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서 열대야 시달린 전두환... "선풍기 한 대도 반입시킬 수 없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5. 7. 15. 14: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윤석열 있는 구치소에 에어컨 설치? 이미 선례 있다

[김종성 기자]

내란죄에 더해 외환죄 혐의까지 받고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전화와 팩스가 빗발치면서 교정당국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구치소 전화 및 팩스 번호와 더불어 휴대폰을 통한 팩스 송신법을 공유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한 선례가 있다. 동종 전과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교도소 여름나기로 인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전두환에 대한 분노 확산... 교정당국 태도도 바뀌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하는 전두환의 모습.
ⓒ 연합뉴스
1995년 12월 3일 구속영장이 집행돼 안양교도소에 수감될 당시, 전두환은 일반 재소자에 비해 특혜를 받았다. 교정당국은 11월 16일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형평을 맞추는 데만 주력하고, 일반 재소자들과의 형평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해 12월 4일자 <한겨레> 5면에 "법무부는 전씨의 수감 생활에 대해 경계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고 노태우 씨와 처우를 같게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런 원칙이 정해지다 보니 일반 재소자에 비해 좋은 환경이 제공될 수밖에 없었다. 위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안양교도소 측은 영장청구 방침이 알려진 2일 오전부터 일반 재소자들이 쓰던 방을 고쳐 노씨와 같은 3.5평짜리 독방을 마련했다. 또 나무침대와 책상·의자, 이불장 등을 두어 노씨와 형평을 맞췄으며 간접난방 시설도 갖춰놓았다. 수감방 바로 옆에 조사·면회를 위한 5평짜리 접견실과 수세식 변기·세면대 등이 갖춰진 1평 안밖의 세면실을 마련한 것도 노씨와 같다."

교정당국은 특혜조치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런 배려가 최소한의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일반 재소자와 달리 부대시설이 딸린 3.5평짜리 방을 주고 면회 등에서 차별대우를 하는 것과 관련해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하는 등 '특별예우'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라고 위 기사는 전했다.

재소자 전두환이 특혜를 누리는 가운데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법정 공판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96년 여름이 되고 삼복더위가 찾아왔다. 이 해의 초복·중복·말복은 열흘 간격인 7월 22일, 8월 1일, 8월 11일이었다.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릴 때였다. 이런 날씨는 전두환에게 제공된 특혜가 도리어 짐이 되게 만들었다. 8월 4일 자 <조선일보> '전-노씨 잠 못 이루는 열대야'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이 수감된 감방은 콘크리트 슬라브 건물. 한낮의 복사열로 달구어져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열대야 현상이 심해 일반 가정집보다 5도가량 높은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구치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안양교도소에 있는 전씨의 방은 34년 된 낡은 남서향 2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어 더위가 더욱 심하다는 것."

위 기사는 전두환의 최측근인 민정기 비서관과 이양우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3.5평 크기의 독거실은 일부러 땀을 빼기 위한 사우나실과 같다", "전 대통령은 오후부터 자정 무렵까지 온몸이 흥건할 정도로 땀이 배어나", "필기구를 잡은 손이 미끄러질 정도로 양쪽 팔꿈치 아랫부분이 땀으로 젖어 최후진술도 메모하기 어렵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교정 당국은 특혜를 제공하지 않았다. 위 기사는 "선풍기 한 대도 반입시킬 수 없다"는 것이 법무부의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과 인터뷰한 당국 관계자는 "유엔의 피구금자 처우준칙 권고사항에는 '누구든지 죄를 짓고 구금된 사람은 그 나라의 착하고 가난한 사람에 준해 처우하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대로 할 수는 없다"라고 발언했다.

위 기사는 법무부가 "이들을 특별대우할 경우의 국민적 비난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년도 겨울만 해도 특혜를 제공했던 법무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전두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국민감정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95년 겨울만 해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형평성을 맞추는 데 고심하던 교정당국이 1996년 한여름에는 전두환과 일반 재소자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신경을 썼다. 그에 대한 분노가 더욱 확산된 결과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안양교도소의 분위기도 변수가 됐다. 이곳은 제5공화국판 서대문형무소였다. 전두환이 수감되고 이틀 뒤에 보도된 <한겨레> 22면은 "안양교도소는 5공 시절 전씨가 자신에 대한 반대투쟁에 나섰던 이른바 시국사범을 대량으로 구속해 수감시켰던 곳"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수도권 지역 양심수들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전두환 집권기에 이곳에 수감된 전체 양심수가 2천 명 이상일 것이라고 기사는 추산했다.

이곳은 전두환이 처음 수감됐을 때부터 이상한 조짐을 보였다. 1995년 12월 8일 자 <조선일보> 39면 최하단에 따르면, 그때부터 재소자들이 강한 불만을 표출했고 양심수들은 항의 차원의 단식 투쟁을 결의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도 전두환 독방에 선풍기를 넣기는 힘들었다.

<전두환 회고록> 제3권은 '안양교도소에서 보낸 750일'이라는 소제목 밑에서 "수감생활의 불편함 같은 것은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어린 시절 고생과 육사 및 군대 경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1996년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해 봄·여름·가을·겨울은 법정에 불려 다니느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회고록을 보면 삼복더위가 별것 아니었던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위의 '전-노씨 잠 못 이루는 열대야'에 따르면, 민정기 비서관과 이양우 변호사는 전두환이 온종일 부채질을 하면서 하루 서너 번 샤워를 한다고 전했다. 이때가 전두환의 수감생활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 때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실질적 형벌이었다.

더위 피해 접견실로... 공식적으로는 선풍기 없어
 1996년 3월 11일, 전두환이 안양교도소를 떠나 12.12 및 5.18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전두환이 온종일 부채질을 한다'고 전하는 대목에서 비서관과 변호인은 다소 이상하게 말을 했다. "전 대통령은 오후부터 자정 무렵까지 온몸이 흥건할 정도로 땀이 배어나 종일 부채질을 해야 하고 하루 서너 번씩 세면장에서 샤워를 한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한여름인데도 '오전부터 땀이 흥건했다'고 하지 않고 '오후부터 흥건했다'고 말했다. 오전 시간대에는 땀이 나지 않는 곳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실질적 형벌'이 오전에는 가해지지 않고 오후에만 가해졌던 것이다.

그의 수감 생활 1년을 총정리하는 1996년 12월 4일 자 <동아일보> '옥중생활 1년 전두환씨'는 "전씨는 오전 일과 시간 대부분을 일본어 공부와 가족과 변호인 접견으로 보내고 있다"라며 부인 이순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면회한다고 전했다.

위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교도소 생활의 상당부분이 변호인 접견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공판이 없는 날은 변호인을 접견해 다음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접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의 실제 넓이는 독방 3.5평과 접견실 5평을 합한 8.5평이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선풍기가 지급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인 접견실에서 무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 호사가 특히 오전 시간에 집중됐던 것으로 보인다.

독방 바로 옆의 접견실을 수도 없이 출입한 이양우 변호사는 독거실이 사우나실 같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출입하는 접견실도 그처럼 더웠다면, 독거실만 특정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여름에는 접견실이 전두환의 피서지가 됐다는 점이 이양우 변호사의 말에서 드러난다.

그런 변칙적인 방법으로 삼복더위의 고통이 감소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선풍기가 지급되지 않았다. 수감된 전직 대통령의 복리도 당연히 고려돼야 하지만, 윤석열과 동류인 전두환의 경우에는 그의 복리보다는 그의 죄악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만 선풍기가 지급됐다면, 한여름의 국민감정이 더 크게 폭발했을 것이다. 전두환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안양교도소 재소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을 것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