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로의 진입, 정부 대응만으론 부족하다

허재영 2025. 7. 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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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퓨처] 위험 거버넌스 체계 확립이 필요

[허재영]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6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새 정부가 기후정의 원칙에 기반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맞게 수립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2035NDC 정의롭게 수립’ ‘탄소중립기본법 전면 개정’ ‘많이 배출하는 자, 많이 책임져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재구성’ 등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온실가스 감축’을 선택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위험사회(risk society)는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위험 요소가 증가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위험사회라는 개념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발간한 저서 <위험사회(Risk Society)>(1986)에서 처음 제시됐습니다. 이 책에서 울리히 벡은 현대 산업 사회의 특징을 '위험사회'라고 정의하였는데,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과거의 위험은 자연재해나 전쟁 등에서 비롯된 불가항력적 위험이었으나, 현대 사회의 위험은 정치·경제·사회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인위적인 위험이라고 주장하며, 울리히 벡은 사회가 산업화되어 발전할수록 위험과 그로 인한 불안이 증대되는 위험사회가 될 것을 전망했습니다.

위험(danger)과 위험(risk)

울리히 벡은 위험을 자연에 의해 초래되는 위험(danger)과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초래되는 위험(risk)으로 구분합니다. 또 위험요소(hazard)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잠재적으로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하며, 유해한 상황이나 물질을 가리킵니다. 재해(disaster)는 과거에는 자연재해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현대에서는 자연재해(natural disaster, 천재 天災)와 인위재해(man-made disaster, 인재 人災)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재해는 위험이 구체화(현실화)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자연재해는 인위적으로 완전히 근절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를 초래하는 어느 정도 크기의 외력(외부의 힘)을 고려한 시설물의 설계 및 시공, 방어 시설물의 구축, 재해 발생의 사전 예측에 따른 예방조치, 재해 발생 시의 신속한 복구 대책 수립 등으로 재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인위재해란 인간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사고성 재해와 고의적으로 자행되는 범죄성 재해 그리고 산업의 발달에 따라 발생하는 환경 피해 등을 비롯한 기타 재해를 총칭합니다. 재난은 재해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재해는 발생한 피해를 가리키는 반면, 재난은 우리나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재해로 정의하고 있고, 자연재난(natural disaster)과 사회재난(social disaster)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즉, 재난은 발생한 재해 중에서 피해를 일으킨 재해를 가리킵니다.

위험사회에서 대상으로 하는 위험은 인위적으로 초래하는 위험을 말합니다.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가 위험사회가 된 원인으로는 가장 먼저 과학기술을 지적했습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막대한 생산력과 물질적인 풍요를 축적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과 같은 현재의 위험 상황을 초래하게 됐다고 봤습니다. 위험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위험도 더불어 늘어나는 사회가 되어 정작 개인의 삶은 불안하고 위험해지는 상황이 전개된다고 본 것입니다.

현대는 현대성을 갖춘 인간 사회가 위험을 만들어내고, 그 위험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인식하면서 이를 줄이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같이 전 지구적 생태환경 및 자연재해와 관련된 위험은 물론이고, 1997년 발생한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경제위기 등 급격한 경제체제 붕괴 사태, 2002년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2009년의 신종플루(H1N1), 2015년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9년의 급성호흡기질환(COVID-19)과 같은 신종 출몰형 감염질환의 창궐 등의 대형 악재는 현대 사회가 생산하는 위험과 위험관리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위험사회와 위험인식>(주영기·유명순), 2022).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성적 현대성(自省的 現代性 reflexive modernity)이라는 개념이 생겼는데, 과학과 기술을 통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부산물로 현대적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는 자성적인 인식에 따라 그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체계화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위험사회'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가치지향보다는 상존하는 위험을 막는 일에 사회가 최우선 가치를 두게 되는 사회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위험은 개념적으로 자연이 우발적으로 유발하는 재난에 관한 위험을 의미하지 않고 인간의 결정(decision making)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재난에 관한 위험을 말합니다. 자연재해에 관해서는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과도한 개발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재난의 발생 가능성을 위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4대강 사업에서 만든 보로 인해 녹조가 과도하게 발생하고, 이로 인해 농업이나 국민의 건강에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21세기의 긴장 영역은 계층 간의 격차로 인한 계급사회의 재등장, 외국인 이주로 인한 인종 갈등, 인구 구조에 따른 세대 간 갈등, 가족의 위기, 젊은 계층과 여성의 빈곤, 빈곤층 교육의 결핍, 대중문화를 포함한 소비의 계급화 등에 걸쳐 있습니다.

암울한 예측과 대비책

문제는 이러한 긴장 영역이 미래에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보는 암울한 예측에 있습니다. 대형 사고를 예방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인식되는 사회 패러다임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도래할 것임이 예상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최근에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과거의 통계에 근거하여 수립하는 방재 대책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규모로 발생하고 있고, 재앙 수준의 자연재해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이러한 재난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위기(climate crisis)로 규정하게 된 전지구적 상황에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계급사회의 재등장에 따른 소득의 양극화, 이념의 양극화 등은 정부 등의 기관의 힘만으로는 대응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UN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설정했습니다. SDGs는 전 세계 빈곤을 종식시키고 지구를 보호하며, 2030년까지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목표로서 2015년 UN에 의해 채택됐습니다.

총 17개의 SDGs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한 행동은 다른 목표 달성에 유기적인 영향을 미치며, 발전을 통해 사회·경제·환경적 지속가능성이 균형 있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목표 전반에 반영돼 있습니다.

UN에 속한 국가들은 가장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발전을 우선시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빈곤, 기아, 에이즈, 그리고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차별을 종식하기 위해 설정됐습니다. 전 세계가 SDGs를 완전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의 창의성, 노하우, 기술 및 재원이 필요합니다.

각 국가들은 SDGs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 즉 위험요소를 줄인 미래 사회를 위한 느슨한 지구적 거버넌스를 구축한 셈입니다.

거버넌스 개념의 특징은 국가를 유일한 관리 통치의 주체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주체로 명시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조직과 관리에 관계되는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을 동시에 고려하는 개념이 거버넌스인데, 이는 정책과 정치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확장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를 조직하고 통제 관리하는 주체에 대한 더욱 확장된 시각이 등장한 것은 다양한 형태의 관점을 가진 관계자들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즉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되고, 시민 참여 및 비정부기구(NGO) 활동이 활성화되고, 민간 영역의 역할이 변화하고, 정책 이슈가 복잡해지고 이에 따른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등 사회 변동 및 시대적 경향성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런 거버넌스의 개념적 확장을 고려할 때, 위험 거버넌스(risk governance)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를 책임질 정부는 물론이고 위험 평가(risk assessment)를 담당할 과학자, 미디어, 시민단체, 소비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위험소통(risk communication)을 포함하여 위험 대응 과정에서 수행할 역할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개념입니다.

국제적인 협력도 필요합니다. 특히 감염병으로 인한 위험에 대비한 협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위험거버넌스위원회(International Risk Governance Council, IRGC)는 인간과 환경의 건강, 경제와 사회, 전반적인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 및 체계적 위험의 관리를 개선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독립적인 비영리단체인데, 글로벌 위험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프레임워크 및 지침 개발, 새로운 또는 체계적인 위험 문제를 식별 및 이해하고, 의사 결정자에게 위험 거버넌스 정책 조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위험한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위험을 감소하기 위한 노력은 정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위험 요소의 파악, 위험 평가, 위험소통, 위험관리를 위한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대응하는 위험 거버넌스의 체계가 확립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위험을 최소화하고, 피해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입니다.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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