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질문 [김선걸 칼럼]
취임 30일 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가장 이른 기자회견을 선택했다. 일단 언론에 열린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전략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역대 대통령은 보통 100일(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나 1년 즈음(박근혜) 첫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100일만 돼도 벌써 총리부터 장관까지 조각(組閣)을 거친다. 정권마다 인사 검증 실패, 측근 기용, 내로남불 논란 등으로 곤혹스러운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30일은 그런 게 없다. 부담 없이 꿈과 비전을 설명하면 된다.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단지, 정작 기자회견은 맥이 빠졌다.
질문들이 아쉬웠다. 일단 0%대로 떨어진 성장률과 자영업자들의 비명 등 경제 대책, 국제 정세를 흔드는 미중 관계와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 인구절벽과 노동개혁 로드맵 등 도전에 직면한 절박한 문제들이 나오질 않았다.
출입기자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질문을 준비한 기자가 많았을 것이다.
거슬린 장면은 추첨을 통해 질문자를 뽑은 것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육성으로 듣는 한 시간 남짓 소중한 자리다. 송곳처럼 질문을 골라도 아까운데 이런 엉뚱한 시스템을 도입할 이유가 있나 싶다.
결과적으로 수십만씩 독자를 가진 메이저 신문사는 물론 KBS, MBC, SBS 등 공중파 기자들은 단 한 명도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례적이다. 어떤 기자들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 먼저 대통령에게 묻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기자단에는 지역 언론도 있고 전문 매체도 있다. 이들은 자기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특정지역 이슈나 소수의 관심사를 논하다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탁현민 전 청와대 비서관이 “추첨해서 기회를 주는 게 좋은 방식이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이 준비한 말을 못하고) 돌아가서 엄청 답답해했을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며칠 뒤 대전 타운홀 미팅도 비슷했다. 참석자 4~5명이 연이어서 개인 민원을 늘어놨다. 참다 못한 이 대통령이 “이러면 민원 상담 창구가 된다”며 말을 끊고 지역 이슈를 질문해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래도 계속 민원만 나왔다. 이 대통령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얘기하면, 대통령이 바쁜 시간을 내 다닐 가치가 있나 싶다”고 말을 맺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DJ)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이 있었다. 미국 기자의 질문 순서가 되자 첫 번째, 두 번째 기자가 연이어 ‘르윈스키 불륜 스캔들’을 질문했다. 김 대통령은 물론 배석했던 청와대 사람들은 망연자실해했다. 그러나 미국 기자들에게 갈급한 질문은 대통령의 스캔들이었다. 이유는 명료하다. 미국 국민들이 알고 싶고 갈급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기자석 맨 앞자리가 왜 오래된 언론이자 전 세계에 영향력을 가진 AP통신인지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정답은 아니지만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사실, 준비되지 않은 회견은 대통령이 가장 손해다. 정작 국민들에게 전하려고 준비한 말을 못한다.
‘뽑기’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출입기자단이 중요한 이슈로 공통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할 언론사를 현장에서 추첨하는 게 낫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30일 만의 기자회견은 그 자체로 높은 점수를 땄다. 다음 회견도 곧 이뤄지길 바란다. 예리한 질문과 깊이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그리고 기자들을 자주 만나기를 권한다.
권력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기자의 질문이다.
가끔은 빈정 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적인 공직자가 되는 가장 검증된 길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8호 (2025.07.16~07.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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