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의 조용한 가방이 시끄럽게 인기인 이유

“당신의 이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말을 누군가 내게 한다면 그날 하루는 분명 어제보다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나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목소리에 기분은 뭉클해지고 자신감이 붙어 으쓱해진 어깨가 눈에 선한데요.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정도의 힘을 가진 이 문장을 보테가 베네타는 1970년 초반 광고 캠페인 슬로건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당시 패션계는 화려하고 큼직한 로고 플레이가 부각됐는데요. 그래야 잘 팔린다고 믿었을까요. 그 한복판에서 보테가 베네타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제품에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브랜드의 원칙을 고수한 채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단호하게 메시지를 건넸습니다. ‘당신의 이니셜만으로도 충분합니다(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 . 우리의 이름 대신 당신이 주인공이며, 우리의 이름 없이도 당신은 빛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지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정말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죠. 대신 인트레치아토가 전부를 말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요.


이탈리아어로 ‘직조, 엮음’이라는 뜻의 인트레치아토 는 얇고 가느다란 가죽 스트랩을 손으로 정교하게 엮는 수공예 기법을 일컫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직조 패턴은 보테가 베네타를 식별하는 얼굴이자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징표로 널리 알려져 있죠. 그리고 이렇게 설명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보테가 베네타의 역사는 인트레치아토의 역사와 일맥상통합니다. 1970년대 중반 보테가 베네타의 장인들은 바느질이 어려운 두꺼운 가죽의 해법으로 끈처럼 얇게 절단한 가죽을 하나하나 엮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수평 직조 대신 대각선으로 촘촘히 짜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결과물이 소스라치게 놀라웠습니다. 부드러운 실루엣과 역동적 미감을 갖춘 보테가 베네타의 독창적 디자인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죠.
뛰어난 가죽 공예 기술을 넘어 미적 가치를 동시에 구현한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보테가 베네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배경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특유의 대각선 짜임은 지난 반세기 동안 보테가 베네타의 인장으로 인식됐을 뿐 아니라 수공예와 창의성이라는 하우스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 로서 기능해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인트레치아토는 보테가 베네타의 정체성과 철학을 견고하고 우아하게 엮어냈습니다.


1980년에는 한 편의 영화가 기폭제가 되어 보테가 베네타의 팬덤이 크게 형성됐습니다. 할리우드 흥행작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배우 로렌 허튼이 착용한 인트레치아토 클러치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유의 직조 패턴이 단숨에 신스틸러가 된 것이죠. 자고 났더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여러 성공기처럼 영화에 등장한 클러치는 큰 화두가 됐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죽으로 엮은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을 알아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수공예 기술 하나로 브랜드의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된다면 그건 꽤 근사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보테가 베네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무실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동료 에디터가 있습니다. 출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그가 등장하면 벌어지는 장면만큼은 거의 일정합니다. 책상에 가방을 툭- 하고 던지듯 내려놓는데 무수히 많은 연습을 거친 체조 선수처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고 유려해요. 이런 감상에는 아무래도 가방이 한몫하는 것 같은데요. 그 가방을 말하자면 단단하지 않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지만 빳빳하지도 않더군요.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무심한 우아함의 형태랄까. 딱 그만큼의 주의를 끌고 이내 품위를 유지하며 책상 위에 안착하곤 합니다. 짐작했겠지만 가방에는 인트레치아토의 짜임이 있습니다. “이 가방을 좋아하는 이유라면 존재감이죠. 보테가 베네타는 요란하지 않게 그저 자신을 증명하는 것 같아 좋아요. 첫 가방을 구매했을 때 매장 직원의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손으로 가방을 쓸어내리면 가죽의 묵직함과 짜임이 촉감으로 와닿으면서 헤리티지가 말없이도 들리고 보이니까. 보테가 베네타는 저한테는 소유하고 싶기보단 이해하고 싶은 브랜드예요. 그리고 조용한 자신감이랄까, 이 가방에는 제가 갖고 싶은 그런 태도가 묻어나 오래 좋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딱 들었어요.”


그의 사연은 이런데, 보테가 베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오래 함께해도 디자인이 질리지 않다, 같은 짜임처럼 보여도 색감, 두께, 곡선이 다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 손에 맞게 길들여진다, 로고를 과감히 지운 조용함이 오히려 큰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결국 보테가 베네타의 가치는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에 더 밀접한 것 같습니다. 그 감각의 중심에는 인트레치아토가 우뚝 존재하고요.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직조 기법은 세상에 소개된 지 50년째가 되는 올해까지도 장인의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충실히 계승되어 동시대의 위시리스트를 채우고 있습니다. 시대와 유행을 뛰어넘는 클래식이란 바로 인트레치아토를 두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와중에 창의성이라는 브랜드의 기조를 잊지 않으려는 듯 인트레치아토는 변화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색상, 형태, 구조, 크기의 변주를 거듭하며 50가지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말을 건넸는데요.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보테가 베네타의 조용한 가방이 시끄럽게 인기인 이유 - FASHION
- 보테가 베네타와 스키즈 아이엔이 전한 손짓의 의미 - FASHION
- 몽블랑의 헤리티지 - FASHION
- 하얀 눈 사이 분크 - FASHION
- 송중기, 정수정이 함께한 랄프 로렌의 영화 같은 봄날 - FASHION
- 매일 들고 싶은 가방 선물 - FASHION
- 안아주고 또 안기고 싶은 가방, 페라가모 허그 백 - FASHION
- 허리에 두르는 벨트 백 아니고 벨트가 달려있는 벨트 백 - FASHION
- 디올의 강렬한 에너지가 담긴 가방 - FASHION
- 가방 추구미, 여기 다 있지! - BEAU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