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 모네, 앤디 워홀을 지나 만난 남아프리카 20세기 미술
[전사랑 기자]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서 온 143점의 소장품들이 경주, 부산, 제주에 이어 서울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세종문화회관 미술관, 5월 16일~8월 31일까지)라는 타이틀처럼 근현대 서양 미술사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소장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다 이 많은 작품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미술관에 소장될 수 있었을까?
예술 애호, 기증 그리고 미술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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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토니오 만치니, <필립스 부인>, 1909.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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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니엘 세이거스, <꽃병에 꽂힌 꽃>, 1661. |
| ⓒ 전사랑 |
프랑스 근현대 미술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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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가 드가, <두 명의 무희들>, 1898.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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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드 모네, <봄> 1875.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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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 시냑, <라로셀>, 1912. |
| ⓒ 전사랑 |
혁신적인 기법을 선보이며 화단의 비판이나 대중의 이해를 받지 않고도 조르주 쇠라와 함께 점묘법 화파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다양한 색채를 캔버스에서 직접 섞지 않고 대신 점을 찍어 관람자의 눈에서 색이 혼합되게 하는 점묘법의 색채는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듯,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국 근현대 미술
개인적으로 이 전시를 꼭 보고 싶었던 이유는 한국에서는 소개된 적이 드물었던 영국미술 작품들 때문이었다.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과 큰 관련이 있다. 필립스 부인이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영국에 거주하던 시절, 영국 윌리엄 시커트, 라파엘 전파 작가들, 윌리엄 오펜 등의 영국 근대미술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미술 화가로는 윌리엄 터너, 존 컨스터블, 현대미술 화가로는 데이비드 호크니 등 한국에 자주 소개되는 영국 화가들이 있지만 19세기 영국미술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윌리엄 터너, 존 브렛의 작품뿐 아니라 라파엘 전파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영국에서 1848년 등장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는 영국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미술을 이상으로 삼고 이를 그대로 표방한 아카데미가 화단의 대부분이었다.
완벽한 비율과 대칭으로 사물과 인간을 묘사한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모든 미술학도들이 모방하고 따라야 했던 규범과도 같았다. 이 완벽한 '모범'을 따르기도 바쁠 것 같은 신진 화가들이 역으로 오히려 르네상스 회화의 대가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일으킨 것이다.
라파엘 전파는 이상적인 환경과 인물이 아닌, 자연에 직접 나가 풍경을 묘사하고, 당대 회화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실제 여성의 모습을 담대하게 그렸다. 그들은 예리한 관찰을 통해 자연에 충실하고자 했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감각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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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레지나 코르디움>, 1860. |
| ⓒ 위키피디아 커먼스(퍼블릭 도메인) |
'레지나 코르디움'은 '마음의 여왕'이라는 라틴어이다. 로제티가 모델인 시덜과 결혼 직후 그린 작품으로, 사랑의 열정, 이상, 숭배의 감정이 드러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랑을 상징하는 여성과 비교해 볼 때 이 작품은 파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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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에버릿 밀레이, <한 땀 한 땀>, 1876.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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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에버릿 밀레이, <오필리아>, 1851. |
| ⓒ 위키피디아커먼스(퍼블릭도메인) |
풍부한 현대미술의 교과서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화가들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피카소, 마티스는 물론이고 팝아트의 시발점 리처드 해밀턴부터, 리히텐 슈타인,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까지, 대표작은 아니지만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이 대거 소개되었다.
작가 회고전도 좋지만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 되었을 때는 동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거나 특정 시기가 지난 후 작품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알아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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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랜시스 베이컨, <남자 초상에 관한 연구>, 1969. |
| ⓒ 전사랑 |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명화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쯤,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20세기 미술에 이른다.
그리고 남아공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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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켄트리지, <물에 잠긴 소호>, 1999. |
| ⓒ 전사랑 |
무릎까지 차오른 물은 누군가의 피와 눈물일 터. 켄트리지의 아버지가 인권 변호사로서 넬슨 만델라 재판에 참여했다는 것이 역사적 죄책감과 태어나자마자 란드로드였던 그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켄트리지의 예술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이라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작업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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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라드 세코토, <오렌지와 소녀>, 연도미상 |
| ⓒ 전사랑 |
명화들이 순회전을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
식민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이후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 소장된 명화들의 운명은 어땠을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독립 뉴스 주간지 데일리 메버릭은 2022년 기사에서 "한때 생기 넘쳤던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가 폐허로 무너지다"라고 보도했다. 미술관 건물은 사실상 방치 됐고, 천장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등 미술품 관리에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치달았다는 것. 2024년 보도에 따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 져서, 문화유산 전문가들이 요하네스버그 시장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기사를 종합해 보면 1910년 개관할 때만 해도 당시로선 아프리카 최고의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던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 이후 재정 지원이 줄다가 2000년 이후는 본격적인 쇠락의 수순을 밟았다. 일부 작품이 도난되고 큐레이터도 이탈하는 등, 미술관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씩 그 자리를 잃어 갔다. 무엇보다 미술품들이 사실상 창고에 방치 돼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이에 단순하게 소장품을 팔아서 재정 상태를 극복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소장품 처분(deaccession)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소장품의 잠재적 금전적 가치"가 처분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참고 https://icom.museum/en/resources/standards-guidelines). 미술관 재정 확보를 위해 국가소유, 혹은 기증품을 파는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화들의 국제 순회전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가까운 곳에서 명화들을 만날 수 있는 호사를 누렸지만 식민 지배의 대가를 작품들도 함께 치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024년, 요하네스버그 시장이 미술관의 복원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이 그 설립 취지에 걸맞게 필립스 부인의 오랜 꿈과 열망을 담을 수 있는 소장품들의 안전한 거처가 마련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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