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에서 확인한 온난화 징후...빙하 위를 걷다가 어깨가 탈골됐다
9살 아들과 자동차 세계여행을 하다 갑자기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에 선발된 아빠, 2024년 12월부터 약 1년간 남극기지에서 대기과학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오영식 기자]
- 지난 기사 '중국인·러시아인 없이 살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에는 5명의 연구원이 1년 내내 상주하며 기후 변화, 생태계 변화 등을 관측하는 다양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후나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연구 인프라가 훨씬 잘 갖춰진 국내가 아닌, 왜 굳이 이토록 척박한 남극에서 연구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남극은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의 활동이 거의 없는 청정 지역이다. 공장도, 자동차 매연도 없다. 지구 전체의 대기 흐름 속에서 먼 거리의 오염원이 일부 전달되기도 하지만, 남극은 인위적 간섭이 적어 지구 환경 변화를 관측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꼽힌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남극이 '자원의 보고'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현재는 '남극조약'과 그 부속 문서인 '환경보호의정서'에 따라 영유권 주장, 군사 활동, 자원 개발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2048년 이후 환경보호의정서의 재검토가 가능해지는 시점이 오면, 자원 개발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비해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남극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며 기지 확장과 인프라 보강에 힘을 쏟고 있다. 남극과 인접한 칠레와 아르헨티나도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며 국민을 상주시켜 존재감을 드러내는 등, 이미 조용한 경쟁은 시작된 상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남극기지 운영은 단순한 과학기술 연구를 넘어, 자원 개발과 외교 전략 등 여러 분야에서 향후 중요한 국가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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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안소만 빙하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매년 30m 이상 해안선이 후퇴하고 있다 |
| ⓒ 오영식 |
10여 년 전만 해도 겨울철이면 꽁꽁 얼어붙던 앞바다는 이제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과거에는 여름철인 12월부터 2월 사이에만 드물게 비가 내렸지만, 최근에는 7월 같은 한겨울에도 종종 비가 내리는 날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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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펭귄마을 세종기지 2km 거리에 남극특별보호구역 으로 지정된 펭귄 집단서식지가 있다 |
| ⓒ 오영식 |
과거 여름에도 눈으로 뒤덮여 있던 이 지역은, 이제 겨울이 아니면 눈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펭귄들은 마치 사막처럼 건조하고 황량한 땅 위에 알을 낳고, 그 위에서 새끼를 부화시키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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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의 해양 연구활동 이제는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아 해양조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
| ⓒ 오영식 |
연구 활동을 위한 월동연구대의 팀워크
세종기지처럼 연구원이 1년 내내 현지에 머물며 과학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지 자체의 안정적인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에 필요한 각종 전자장비와 실험 시설을 가동하려면 전력 공급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 대형 발전기와 연료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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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관측실 세종기지는 온실기체를 관측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
| ⓒ 오영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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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기지의 제설작업 눈이 많이 내려 주기적으로 전 대원이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
| ⓒ 오영식 |
세종기지의 식재료와 연구물품은 연 1회, 보급선을 통해 한꺼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출항한 선박은 칠레를 거쳐 남극까지 도달하며, 수십 개의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채 기지 앞바다에 정박한다. 이후 대원들은 이를 육상으로 옮긴 뒤, 냉장·냉동·건조 창고로 나눠 분류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우리 차대의 보급선 도착을 하루 앞둔 날, 대원들은 다가올 대규모 하역작업을 앞두고 기지 주변의 빙하 지대를 탐사했다. 모처럼 찾아온 맑은 날씨 속에서, 대원들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긴장 속의 각오를 다졌다.
그러던 중 필자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었다. 빙하 위를 걷다 순간적으로 얼음이 무너지며 균형을 잃었고, 반사적으로 앞에 있던 얼음을 붙잡아 머리 부딪힘은 피했지만, 그 순간 왼쪽 어깨가 빠지는 탈골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감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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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활동 중 탈골된 어깨 보급선 하역 전날 해안선의 유빙을 탐사하다 어깨가 빠졌다 |
| ⓒ 고용수 |
사고 직후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팔을 위로 뻗을 때마다 염좌와 같은 통증이 남았다. 의료 대원에게는 근육통이라며 둘러대고는 조용히 파스를 받아 붙이고, 예정대로 하역작업을 모두 마쳤다.
남극의 조용한 연대... 그리고 라면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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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기지 보급선 하역 1년치 생활할 식량과 연구 물품을 한번에 보급받는다 |
| ⓒ 오영식 |
하지만, 최근 들어 과학기술 분야 예산이 줄어들면서 기지 운영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조차 연말 전에 바닥나는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세종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이곳, 남극에서도 태극기를 펄럭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다하는 월동연구대 덕분에 이 깃발은 38년째 멈추지 않고 바람을 견디고 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아들 손잡고 세계여행”)와 유튜브 채널(“오씨튜브”)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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