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도 넘었는데 딸에게 "핑거 프린세스"라는 말을 들었다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말>
[박성은 기자]
"엄마, 그거 그냥 누르면 돼. 왜 또 나 불러?"
"나는 이거 깔고 싶은데, 근데 무서워."
"와… 진짜 핑거 프린세스네. 제발 스스로 좀 해보세요."
요즘 우리 집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핑거 프린세스. 뭔가 귀엽고 반짝이는 캐릭터 같지만,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나를 가리킨 말이다. 뜻은 이렇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는 걸 귀찮다고 자꾸 누군가에게 시키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뭔가 해달라고 할 때마다 딸은 농담처럼 말한다.
"핑거 프린세스 등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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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앱스토어에 들어가긴 했지만,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고,뭔가를 잘못 누르면 유료 결제라도 될까 봐 겁이 났다. |
| ⓒ 픽사베이 |
며칠 전, 배달 앱을 깔려고 했다. 앱스토어에 들어가긴 했지만,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고,뭔가를 잘못 누르면 유료 결제라도 될까 봐 겁이 났다.
"이거 좀 깔아줘."
부탁하자 딸이 말한다.
"또요? 핑거 프린세스 소환이네~."
그리고 순식간에 앱을 깔고, 위치 허용 설정까지 척척 해준다. 그리고 원하는 가게에 가서 메뉴를 주문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나는 그걸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는 일인데 왜 나는 못 할까.'
더 민망했던 건 햄버거 가게에서였다. 딸과 함께 간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딸은 키오스크에서 지금 할인되고 있는 메뉴를 주문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봐도 현재 할인되고 있는 메뉴를 찾을 수가 없었고 기껏해야 찾은 것은 할인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또, 고르기도 전에 화면이 바뀌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결국,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할인 메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와, 엄마, 진짜… 얼어붙으셨네. 이러다 햄버거도 못 드시겠네. 이건 마법도 아니고 그냥 터치인데…"
주변엔 나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줄 서 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매장을 나가는 어르신들, 겨우겨우 메뉴는 골랐는데 합산을 할 수 없어 결제까지 못 하고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중년 부부.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머리끝이 쭈뼛거린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는 '핑거 프린세스'로 남지 않겠다고.
디지털 세상은 넓고 빠른데, 사람의 속도는 제각각이다. 기계 앞에 서자마자 척척 원하는 것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참을 보고 누르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도 처음 키오스크를 보고 얼어붙었을 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원하는 메뉴도 고르고 카드로 결제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가슴 떨림과 두근거림, 실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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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푸드코트의 키오스크 모습 |
| ⓒ 연합뉴스 |
중장년층도 상황이 크게 낫지 않다. 고령층(60~70대)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종합, 접근, 역량, 활용 모두 여성보다 남성에서 높고, 60대 초반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또 소득이 높을수록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높았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다가 잘 모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질문한 결과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인터넷 정보 검색, 전문 인력 이용, 지인 도움 요청, 친구 도움 요청, 스스로 문제 해결 순으로 조사됐다. 나처럼 가족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핑거 프린세스'란 말을 듣기 십상이다.
카페, 병원, 관공서, 은행… 이제는 앱이나 키오스크 없이는 이용조차 어려운 곳이 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정보 접근 자체가 막히는 '소외'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런 디지털 약자를 위해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도 각 지자체별로 시행되고 있다.
배우고 싶지만 몰라서 고민 중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무료로 교육을 신청할 수 있는 디지털 배움터 (https://디지털배움터.kr)가 있다. 여기서는 스마트폰 기본부터 키오스크 체험, 앱 설치까지 친절히 알려준다. 또 지자체 자체 교육도 있고 주변 복지관에서도 시니어 디지털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집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을 대할 때 고령층의 심정은 귀찮음보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새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필요에 앞서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정보 접근을 막을 수 있다.
한 번 해서 안 된다고 그만둘 것이 아니라 자꾸 해서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의 고령층은 어차피 시대가 변해 나이 불문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나도 지금은 핑거 프린세스지만 언젠가는 핑거 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누구나 처음엔 공주님이다. 불안하고, 어려워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누를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남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AI 시대를 살아가는 고령층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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