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뛰쳐나간 영화 '사스콰치 선셋', 그 불편한 매력
[김성호 평론가]
나름대로의 명성이 있는 작품이다. 구태여 '나름대로'라 적는 것은, 그 명성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사스콰치 선셋>에 얽힌 이야기다. 무려 아리 에스터, 그러니까 <유전>과 <미드소마>의 감독으로 호러 장르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고 독자적 위치를 확보한 이 영화인이 제작한 작품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한 뒤 한국 시네필 사이에서 '필감작'이라는 의외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화를 보다가 몇몇 관객이 뛰쳐나갔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제법 널리 퍼졌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만큼 영화예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이들이 차마 참지 못하여서 나갔다는 일화가 어떤 이들에겐 도리어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그저 졸작이어서, 지루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는 판단은 그 유명세에 특별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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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스콰치 선셋 포스터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사스콰치 선셋>을 본 건 그래서였다. 이제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명배우 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연한 작품임에도 사전 정보가 없다면 그가 나오는 줄 알 수 없는 영화가 바로 <사스콰치 선셋>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유인원처럼 생겨먹은 사스콰치란 괴생명체가 등장해 우가우가 하는 영화다. 인간이 아니니만큼 인간의 언어 없어 사스콰치들의 의사소통만이 이뤄지는데, 관객이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이렇다 할 줄거리도 한 편 영화 가운데 부재한 것이 특징적이다.
물론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다. 사스콰치란 것은 소위 '빅풋'이라 알려져 있는 북아메리카 일대 전설 속 생명체다. 전 세계적으로 탐험과 개척, 모험이 열풍이던 시대, 사스콰치에 대한 괴담 또한 널리 퍼졌다. 새로울 건 없는 일이었다. 과학과 비과학이 혼재돼 있던 모험의 시대 탐험가들 사이에서 실재하지 않는 괴수에 대한 소문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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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스콰치 선셋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사스콰치 선셋>은 다짜고짜 사스콰치의 일상을 내보인다. 마치 고릴라나 침팬지 무리를 쫓는 자연다큐처럼, 모두 네 마리 개체로 이루어진 무리의 사계절 여정을 찍는다. 긴 털로 덮인 네 마리는 성체 셋과 인간으로 치면 소년 격인 하나다. 이 중 성체 둘이 짝짓기를 하는 연인사이고, 어린 하나는 그들의 자식인 듯 보인다. 영화는 다짜고짜 이들이 짝짓기를 하고 먹거리를 구하고 쉼터를 마련하며 이동하는 일상적 모습들로 러닝타임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롭다. 지능이 높다고는 하지만 문명을 이루지 못한 유인원 네 마리일 뿐이다. 언어라 할 수 없는 울음과 몸짓으로 소통하며 서로 돕고 갈등하는 모습이 수시로 우스꽝스럽게 다가온다. 이들이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인간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다는 점이 영화의 주된 승부수일 수 있겠다. 성욕, 수면욕, 식욕의 3대 욕구가 대표적인데, 암컷이 하나고 외부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이를 자극하는 것이다. 가장 힘 센 개체에게 암컷이 없는 상황은 어딘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따금 무리의 암컷을 넘보는 그이지만 이미 짝이 있는 암컷은 완강히 그의 구애를 거부한다. 이 세상 천지에 다른 사스콰치 암컷이 멸종되지 않고 남아있는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은 그의 짝짓기가 일생에 과연 가능하긴 할런지도 장담할 수 없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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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스콰치 선셋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사스콰치 선셋> 가운데선 죽음조차 자연스럽다. 영화 속 사계절을 건너는 동안 넷 중 무려 둘이 죽음을 맞는다. 사스콰치들은 죽은 개체를 인간이 그러하듯 매장한다. 그건 그대로 나름의 의식 아닌 의식이 된다. 사체를 다른 동물이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표 아래 감추어 그 존엄을 지키도록 하는 행위는 인간만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지구상에서 인간과 죽음을 같이 대하는 유이한 생명체로 사스콰치를 두는 장면들은 이 영화 <사스콰치 선셋>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영화가 사스콰치의 비극을 그리고 있단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 가운데 사스콰치가 인간이 놓은 포장도로를 마주하고 경악하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우리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이룩한 문명과 언어를 갖지 못하였다. 인간처럼 번성하지도 못했다. 영화 속에서 이들 네 개체가 남아 있을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이들의 존재가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아서라는 것을 이 영화가 알도록 한다. 영화의 마지막 '빅풋 박물관'의 모습이, 지난 세기 내내 이들을 쫓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한 결과로써 그나마 사스콰치 네 개체가 생존해 저만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음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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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스콰치 선셋 스틸컷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인간과 유사하게 직립보행하는 유인원의 적나라한 성애행위 묘사가, 또 인간세상의 규칙으로 따지자면 성폭력에 해당할 도전이, 상당한 시간 동안 해소되지 않는 긴장이, 또 인간과 달리 배설을 추잡하다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모습 등이 하나하나 그럴 수가 있겠다. 욕구의 지점이 인간과 같다는 것이, 그러나 그를 대하는 방식이며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 인간을 다른 어떤 생명체와도 달리 특별하고 고매하게 여기고픈 이들에겐 불편한 지점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사스콰치 선셋>은 인간과 매우 가깝지만 같지 않은 이종의 삶을 다큐처럼 그럴싸하게 다루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이 스스로를 달리 바라보도록 이끈다. 우리 인류가 찍어낸 모든 영화 가운데 그나마 장 자크 아노의 <불을 찾아서> 정도가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겠으나, 현생 인류의 조상과 사스콰치란 이종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자리한다. 현생 인류의 조상이기에 차마 할 수 없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다는 게 <사스콰치 선셋>만이 가진 특장점이다.
이 영화가 아닌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마주할 수 없는 시도, 그 파격과 독창성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한다. 예술의 가치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하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인식의 지평을 확장토록 하는 것이라면 <사스콰치 선셋>은 그 역할을 분명하고 성실하게 수행해낸다. 그렇다면 어찌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화를 보고 뛰쳐나가고픈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 또 누군가에겐 우리 안에 자리한 동물성을 돌아보도록 한다는 것, 이것들이야말로 <사스콰치 선셋>의 매력을 증명하는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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