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소하·한신 뛰어넘는 유방의 ‘그것’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유방은 항우에 비해서만 능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유방의 부하들 중에서도 유방보다 지략이 뛰어나고 무술이 출중한 인재가 다수 존재했다.
유방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장량(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이라는 세 부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장막 안에서 전략을 세우고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군량과 보급을 끊임없이 이어주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며, 수십만 군대를 이끌고 전쟁하면 반드시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사실 무지한 농민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유방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식으로 무예를 배울 기회도 없었다. 오히려 고향 마을 패현(沛縣)의 친구인 소하와 조참은 이미 관리가 되어 근무하고 있었으니 한량에 불과했던 유방에 비해 지식이 뛰어났을 것이며, 번쾌는 패현에서 가장 힘이 센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하, 조참, 번쾌가 모두 기꺼이 유방을 장군으로 받들고 전쟁을 시작했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어떤 조직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사실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좋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공학 기술이 뛰어난 CEO가 이끄는 기업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고, 영업 능력이 뛰어난 CEO가 이끄는 기업은 제품 판매를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반인이 생각하는 개인의 능력 외에 경제학적 측면에서 최고 지도자 또는 CEO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이 있는데 바로 배짱과 용기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다.
유방과 친구들이 고향 패현에서 처음 군사를 모집해 당시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 진나라에 대항하는 혁명군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해보자. 군대 운영과 전략적인 측면은 소하와 조참이 뛰어났을 것이고 적과 맞붙어 싸우는 능력은 번쾌가 뛰어났을 테다. 하지만 뛰어난 개인 능력과 별개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진나라 정예병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진나라에 대항하는 혁명군 대장은 전투에서 패배하는 경우 사형을 당할 것이 거의 확실했다. 물론 혁명군에 참가만 해도 처형을 당할 확률이 있었을 테지만 ‘유방의 혁명군’이라고 이름이 붙은 군대를 이끌고 싸우다 패배하면 유방은 반드시 죽을 것인 반면, 그 밑에서 싸웠던 자기들은 혹시라도 운 좋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지만 그런 이유로 소하, 조참, 번쾌는 혁명군 대장이 되는 것을 주저한 반면, 유방은 호기롭게 자신이 대장을 맡겠다고 했다.
사실 유방에게 패배한 항우는 대번에 목이 잘려 죽었다. 우두머리의 운명이다. 하지만 항우의 신임을 받던 부하들은 항우와 함께 죽지 않았다. 영포는 유방의 힘이 강해지자 일찌감치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다. 또, 계포와 항백은 항우가 전사하자 유방에게 귀순해 용서를 받고 유방 밑에서 벼슬을 했다. 종리매는 항우가 죽은 후 적군 장수이지만 평소에 친했던 한신에게 가서 목숨을 의지했다. 가장 비애를 느꼈던 항우의 부하 장수는 아마도 정공이었을 것이다. 정공은 일찍이 궁지에 몰린 적군 대장 유방을 죽일 수 있었지만 몰래 살려서 풀어주었다. 혹시라도 항우가 패하고 유방이 이길 수도 있으니 유방에게 미리 잘 보여 어느 쪽이 최후에 승리하든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유방은 항우가 죽고 나서 자신을 찾아온 정공을 죽였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지만 적장을 살려준 배신자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초나라 왕 항우는 전쟁에서 패배하자 바로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런 항우가 아끼던 부하 중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유방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부지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만일 항우가 이기고 유방이 패배했다면 유방은 죽었겠지만, 유방의 부하들은 항우에게 항복해 목숨을 부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전쟁에서 패배할 위험을 고려해봤을 때 유방이나 항우처럼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정말로 목숨을 내걸 수 있는 건곤일척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기업에서 CEO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 업무는 뛰어난 참모들이 CEO를 대신해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EO가 가장 힘든 직책인 이유는 사업이 실패했을 경우 모든 무한책임을 CEO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망하면 직원들은 다른 기업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CEO는 최후까지 남아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한나라 황제 유방은 지략도 뛰어나지 못하고 무예도 별 볼 일 없었지만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는 배짱이 있었기에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반면 항우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결국 유방에게 토사구팽을 당해 죽임을 당한 한신은 군사적 능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배포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삼국지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촉을 점령해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는 천하삼분지계를 처음 권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런 제갈공명보다 400년 전에 이미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괴철이라는 인물이다.
괴철이 이런 건의를 한 것은 초한지의 막바지에서다. 궁지에 몰린 유방이 명장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를 이기고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던 시기다. 이제 유방의 대장군인 한신이 조금 더 항우를 몰아붙이면 유방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괴철이라는 인물이 한신을 찾아왔다. 괴철은 유방 입장에서 한신이 필요한 이유는 항우를 이기기 위해서인데, 항우가 죽으면 더 이상 한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므로 유방이 한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토사구팽 논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재 전쟁터에 나와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대장군 한신이 유방을 배신하고 제나라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유방의 한나라, 항우의 초나라 그리고 한신의 제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는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했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한신은 이런 괴철의 논리를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한신은 자신을 등용해준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괴철의 건의를 물리쳤다. 과연 한신이 유방에 대한 고마움과 충성심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분명 한신의 마음에는 “곧 내가 항우를 물리치면 유방에게 큰 상을 받아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반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라는 망설임이 있지 않았을까.
직장인들은 자신이 번 돈을 회사가 모두 가져간다고 불평을 한다. 그렇게 억울하면 스스로 독립해 회사를 차리고 CEO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입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스스로 CEO가 되어 모든 위험을 감수할 배짱이 없어 계속 직장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황제와 CEO의 중요한 역할은 모든 책임을 감수하는 리스크 테이킹이다. 일반 직장인은 리스크를 CEO에게 넘기고 마음 편하게 일만 하는 선택을 한 것이므로 그들의 불평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8호 (2025.07.16~07.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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