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이탈리아 여행하는 법, 이 책에 있습니다
[김남정 기자]
"이 나이에 무슨 여행이냐"는 말을 듣고도 괴테는 떠났다. 그것도 '삶의 해답을 찾겠다' 는 다소 낭만적인 명분으로. 하지만 그 여행은 낭만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과거의 유적과 마주했고, 예술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 보았으며 결국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았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은 고전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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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민음사 |
괴테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7세, 이미 독일에서 명성을 얻은 시인이자 학자인 그는 어느 날 홀연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국경을 넘었다. 흔히들 '괴테' 라는 이름을 고전으로 기억 하지만, 그는 평생을 끊임없이 변화와 불안을 겪는 인간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창작의 슬럼프와 직무의 피로, 그리고 자신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괴테는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해 떠난 것이다.
괴테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보낸 2년간의 여행을 일기 형식으로 썼다.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그 당시 풍경과 문화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다시 보기 위한 행동' 이었다. 그는 로마의 고대 유적지 앞에서 예술의 본질을 마주했고, 나폴리에서 삶의 기쁨을 배웠으며 시칠리아의 자연 속에서 인간과 세계의 원형을 찾으려 했다. 괴테의 여행을 따라 읽다 보면, 지금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보게 된다.
"나는 지금, 떠나야 할 시점에 와 있지는 않은가?"
물론 지금은 괴테처럼 국경을 넘거나 몇 달 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하지만 괴테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예술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의지. 그것이 바로 괴테의 여행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다. 괴테는 떠남으로써 자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떠나지 않고도 떠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괴테는 로마에 도착한 첫날, 이렇게 썼다.
"나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마치 두 번째 탄생을 맞은듯하다."
이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고대 로마의 유적들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조각상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다가왔고, 거리의 도로조차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듯 보였다. 수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찬미한 그 도시를 괴테는 드디어 '직접'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괴테는 깨닫는다. 책으로만 알았던 세상은, 직접 걸어보니 전혀 달랐다는 것을.
그의 문장을 따라 걸으며, 내 일상도 아름다워졌다
이 점에서 <이탈리아 여행>은 여행기이자 깨달음의 기록이다. 괴테는 로마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고,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한 조각상 앞에 수십 번이나 돌아가 앉았다. 말없이 가만히, 보고 또 보는 것이다.
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해했다'고 생각 하고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책에서 읽고, 강의에서 듣고, 뉴스로 접한 세계를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괴테처럼 직접 마주할 때 마음과 눈이 열리기 시작한다. 괴테는 로마에서 눈을 떴고, 나는 괴테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본다. 그의 문장을 따라 걸으며, 무더위가 지속되는 요즘, 내 일상도 잠시 낯설고 아름다워졌다.
"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어도 좋다)."
괴테는 나폴리에 도착한 순간, 글은 전보다 한층 흥분되고 빠른 리듬으로 흘러간다. 마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문장들. 괴테는 나폴리에서 전혀 다른 삶을 목격한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웃고, 노래하고, 일하고, 잠시 쉬고, 다시 살아간다. 거창하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은 일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살아 있음' 은 베를린이나 바이마르보다 더 뚜렷하다. 괴테는 그것을 '살아 있는 고대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오래 머물렀다. 괴테가 감탄한 것은 유적이나 그림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나폴리의 사람들을 보며 '삶이 꼭 고통이나 사명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저 지금 여기에서 웃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는 그곳에서 '살아도 되는 나'를 발견한다.
문학과 도덕, 이상과 사명으로 짓눌리던 삶이 아닌, 단순하고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 그 깨달음은 한 줄의 시보다도, 수십 권의 철학보다도 더 깊었다. 그리고 나도 문득 괴테처럼 나폴리의 햇빛을 떠올렸다. 비록 그곳에 가지 못하더라도 내 삶에도 그런 빛 한 번쯤은 남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괴테처럼 직접 떠나야 하지만 나는 책 속에서 괴테와 함께 떠나며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는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 이탈리아를 말하지 마라.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열쇠다."
시칠리아에 도착한 괴테가 한 말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었다. 시칠리아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보았고, 화산과 바다, 태양과 유적이 공존하는 그 땅에서 삶의 표본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술도 인간도 자연도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괴테는 웅장하지 않으면서 조용한 시칠리아의 건축물에 압도되었다. 자연이 만든 풍광과 인간이 쌓아 올린 조형물 사이에 어떤 인위적 경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자연과 예술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
이 구절에서 나는 또 한참을 생각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지금 우리는 자연과 분리된 채 살아간다. 자연은 일상과 멀고, 예술은 실용과 충돌한다. 그러나 괴테는 시칠리아에서 그런 경계를 지우고, 삶의 중심을 다시 정렬한다. 그 중심에는 자연 속의 인간, 예술 속의 삶 이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부러워졌다. 하지만 나에겐 7년 전 큰딸과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추억이 있으니 괜찮다. 괴테처럼 시칠리아로 떠날 수는 없지만, 지난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며 책을 읽고 조용히 글을 써보는 것. 그게 어쩌면 다시 갈지 모르는 '나만의 시칠리아 여행' 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분들께 추천해 보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고전 읽기가 더운 여름을 잘 지낼 수 있는 비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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