사법부가 내란에 어떻게 관여하고 이상한 판결이 나왔는지 국민의 눈높이 앞에서 한 번 따져보자.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고요. 또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도 필요하지 않느냐. 그래서 국정조사 두 개 안을 지금 낸 상태입니다. 그리고 또 이 부분에 대해서 청문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청문회도 꼭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게 원내대표 업무의 전부이면 또 안 됩니다. 유능하고 신속하게 내란을 종식하고 개혁의 완수를 빨리 해야 되겠죠.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또 개혁법안이 세 개 있지 않습니까. 검찰개혁, 언론개혁, 그다음에 사법개혁이 일어나야 된다고 보고요. 궁극적으로는 사법개혁까지 올해까지 다 완수해야 되지 않냐. 그와 동시에 저는 민생도 회복하고 경제도 성장시키고 국민도 통합시켜야 된다.
◎ 최진봉 > 경제 전문가시잖아요. 회계사시잖아요. 회계사.
◎ 박찬대 > 예 그렇습니다. 다른 우리 민주당의 의원들하고는 좀 다르게 회계사로서 경제 전문가인 게 좀 드물지 않습니까.
◎ 최진봉 > 드물죠. 국회의원들 중에는.
◎ 박찬대 >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부가 제시하는 안들에 대해서 다른 어떤 대표들보다 빠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그거에 대해서 보완하거나 아니면 지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싸우는 것과 민생이 구별되지 않죠. 같이 가는 거죠. 저는 자본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나는 민생과 경제도 함께 성장한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 반대의 경우를 보지 않았습니까. 윤석열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훼손되니까 민생도 파괴되고 경제도 후퇴하고 있다. 그래서 유능한 개혁, 나이스한 개혁을 하게 되면 그 안에서 경제성장과 민생안정 국민통합이 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집권 여당의 당 대표라면 야당의 당 대표하고는 다르게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해 나가야 된다. 그것을 제가 강조하고 있는데요 일부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 개혁하지 않고 자꾸 통합만 주장하는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전혀 아니죠. 저는 통합, 협치 그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지만. 해야죠. 하지만 협치도 정의의 결과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 최진봉 > 아 그럼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원내대표 하면서 그런 모습 보여주셨잖아요. 야당과 그 당시 여당이죠. 여당과 협치하려 하면서도 원칙은 벗어나지 않았단 말이죠. 그렇게 하셨잖아요 계속.
◎ 박찬대 > 그렇죠. 협치는 제가 지향하지만 거래는 제가 단절합니다.
◎ 최진봉 > 그러니까요. 그런 점은 이미 원내대표 시절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저는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고. 또 하나 이제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 여당으로서 역할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이건 뭐 명심 경쟁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이게 명심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여당의 대표가 되면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는 입법 활동을 통해서 함께 힘을 모아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대표가 되신다면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셔서 일을 하실 계획이세요?
◎ 박찬대 > 저는 이재명 정부가 싸울 때는 같이 싸우고 일할 때는 같이 일해야 된다. 근데 지금 우리 이재명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강조하는 게 사실 국민 통합도 강조하고 민생회복 그리고 신뢰회복 경제성장까지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한 든든한 제도개혁으로 받쳐주겠다는 것이죠. 이번에 최근에 아주 좋은 사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상법 개정안 통과. 그거 일부 협의한 거 혹시 아십니까.
◎ 최진봉 > 아니 몰랐어요.
◎ 박찬대 > 우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내용은 한 여섯 개 정도 되는데 그중의 네 개 정도는 저쪽 당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정부 여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집권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들과 합의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였죠. 여섯 개 중에서 네 개 정도는 합의해서 통과를 시켰고요. 두 개는 추가적인 합의를 더 하든가 아니면 정치적 결단으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서 진행을 할 건데요. 상법이 개정되자마자 사실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꿈틀거리지 않습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신뢰 자산을 쌓으니까 주가가 2,600에서 그냥 3,200까지 오르지 않습니까. 저는 개혁은, 아니 유능한 개혁은 나이스한 개혁은 이렇게 경제와 민생도 통합도 같이 함께 이뤄낼 수 있다. 그것을 입법부인 우리 국회가 민주당이 확실하게 받쳐주는 거죠. 재정적으로 예산으로 입법으로. 뭐 그 부분에 있어서 원팀 정신으로 간다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될 거고요. 대통령은 일만하고 우리는 싸움만 한다 그건 아닙니다. 일도 같이 하고 싸움이 필요하면 같이 싸워나가야겠죠.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함께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불공정한 것은 못 참는다 이렇게 돼 있죠. 우리 개혁은 이 불공정을 개선하는 거거든요. 그렇지만 먹고 사는 문제 우리의 삶을 바꾸는 문제는 그거만큼 또 중요합니다. 선후가 있을 수가 없죠.
