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만드는 명품 부채, 부채 둘이 하나가 되는 쌍죽선
남원 조산동의 전통 부채 명인 김복남 선자장은 오수 인화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기자는 이 학교의 교사로 국어를 가르칩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발표하는 국어 시간에 이 부채 명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소개합니다. <기자말>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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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죽선 김복남 명인 공방 |
| ⓒ 최원석 |
남원 조산동은 백수십 년 전부터 널리 이름난 부채 마을이었다. 마을 앞 요천 둔치와 제방, 마을 안 골목과 집집 공터에는 부채를 널어놓아,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풍경이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복남 명인은 어릴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부채를 만들어야 했다. 할머니는 '너는 학교 갈 게 아니라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네 동생들도 밥 먹고 살고, 오빠도 가르친다'라고 하였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학교에 가는데, 명인은 매일 부채를 만들어야 했다. '아버지 나 이거 하기 싫어' 하며 날마다 울면서도, 배울 때는 확실하게 하나하나 배워갔다. 부채 만드는 일은 모든 과정이 힘들다. 우선 대나무를 잘라다 통에 담가 한두 달 발효를 시키면 대나무가 조금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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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
| ⓒ 최원석 |
1980년대. 부채가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었다. 선풍기가 집마다 보급되고,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내보냈다. 값싼 외국산 부채가 쏟아져 들어왔다. 부채 만들며 사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온 마을이 부채를 만들었던 남원 조산동에서 부채 만들기를 포기하는 집들이 늘어났다.
김복남 명인은 남편과 함께 '이왕 하던 거 끝까지 하자'며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제 우리도 한번 머리를 써보자. 조그마한 부채도 만들어 보고, 큰 부채도 만들어 보자. 부채 손잡이에 대나무 뿌리를 붙이기도 해보자. 밀려오는 값싼 외국산 부채를 우리는 품질로 맞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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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
| ⓒ 최원석 |
1985년.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어떤 책자를 보고, 방구 부채 하나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그 부채는 오랫동안 만드는 방법이 잊힌 것이었다. 명인 부부는 인생을 걸고 닦아온 기량을 발휘하여 이 특별한 부채를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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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제작 과정 |
| ⓒ 최원석 |
이어서 방사형으로 펼쳐진 부챗살이 모이는 두 부분을 서로 결합한다. 이어서 두 손바닥을 맞대어 손가락 열 개를 깍지 끼어 쭉 펴듯, 두 쪽 손잡이에서 펼쳐진 두 쪽의 부챗살을 한 개씩 번갈아 가며 엮어서 한 모양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엮어진 부챗살 아래쪽을 둥근 고패를 이루게 실로 묶어서 부챗살들의 위치를 고정한다.
이렇게 손잡이와 부챗살이 일체가 된 방구 부채 두 쪽을, 서로 맞대고 부챗살을 번갈아 엮어서 쌍죽선 기초 재료 하나를 만드는 과정이 특별하다. 특히 부챗살이 모여 두 쪽이 하나로 서로 결합하는 두툼한 부분은 망치로 적당히 두드리면 판판해지는데, 명인의 솜씨가 필요하다. 이 쌍죽선 기초 재료의 양면에 한지를 입히고 말려서 가위로 재단하는 과정은 여느 방구 부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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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제작 과정 |
| ⓒ 최원석 |
튼실한 부챗살이 부채 면의 한지를 잘 펼치고 있어서, 부채 면에 그림 그리고 글씨 쓰면 번지지 않았다. 남원 조산 쌍죽선은 이름이 나기 시작하며 부채 주문량도 증가했다. 남편 최수봉 명인은 쌍죽선 만들기 시연으로 텔레비전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김복남 명인의 홀로서기
남원 조산의 쌍죽선이 명성을 얻어가며, 최수봉 부채 공방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5년 전에 최수봉 명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 무렵 최수봉 명인은 국가 무형유산 선자장에 지정되었다. 부부가 50여 년을 서로가 손이 되고, 귀가 되고, 눈이 되어 늘 함께하며 부채를 만들어 온 당신이었다. 김복남 명인은 남편을 갑작스레 보내고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눈물로 나날을 지냈다.
나 혼자 남은 세상, 나 혼자 먹고 살겠다고 이렇게 힘들게 할까? 그냥 집어 치워버릴까?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만든 부채, 지금도 나를 이렇게 찾아주는 분들이 많은데. 마음을 다져 먹었다. 홀로 서려면 더 힘을 내야 했다. 한글 문해교실 초등 과정에도 찾아가서 등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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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
| ⓒ 최원석 |
(최수봉 명인) 자네가 기술이 좋으니까, 자네가 신청하게.
(김복남 명인) 당신을 두고 제가 앞장설 수는 없지요. 저는 뒤에 서 있을게요.
(부채 공방에 온 분들) 아니 사모님 기술이 좋은데요. 사모님 이름으로 신청하시지요.
부채를 함께 만들면서 최수봉 명인이 기본을 해 주면, 김복남 명인이 나머지를 다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챗살을 일정하게 쪼개고, 부챗살을 엮는 부채 만들기 공정은 오랜 세월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몸에 배어야 한다. 이제는 김복남 명인의 차남 최원석(45)씨가 전수자로서 유일하게 남은 남원 조산 부채의 수작업 장인 정신과 기량,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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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
| ⓒ 최원석 |
부채와 연필
김복남
지독하게 추웠던 지난겨울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갑작스레 떠난 당신
가난은 어린 나를 부채와 함께 가두고
학교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
육십 평생을 당신과 손 맞추며
부채 만들어 자식 키우고 가르치며 살았는데,
나의 손이 되고 귀가 되고 입이 되어준
당신을 보내고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눈물로 지내던 나날들.
이제 가슴에 묻어둔 배움의 씨앗을 꽃 피워보렵니다.
혼자서도 자신감 있게 살아가렵니다.
내가 제일 잘 하는 부채 만들던 손에
이제는 연필도 함께 있습니다.
같은 세상인데 새로운 세상을 사는 듯
오늘 행복합니다.
김복남 명인은 문해교육 교실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올해 3월에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자리한 인화초중고등학교(교장 김태수)의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다. 평일 오전에는 학교에서 연필을 잡고 공부하는 중학생이고, 오후부터는 행복하게 전통 부채 쌍죽선을 만드는 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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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남 명인 쌍죽선 공방 |
|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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