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안마사 울리는 불합리한 행정 관행

신경호 2025. 7. 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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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해석 바뀌었지만 묵살되는 현실

[신경호 기자]

 시각장애인 안마사도 서비스노동을 수행하는 엄연한 노동자다. 그럼에도 이들의 건강권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지 오래다.
ⓒ pixabay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안마시술기관 개설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법제처와 보건복지부가 이미 잘못된 관행이라고 해석했는데도, 여전히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원 개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의료법 제82조는 안마 업무를 시각장애인의 고유 직역으로 보호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사로서 활동할 수 있으며, 안마시술기관 개설은 의료법 제82조와 의료법시행규칙 제25조에 근거하고 있다. 안마시술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개설과 동일한 조항을 준용하는데,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10조에서는 특례조항을 두어 '안마시술기관 개설에 관한 의견서' 제도를 마련했다. 이 의견서 제도는 과거 무자격 불법업자들이 안마사의 명의를 도용하여 안마시술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규정에 따르면 안마시술기관을 개설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개설신고를 하면, 개설신고를 접수한 시·군·구청장이 대한안마사협회에 직영 여부에 관한 의견을 묻도록 되어 있다. 협회는 안마사에 관한 규칙 별지 14호 서식에 따른 개설에 관한 의견서를 해당 시,군,구에 제출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안마사들이 먼저 협회에서 의견서를 발급받아 개설 신고를 할 때 첨부해야만 신청서류가 접수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즉, 시각장애인 안마사는 안마원 개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협회에서 의견서를 발급받아야만 신고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법령의 취지와 절차를 위반한 행정 관행이다.

이 규칙의 특례조항에 따르면 개설신고를 받은 시·군·구청장은 대한안마사협회에 직영 여부에 관한 의견을 문의해야 한다. 협회는 안마사에 관한 규칙 별지 14호 서식에 따른 개설에 관한 의견서를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과정을 뒤바꿔, 안마사가 개설 신고 시 스스로 협회의 의견서를 첨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행정기관이 해야 할 일을 자신들이 떠맡는 형태로 불합리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릇된 관행이 낳은 2차 피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그릇된 행정 관행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까지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안마사협회가 의견서 발급을 미끼로 과도한 회비 징수나 심지어 불법적인 금품 요구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에서 안마원을 개설한 A씨는 안마수련원을 졸업한 지 8년이 지나 안마원을 개설하려 했으나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협회에서 그동안 미납한 회비 약 170만 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개설의견서를 내줄 수 없다고 했어요. 결국 미납회비와 개설등록비 50만 원을 합해 약 200만 원을 납부하고서야 의견서를 겨우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서 안마원을 개설하려 했던 B씨는 맹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친 후 해외에서 30년간 생활했다. 귀국 후 안마원을 개설하려 하자 협회는 30년간의 회비를 요구했다.

"만약 회비를 면제 받으려면 해외에 있었다는 증명서나 30년 전 대학 재학 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30년 전 서류를 어떻게 구하란 말인가요?"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행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공익 법인 소속 변호사는 "안마사협회는 사단법인이므로, 회비는 소멸시효 3년이 적용되는 단기채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즉, 3년이 넘은 회비를 의견서 발급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무시되는 법령해석, 묵살되는 민원

법제처와 보건복지부는 이미 이러한 행정 관행이 잘못되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지난 2024년 1월 10일, 안마사 C씨의 요청에 따라 두 기관은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10조에 의한 개설에 관한 의견서는 개설신고를 받은 시장, 군수, 구청장이 대한안마사협회에 의견을 묻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법령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C씨가 보건복지부에 해당 법령해석을 일선 시·군·구에 전달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보건복지부는 이를 묵살했다.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반응 없이 일선 행정기관에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대한안마사협회도 법령 해석이 바뀐 것을 알면서도 자체 정관이나 규정을 변경하지 않은 채 그동안의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협회가 법령 해석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의견서 발급 과정에서 회원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법제처와 보건복지부가 법령해석을 내렸으면 그에 따라 행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묵살되고 있습니다. 이는 법치행정의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입니다."

C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많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법제처와 보건복지부의 해석이 바뀌었는데도,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여전히 과거 관행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중앙부처가 책임을 방기하면서 시각장애인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죠"라고 지적했다.

개선의 목소리

서울시의 한 보건소에서 안마원 개설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사실 행정 편의상 신청자가 모든 서류를 갖춰 오는 것이 처리가 빠르다 보니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는 측면이 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중앙부처에서 명확한 지침이 내려온다면 즉시 업무 처리 방식을 변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 안마사는 "우리는 시각장애인이라 서류 준비부터 어려움이 많은데, 행정기관이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라며 "협회는 이를 악용해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결국 가장 약자인 시각장애인이 피해를 본다"라고 호소했다.

"행정의 편의를 위해 법령 취지가 왜곡되고, 그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즉시 법령해석을 일선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협회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해야 합니다."

현행 업무 절차가 법령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이끌어낸 안마사 C씨의 주장이다.

이러한 행정 절차의 혼선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영업 개시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관련 기관의 절차 개선과 명확한 지침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 대한안마사협회 안마원 개설 의견서 담당자는 미납 회비를 의견서와 관련해 추징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협회 운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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