◎ 최진봉 > 그렇죠. 박찬대 원내대표가 했던 것 중에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사례가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타협하고 가능하면 협치하려 하지만 원칙을 벗어나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게 뭐냐면 원내대표 되고 나서 상임위원장 배분이에요. 법사위원장 누가 시켰습니까.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그렇게 배정한 분이 원내대표시잖아요. 그 당시에 법사위원 넘겨달라고 그렇게 싸우고 그랬잖아요. 그런데도 그때 그 전 원내대표가 그걸 넘겨주는 바람에 문제가 돼 가지고 다시 가져왔잖아요. 그때는 물러섬이 없었잖아요.
◎ 박찬대 >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정치적 책임을 다 지고 옛날 문법은 이랬죠. 국회의장이 민주당이라면 그럼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다. 법사위원장이 민주당이면 그러면 운영위원장은 국민의힘이다. 운영위원장이 민주당이라면 과방위원장은 국힘이다 이렇게 했는데요. 사실 그 당시 윤석열 정부가 보통 정부입니까. 진짜 이상한 정부 아니었습니까. 그들을 제어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치적 모든 책임을 지고 우리가 국회를 운영해야 된다는 신념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사위도 양보하지 않았고 운영위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장악을 하려는 그들을 막기 위해서 과방위도 양보하지 않았죠. 그들이 뭐라고 했냐면 자기네들도 마찬가지다. 세 개 다 양보할 수 없다. 우리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투표해야죠. 그래서 저는 뭐라 그랬냐면 이 세 개로 끝낼 것이 아니라 너네가 우리하고 정말 더이상 협의를 이뤄내지 않는다면 열여덟 개 상임위를 우리가 다 가져오겠다 이렇게 주장을 했죠. 결국은 저의 강한 의지를 보고 그럼 일곱 개라도 가져가겠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열 한 개를 의결해서 상임위를 미리 배정을 하고 남아있는 일곱 개 가져가기 싫어? 그러면 우리가 가져올게 했더니 자기들이 가져간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13개월 동안 모든 원내전략 중에서 실패한 게 단 하나도 없지만 조금 상황적으로 아쉬웠던 게 뭐냐면 그때 우리 국회의장님을 잘 설득해서 열여덟 개를 만약에 다 가져왔다면 1년 만에 우리가 여당이 됐을 때 그러면 기재위도 정무위도 산자위도 우리가 다 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 그다음에 외교안보 그리고 또 국방. 다 우리 상임위가 된다면 그러면 얼마나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원팀으로서 잘 갈 수 있을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는 거. 열여덟 개 다 가져오지 못한 거. 그러한 저를 뭐 타협하는 사람이라든가 협치만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든가 그렇게 얘기하는 거는 그거는 조금 네거티브입니다.
