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치매 걸리자 귀농한 아들... 돌봄 위해 벌인 새로운 실험
[김성호 평론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질병이 있다면 치매가 아닐까. 기억을, 언어를, 인지능력을 하나하나 잃고서 오로지 늙은 육신 안에 남겨지는 것이 치매라는 병의 끔찍함이다. 한때 인공지능(AI)에 대하여 저 자신을 개별적 존재로 인지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인간과의 마지막 경계선을 그었던 것이 우리 인류다. 치매는 인간이 저를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한 제 요소를 무참히 짓밟으니 어찌 그를 끔찍하다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치매가 인간을 무너뜨린다면 국가는 지방소멸이란 질병으로 무너지고 있다. 지방, 그중에서도 농촌마을은 젊은이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령화 속에서 소멸 위기와 맞닥뜨린 것이 현실이다. 젊은 층의 귀농이며 귀촌이 이뤄진 곳도 기간시설이 자리한 지극히 일부의 사례, 대대손손 지역민이 지켜온 대다수 농어촌이 마을 일을 돌볼 수 있는 젊은이 없이 쇠락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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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밭 사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아래 반다페) 상영작 <포도밭 사이>는 근래 한국 다큐판에서 이목을 집중케 한 작품이다. 1999년생으로 이제 20대 중반인 심하은 감독의 첫 연출작인 작품은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단편 대상의 영예를 안은 데 이어, 제3회 반다페에서도 상영작으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젊은 감독이 저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농촌의 치매노인에게 카메라를 가져다 댔다는 점만으로도 다분히 이색적이고 도전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초점과 완성도에 대하여선 엇갈리는 평이 나올 수 있겠으나, 적어도 연출의도,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질문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라는 감독의 변이 선명한 효과를 발했다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 할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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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밭 사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케어팜은 치매환자들이 자연과 접점을 가진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자 프로그램이다. 한국 농촌의 특수성과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치매 노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한국형 케어팜 공동체를 꾸려가는 최씨의 노력이 <포도밭 사이> 가운데 담겼다.
지역 어르신들에게 치매 초기 노인이 주간보호센터의 기능을 하는 케어팜 더욱에서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알리는 일, 흔한 요양원처럼 수용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포도를 수확하는 등 활동적인 일과를 이어가도록 돕는 것이 모두 그와 동료들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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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밭 사이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최씨의 어머니는 치매가 걸려서도 최씨의 어머니로 남는다. 최씨에게 밥을 차려주려 하고, 직원들이 전기를 덜 쓰도록 잔소리를 하며, 최씨가 시골에서의 일 대신 서울로 올라가 월급쟁이를 했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친다. 그러면서 치매노인을 위한 아들의 프로그램에 동참하기를 꺼려 하니, 그 상황이 여간 난감하지 않다. 남보다 다루기 어려운 가족의 문제, 또 세대를 건너 소통하는 일의 어려움이 작품 가운데 담겨 있다 보아도 좋겠다.
<포도밭 사이>는 경증 치매환자인 어머니와 치매노인들을 위한 돌봄사업을 벌이는 최씨의 이야기로부터 어느 모자의 개별적 관계부터 어르신 돌봄 문제의 복잡다단한 어려움까지를 드러낸다. 영화에 명확한 초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문제가 이 시대 한국사회 공동체가 당면한 것이라는 점에서 시의성이 상당하다. 아마도 한국 유수 영화제가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한 데는 이 같은 측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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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치매환자는 급격히 늘어난다. 확인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까지 65세 이상 인구 중 60만 명이던 치매환자가 2024년엔 90만 명까지 증가했다. 전체의 9.15%가 치매로, 65세 이상 노인인구수 1000만 명을 바라보는 초고령 국가임을 고려하면 심각한 문제일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책적 대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가족은 대부분 중증 이상의 치매노인을 요양원에 보내길 선택한다. 가족이 직접 비용을 충당하고, 민간 요양원이 돌봄노동을 감당한다. 사회와 국가의 자리는 분명치 않다. 한국의 현실이 이러하다.
<포도밭 사이>는 먼저 걸은 이의 기록이다. 케어팜 더욱은 제 업을 포기하고 귀농하여 어머니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한 이가 빚어낸 결과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 어머니에게 최적의 대안이 되지 못하였다. 그 속에서 겪어낸 시행착오가 하나하나 한국사회의 자산일 수 있겠다. 어디 영화 속에 나오는 노인들의 이야기일 뿐일까. 영화가 다루지 않은 포도밭 너머의 이야기에 마침내 관심이 머무는 건 우리의 미래가 바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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