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추천' 그 소설의 교훈... 이진숙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오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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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버라 월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겉표지 |
| ⓒ 열린책들 |
옳으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뒤에 합리화한다. '우리' 편은 언제나 옳고 '저들'은 언제나 틀렸다고 여긴다. 거대한 파당주의의 벽이 세워졌다.
"유권자들이 올바른 정치적 결정을 한다고 믿지 않는 미국인의 비율은 1997년 35%에서 현재 59%로 늘어났다. 한층 더 심각한 점은 군부 통치를 좋다고 여기는 이들도 1995년에는 겨우 7%였는데 18%로 늘어났다."
이는 트럼프가 반이민 정책에 군대를 동원하는 배경이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벌주의를 움직이는 중심적 힘은 음모론이다.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선동하려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표적으로 던져 주고 배후의 음모를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것이 소셜 미디어이다. 많은 나라에서 음모론과 피해망상적인 극우파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유튜브 구독자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우리가 사는 여기서도 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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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해나 <혼모노> 겉표지 |
| ⓒ 성해나 |
젊은 작가가 쓴 작품집 전체에 걸쳐서 기발한 발상과 언뜻 내비치는 날카로움, 제재를 다루는 서늘한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얄팍한 감상주의가 없다. 국가 폭력과 합리성의 문제를 다룬 <구의 집>은 그런 관점이 잘 구현된 작품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 과정을 상상해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합리성의 층위다.
사회학자 베버(Max Weber)가 정리한 도구적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도구적 합리성은 수단과 방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기술, 관리, 조직적 효율성 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합리화 메커니즘이다. 이런 합리성은 왜 그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 가치와 의미를 사유하지 않는다. 목적 합리성은 어떤 일을 하는 목표의 타당성과 일관성에 초점을 둔다. 가치 판단과 이상적 목표 설정을 중시한다.
<구의 집>에 등장하는 두 인물인 건축가 여재화와 그의 제자 구보승은 이런 합리성의 차이를 돌아보게 한다. 비밀스러운 고문 장소인 건물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만들려는 면에서는 둘 다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여재화는 사람을 해치는, 처음 해보는 종류의 일감을 맡고서 주저한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껄끄러운 일을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을 찾는다. 그게 제자 구보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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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1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물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
| ⓒ 공동취재사진 |
여재화는 점점 진척되어 가는 건축 과정에서 의심에 빠진다. 도구적 합리성의 구멍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을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여재화에게도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고문하는 건물을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그는 "잊었던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 왜 건축을 하는가라는, 목적 합리성에 따른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모든 물음은 고통스러운 법이다. 고통스럽기에 떠오른 물음을 외면하려 든다.
"구보승이 저렇게 거침없는 이유는 그저 뭘 몰라서라고. 건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서라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저놈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것이 부처라고, 나와 달리 저놈은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이 공간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사람과 관계된 일을 할 때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일을 하게 요구하는 것이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쉽게 말해, 생각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그냥 시키는 일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
구보승은 그런 도구적 합리성을 철저히 구현한다. 고문실에 "암전이 되거나 인질극을 도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전등갓에 철제 덮개를 씌우라는 메모를 읽으며 재화는 혀를 내둘렀다. 이상을 뺀 지독한 합리주의군.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만." 이것도 재능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재능은 악마의 재능이 된다. 그런 구보승조차 막상 세워지는 건물을 보면서는 자신의 확신이 흔들린다. "도면이 완성되고 시공에 들어가자 모든 확신이 모호해졌다.
자신이 치밀하게 설계한 것들이 무얼 위함이었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어졌다. 허나 오기 때문인지 객기 때문인지 구보승은 여재화 앞에서 끝내 단언하고 말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기이든 객기이든 그렇게 확신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고문실도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다. 역시 우리 시대에 많이 발견하게 되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인간적 의미는 애써 외면하고 도구적 합리성으로 매사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식인들, 엘리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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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그래서 묻게 된다. 철저히 도구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헛똑똑이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쳤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교육 정신·교육 철학과 방안을 고민하지 않고, 지역균형발전의 정신과 방도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따져보지 않고, 전국에 서울대 같은 학벌 대학을 10개든 수십 개든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문제를 더 확산시키는 게 아닐까?
교육조차 국가 경쟁력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리겠지만(이런 게 전형적인 도구적 합리성의 시각이다), 지금 대학을 비롯한 한국의 학교 체제에 '교육'은 없다. 있는 것은 입시 준비와 취업 준비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지킬 시민을 잘 기르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원래 교육(敎育)의 의미가 가르쳐서(敎) 기른다(育)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이런 교육 정신과 철학을 갖고 있는가? 이것 말고도 다수 논문 표절 의혹, 충남대 소녀상 철거 시도, 국립대 통합 졸속 추진과 실패, 환경 파괴를 고려하지 않는 교내 반도체연구소 일방 추진 등 교육의 미래를 설계할 능력과 교육철학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난마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장관 후보자가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교육의 문제를 깊이 숙고하는 후보자, 구보승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 교육을 고민하는 후보자는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길 대학 선생이자 시민으로서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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