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 '일장기' 간식상자 논란, 완도에서도 '거북선 고증' 두고 시끌
[완도신문 정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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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서발 고속철도 SRT의 특실에서 제공된 간식 박스 거북선 그림에 일장기와 유사한 문양이 그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SNS를 통해 처음 알려진 해당 간식 박스는 'SRT를 타고 떠나는 낭만 여행 여수'라는 문구와 함께 여수의 명물인 거북선 삽화가 포함돼 있다. 문제는 거북선 뒷부분에 달린 깃발에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와 유사한 붉은 해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
| ⓒ 연합뉴스 |
수서발 고속철도 SRT 특실 승객들에게 제공된 간식 상자 디자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상자에 그려진 거북선의 깃발이 일본 국기인 일장기를 연상케 하는 문양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SNS를 통해 확산하면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고, 급기야 역사 전문가들까지 나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디자인 실수로 보기에는 어려운, 우리의 역사 인식과 문화 콘텐츠 관리 시스템 전반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다.
문제의 디자인은 "SRT를 타고 떠나는 낭만 여행, 여수"라는 문구가 새겨진 간식 상자에서 비롯했다. 거북선을 형상화한 삽화 뒷부분에 붉은 원형의 태양 문양이 깃발처럼 그려졌는데, 이것이 일장기와 유사한 형태였다.
관련 내용을 접한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지난 9일 SNS를 통해 "역사적 상징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심각한 사안이며,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일장기를 단다는 건 우리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제작사에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이를 승인한 SRT 측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자 SRT 운영사인 SR은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SR 측은 문제가 된 간식 상자를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제작사와의 계약도 재검토 중이며, 내부 검수 절차를 강화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번 논란은 SRT만의 일회성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역사 인식 부재와 문화유산에 관한 낮은 감수성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 기념 공식 행사에서 상영된 영상에는 일본 도쿄의 '간다 신사' 사진이 등장했다. 한국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의 분위기를 내기 위한 배경 이미지로 사용된 것이었다.
서 교수는 "일본의 국가등록유형문화재인 신사였다. 영상 제작자의 무지와 검수 시스템의 부재가 드러난 사례"라며 질타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관광지에서 판매되는 한반도 지도 자석에 독도를 'Dogdo'로 잘못 표기하거나, '동해(East Sea)'를 'Sea of Japan'으로 표기한 사례가 연이어 보고됐다. 모두가 종종 발생하는 일인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은 문화 콘텐츠 전반에 대한 검수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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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금도 이순신 기념관의 조선수군 함선에 일본식 돛이 걸려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무부서는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그대로 가져온 이미지라고 전했다. |
| ⓒ 완도신문 |
고금도에 있는 이순신 기념관의 전시물 또한 역사 문화 고증 오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념관 전시실에는 거북선이나 판옥선으로 추정되는 선박 이미지가 전시돼 있으나 배의 돛 모양이 조선 수군이 사용하던 형식이 아닌, 일본 왜선의 돛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시된 이미지는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거북선을 연구 중인 A씨는 "조선의 배는 횡장(가로대)을 여러 개 달아 돛을 형성하지만, 왜선은 한 폭의 천으로 길게 이어진 돛을 사용한다"며 "고금도 이순신 기념관 전시물의 돛은 일본식 돛 모양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완도군은 다양한 해양문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청해진 유적, 장보고 유물, 청산도 구들장논과 고인돌 등 각종 문화유산이 존재하지만, 이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안내문과 전시물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가의 고증 없이 제작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지역 원로 B씨는 "수차례 완도문화원 관계자나 행정기관에 잘못된 전시물이나 표기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늘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이었다"며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오류를 지적할 때마다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완도문화원 관계자는 "학술적 해석이 다양하므로 일률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면서도 "보다 정제되고 검증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역사 콘텐츠의 무게를 고려할 때,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오류를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공기관의 관광 안내물, 전시 시설 등에서는 기본적인 사료 고증과 전문가 자문을 통한 최소한의 사실 기반이 필수적이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동시에 역사 왜곡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장기와 유사한 문양을 아무 생각 없이 거북선에 올리는 것은 단순 실수로 보기에 어려운 감수성의 부재다.
한 역사교육 유튜버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런 이미지 한 장에 한국사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며 "문화 이미지 하나도 검증 체계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화 해석의 기초는 정확한 역사 인식에서 출발한다. 공공과 민간, 제작자와 검수자 모두가 역사기록에 근거한 사실을 기준으로 삼을 때, 문화유산은 살아 숨 쉬는 교육 자산이 된다.
반복되는 역사 인식 오류 앞에서 이제는 단순 실수라는 말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정지승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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