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체육영재학교라는 시대 역행
[이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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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광명시갑) (자료사진) |
| ⓒ 유성호 |
임 의원은 성공한 운동선수로서 체육 분야의 행정직을 두루 거치며 국회의원으로 정치계에 진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인물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운동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과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할수록 전문체육으로 점철된 우리나라 체육의 선진화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체육영재학교의 발상이 체육 인재를 조기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기존 구시대적 국가 주도 전문체육 시스템의 강화 방안이며, 국민 모두를 위한 체육 저변 확대와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체육중·고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는 1971년 이후 순차적으로 시도마다 체육중·고교를 설립해 왔다. 대학으로는 한국체육대학교가 1977년 설립되었다. 이들 학교는 운동선수를 길러내기 위해 특화된 학교들이다. 바로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취지와 동일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들인 것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일반학교와 달리 통상 오전에는 일반 교과 수업을, 오후에는 운동부 훈련으로 운영된다.
또한 대부분 기숙사를 운영함에 따라 새벽, 오후, 야간 훈련 등을 통해 많은 훈련량을 확보하기에 용이하다. 이렇다 보니 일반 학교에서 6~7교시 정상수업을 마치고 훈련하는 운동부에 비해 훈련 여건이 좋다. 몇몇 종목에서는 운동선수가 되려는 학생선수의 입학 경쟁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기초종목과 비인기종목을 육성하다 보니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입학정원 미달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소수를 정예화하여 집중 육성하는 방식은 전체 학생의 운동에 대한 동기를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세계 최고 훈련량을 경신하려는가
임 의원이 발의한 체육영재학교는 '스포츠 과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는 제안 이유를 들고 있다.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된 체육중·고교가 바로 최소한의 스포츠 과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 설립되었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대회 참가 횟수가 너무 많아 수업 결손이 수시로 일어나고, 훈련량 또한 많아서 학생들은 오전수업의 교양 지식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즉 과다한 훈련으로 공부할 시간도 없고, 항상 피로한 상태이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기에 가장 많은 주중 대회와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그런 점에서 임 의원이 제안한 체육영재학교는 이미 운영 중인 체육중·고교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기본적 교양 지식 학습마저 배제하여 오로지 운동에만 '올인'하는 '운동기계' 양성을 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운동선수도 지식과 교양은 배워야
체육영재학교의 아이디어는 학교운동부 학생선수들에게 적용하는 최저학력제와 인정결석허용일수의 제한 등 학생선수의 교육적 성장을 위한 교육부 시행 정책을 벗어나려는 방편이다. 아무리 운동선수가 목적인 학생선수라 하더라도 그들 중 일부만이 목적을 이룰 뿐이고, 대다수는 중도에 탈락 또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기에 교육부의 정책은 민주시민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필요한 소양 교육과 최소한의 지식교육을 병행하기 위한 조치이다.
체육영재학교는 바로 이러한 교육적 조치를 배제하여 운동에만 '올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운동에만 '올인'하는 선수 양성이 그동안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과거의 사례를 통해 수없이 증명됐다. 경기력 향상에만 집착하는 지도자의 폭언과 폭력, 선후배 간 괴롭힘과 폭력 사건은 폐쇄적 집단 운동부에서 예외 없이 발생했다. 그뿐인가. 지난 2003년 불볕더위 속에 과도한 훈련을 받다가 생명을 잃었던 학생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과도한 경쟁은 자발적 성장을 저해
법안의 아이디어는 스포츠의 경쟁적 속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운동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경쟁시키면 세계적인 운동선수를 양성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제 성장 시기의 아이들을 조기에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한 곳에 모아 양성하는 건 세계적 흐름이 아니다. 스포츠 선진국 대부분은 학생들이 정상적 교육활동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자율적, 자발적으로 성장한다.
체육 영재의 조기 발굴이라는 발상 자체가 아이들의 자율적 성장과 잠재력을 차단할 수 있다.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인위적으로 견인하려는 행위는 자연적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고 향후 크나큰 후유증을 남긴다.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청소년기의 성장동력은 운동을 즐거워하고, 더 잘하기 위한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것이 자발성의 기반이며 경기력 성장에 필요한 체력과 기술적 요인이 지속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이다.
자발적 체육 문화가 체육 인재를 성장시킨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 서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의 국격에 걸맞은 체육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선진적 체육 인프라 구축을 기반으로 체육 인재뿐만이 아닌 다수의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체육 문화의 확장이 먼저이다.
자발적 체육 문화의 기반은 체육 인재의 성장으로 직결되며 신체적, 정신적 완성기인 성인기에 최고의 기량으로 연결된다. 민주적, 자발적 체육 문화에서 성장한 이들이 스포츠 산업 진흥의 리더가 되어 체육 문화의 확장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이미 미국과 일본, 유럽 등 OECD 가입 주요국에서 그 사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체육영재학교는 체육 인재의 조기발굴, 소수정예 집중육성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발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적 진화론에 기반하고 과거 체제 이념이 대립하던 시절의 권위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같은 발상으로 '스포츠 강국'의 명예를 얻는다는 생각은 시대적 오판이다.
국위선양을 위한 개인의 숭고한 희생 스토리는 이미 시효를 다했으며, 21세기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와 다른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스포츠 강국'은 올림픽 메달 개수가 아니라 스포츠가 국민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수준으로 판가름된다. 나아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국제대회 메달 획득을 위해 몰아주는 스포츠 정책 관행 또한 체육 참여의 자발성과 확장성을 위해 선회하여야 할 구시대 유물이다.
스포츠 강국은 체육 활동의 다양성
'국가 스포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육 인재를 조기 선발 양성하는 발상에서가 아닌 많은 청소년이 체육 활동을 즐기는 풍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운동부를 비롯한 체육영재학교의 결정적 한계는 즐기는 체육 문화를 제한하는데 있다. 너무 운동선수의 진로로 뛰어들어 일찍부터 학습을 포기하게 만들어 놓고는 90% 이상이 탈락하고 포기하는데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체육활동을 좋아하지만 정작 운동부에 참여하는 청소년이 줄어드는 이유이다.
즐기기 위해서는 경쟁하되 경쟁 결과에 '올인'하는 것이 아닌 성장의 자양분을 얻기 위한 건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다면 경기력 성장을 위한 자발적 참여와 노력이 뒤따를 것이고 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 스포츠 경쟁력의 튼튼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굳이 어릴 때부터 따로 모아 집중육성하지 않고도 다양한 운동부 문화에서 다양한 체육 인재가 등장하는 선진형 학교운동부가 형성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체육 정책을 고민해 주길
체육은 모두를 위한 활동이다. 모두를 위한 활동이지만 각 개인의 취향과 신체적 경향성에 따라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체육 정책 입안자의 책임이자 소임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다수가 선택한 국민의 대리인이다. 국민 다수의 건강 증진과 행복한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체육 정책은 물론 성장기 다양한 배움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체육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그들의 소임이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를 관람객으로 만들고 박수치는 역할에 머물도록 하는 체육 정책은 국민을 대리하는 소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이번 체육영재학교 설치를 위한 법 개정 절차 과정이 이어진다면 무엇이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향하기 길인지 깊이 있는 논의와 토론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난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온 조기발굴, 소수정예, 집중육성 방식의 현행 전문체육 중심 체육 정책에 대한 대대적 평가와 반성을 통해 스포츠 선진국으로 향한 심도 있는 담론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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