◎ 최진봉 > 잘못된 거죠. 저는 그렇게 보고. 지금 말씀하신 사례만 봐도 그때만 해도 얼마나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그렇게 잘 싸워주고 끝까지 우리가 가져올 건 가져와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국민들이 선출해서 그만큼 의석수를 줬잖아요.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 박찬대 > 예. 저한테 씨알도 안 먹혔어요. 그래가지고 그때 이제 우리 의장님이 결국 이제 웃으시면서 박찬대 야멸차다 이래서. 저 원래 별명이 알찬대가 아니라 야멸찬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13개월 동안 특히 계엄이 터지기 전에는 민생입법, 개혁입법, 특검법, 탄핵안. 얼마나 많이 냈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번번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이걸 다 거부했지만 저는 한 번도 지치지 않고 그들하고 타협하지 않고 따박따박 올리지 않았습니까. 결국 따박따박 올리는 그것 때문에 그들이 무너졌던 거고요. 그다음에 대통령 탄핵안도 12월 7일날 108명의 그들의 이름을 다 불러댔지만 그들은 출석하지 않았고 투표는 불성립되지 않았습니까. 옛날 같았으면 원내대표 사퇴해야 됩니다. 근데 저는 그때 버텼고 다시 12월 14일날 더 강력하고 센 탄핵안을 올렸는데요. 일주일 전에 그들한테 외쳤던 그 목소리는 국민들을 감동시켰고 이백만 명을 여의도로 집문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누구 못지 않게 싸웠고 타협하지 않았고 그 다음에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동일하고요 누구보다 잘 싸우고 또 많은 사람들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할 수 있는 팀웍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지금은 집권여당이다. 그러면 그거만으로 만족할 것이냐. 아니다. 민생도 책임져야 된다. 경제도 책임져야 된다. 안보와 외교도 책임져야 된다. 대통령과 정부를 도와야 되고요. 또 장점은 뭐냐면 우리 대통령님 2기 당 대표 시절에 당 대표는 이재명 아닙니까. 그리고 수석최고위원은 김민석 아닙니까. 원내대표는 박찬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당 대표는 대통령이 되셨고 그때 수석최고는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그럼 원내대표는 뭘 해야 될까요. 두 글자를 앞에 떼야죠. 하하하. 그래서 우리 시민들이 그렇게 보지 않습니까. 이재명, 김민석, 박찬대 그리고 원내대표를 하고 있는 김병기. 이 이름 이니셜만 딱 따면 뭐죠? 이김박김. 좋지 않습니까. 싸우면 이김. 그리고 손을 대면 바뀜. 결국은 싸울 때는 싸워서 이기고 그리고 일을 할 때는 민생도 바꾸고 경제도 바꾸고 국민통합도 바꿔내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이 바로 일할 때는 함께 일하고 싸울 때는 함께 싸우는 진짜 원팀. 당정대 원팀이고요. 그래서 박찬대는 진짜다. 네.
◎ 최진봉 > 알겠습니다. 시간이 지금 1분밖에 안 남았어요. 너무 짧게 막 달려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아니 PD가 아까 골든크로스 얘기했는데 또 물어보라는데 밑바닥 골든크로스 일어났다고 보세요? 어떻게 판단하세요.
◎ 박찬대 > 저는 골든크로스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 네. 뭐 한두 개의 골든크로스가 전체라고 얘기하긴 어려운데요. 골든크로스가 지금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되고요. 정치 고관여층의 그러한 지지세가 정치 저관여층까지 점점 스며들어가고 있다. 우리 대통령님의 마음이 국민들한테 스며들어가는 것을 잼며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박찬대의 강점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찬며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 최진봉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더 하고 싶은데 박찬대 후보가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1분밖에 안 남았어요. 마지막으로 카메라 보시고 지지를 해달라고 우리 시청자분들 권리당원분들에게 말씀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찬대 > 오마이뉴스 애청자 여러분 박찬대입니다. 국민과 함께 내란을 이겨냈습니다. 정말 이재명 정부 성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5년 뒤에 일 잘한 이재명. 만약에 정권이 재창출되지 않는다면 다시 이명박근혜가 나타날까 괴물 대통령 윤석열이 나타날까 사실 우린 두 번의 학습을 통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대한민국이 바뀌고 이재명 정부는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 일련. 이재명 대통령이 남겨 놓은 잔여 임기 동안에 당정대 원팀을 만들어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으로 국민들의 삶을 바꾸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미 지난 시간 동안 수석대변인으로 비서실장으로 최고위원으로 원내대표로 두 번의 당 대표 직무대행으로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모든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원팀으로 성과를 만들어 낸 박찬대가 당 대표가 된다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해나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박찬대를 이재명 정부와 원팀이 되는 민주당의 첫 번째 당 대표로 선출해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진봉 > 네. 감사합니다. 우리 박찬대 후보님 바쁘신 일정 중에도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랑 다음에 또 만나서 인터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이팅 하시고 꼭 좋은 성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의원님.
◎ 박찬대 > 이번에 8월 2일 전당대회 2번. 2번. 8월 2일까지만 쓰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민주당은 계속 1번을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 최진봉 > 시청자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우리 박찬대 후보와 함께했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용 인용할 때 오마이TV <최진봉의 보이는 라디오>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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