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너머의 군대를 상상하기

방혜린 2025. 7. 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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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선군정치'의 종말을 기원하며

[방혜린]

 군인 컨셉 사진
ⓒ Alexander Jawfox
한국 사회는 최근 10년간 총 두 번의 계엄 위기를 겪었고, 이 중 한 번은 '실제로' 일어났다. 2016년 10월, 아직 박근혜 탄핵 정국으로 넘어가기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던 모 중령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보고서에는 '북한 급변 사태' 발생을 명분으로 남한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법리검토와 함께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때에 저지할 방안, 계엄사령관을 법규가 정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무회의를 수시로 개최하는 방안 등의 구체적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 계획은 훗날 기무사령부를 통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으로 구체화됐다.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을 검토하고 있다가 2017년 2월 정국 혼란이 가시화되자 시행을 결심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됨으로써 이 계획은 시행되지 못하고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바로 '2018년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이다.

2017년 계엄 계획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에 매우 구체적인 교훈을 제공하였다는 것은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민군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200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한국에서 쿠데타 발생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친위쿠데타를 도모하고야 말게 된 현실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진단할 수 있는가? 과연 이것이 몇몇 인사들의 경합적 일탈, 야욕 등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어째서 여전히 마오쩌둥의 유명한 언구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槍杆子裏面出政權)"를 떠받드는 이들이 있을 수 있을까. 역사는 왜 반복되는 걸까.

위기 앞에 등장하는 '한국판 선군정치'

'선군정치'의 원조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김정일 정권의 선군정치는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이긴 하였으나, 아직 후계 이양이 이뤄지기 전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하여 정치적 위기 직면 가능성이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경제와 안보에도 상당한 위기를 제공했다. 한국과의 국력 차이는 시시각각 벌어졌고, 한국의 북방정책과 중국・러시아와의 수교 등의 환경변화는 자칫하면 한국에 '흡수통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정권의 붕괴까지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계엄'이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계엄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치안과 사법권을 장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선군정치의 시작은 계엄정치라 볼 수 있다.1)

2016년과 2024년 계엄 계획을 꿰뚫는 키워드도 역시 '위기'다. 선출 권력이 권력 상실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느꼈을 때, 이 난국을 약속된 헌정 절차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군부를 동원한 계엄령을 통해 행정·사법 기능을 틀어쥐고 입법 기능까지 무력으로 강제하겠다는 계산에서 계엄이 '위기탈출 넘버원' 카드로 고려된다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선군정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위기 상황에서 군의 역할에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체제 위협 세력이 될 수 있는 군의 정치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당과 최고지도자(국방위원장)의 군 통제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틀어쥔 다음 국방위원장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한편 한국의 선군정치란, 육사 출신 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군부 마피아들이 군에 우호적인 선출 권력에 기생하여 버티고 있다가, 그 권력이 위기를 맞았을 때 위기를 일거에 해결해줄 행동대장으로 등장한다. 위기를 해결해주는 대가는 이 기생 관계의 연장, 궁극적으로는 군(軍)-정(政) 일치의 사회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꾸렸다던 '수사 2단'이나, 동참하는 이에게 진급 약속을 해주었다는 것은 이 마피아 관계가 실제하였음을 방증한다.2)

결과적으로 1987년 민주화, 하나회 숙청을 거치고도 군부 마피아가 재생될 수 있었던 까닭에는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한국의 군부독재는 청산된 바 없다. 한국이 그토록 오랜 기간 군사독재를 경험했음에도, 제헌헌법(제69조)에서 규정했던 현역 군인의 정치활동 금지 원칙이 헌법에서 사라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1987년 직선제 민주화 후 개정 헌법(제5조)에서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한 문장이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와 군대가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거치며 배운 것은 민군관계의 재정립과 문민통제에 대한 필요성이 아닌, 군인으로서 정치에 직접 개입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별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식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정치군인 집단 '하나회' 숙청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군인의 정치력을 줄여 선출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총구를 겨눌 '사람'이 없어진다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민주적 민군관계의 제도화를 제쳐둔 결과, 군대가 정치에 의존하는 현상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비사관학교·비장성' 출신 국방부장관이 탄생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그랬을까? 둘째,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반공' 카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군부 마피아들은 '국방부장관'이라는 제도가 등장한 배경, 즉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속도로 거대해진 군대라는 폭력 독점 조직3)을 행정부(문민)가 통제할 목적으로 도입된 것임을 대중이 의도적으로 망각하도록 했다. 군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국방부장관이 되어야 한다는 무적의 논리와 군, 특히 육군이 정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엔 북한의 존재가 있다. 안보 환경변화와 인구 절벽 등으로 상비 병력의 수는 점점 줄어가는데, 장군 정원은 370명에서 그대로 동결이다.

국방백서(2022년)에 따르면, 장군 정원이 동결된 이유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 급변하는 안보 상황에 대한 위기 대응 능력 제고"를 위해서다. 장군 정원의 감축은 곧 육사 출신이 점할 수 있는 별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을을 의미한다. 권력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한국이 안보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고 대중을 환기시켜야 한다. 북한의 대남 풍선과 무인기가 매일같이 서울 상공을 누비고 있다고 재난 문자를 뿌리고,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며 속보를 낸다.

윤석열 정부 들어 유난히 강조된 메시지가 "반자유 세력", "종북 세력"에 맞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석열에 의해 반공은 대국민적 과제로 부상하고, 반공 전사 육군의 존재는 끊임없이 우선 긍정됐다. 5년 주기로 이뤄지던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윤석열 정부 들어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반공 너머의 군대를 상상하기

통일되어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든, 혹은 완전히 북한과 이별하든, 어느 쪽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묘한 한반도의 공생관계를 이어가는 이상, 한국 사회의 안보관을 바꾸는 작업이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장벽은 북한이라는 적보다도 항시 '군사준비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병역 체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형성과 발전 자체가 한국전쟁 후과(後果)의 토대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휴전이라는 독특한 상태는 극도로 높은 수준의 전쟁 위협도와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국가를 재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과제 앞에서 '안보'라는 개념이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 사회 가치로 자리 잡게 했다. 상황이 불리하면 반공 카드가 등장하는 것이 쉬운 건 이러한 까닭이다.

한편, 87년 체제 출범 이후 군부숙청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하고 반공에 가로막혔던 이유엔 우리 사회가 군대를 인식하는 체계가 '징병제'를 토대로 한다는 것도 있다. 징병제가 시민 사회에 제공하는 감각은 독특하다. 군대라는 것이 폭력적이고 이상하면서도, 우리 사이의 보편적인 집단으로 받아들이게끔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 감각은 이번 12.3 내란사태에 가담한 내란군에 대한 인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갑차와 헬기, 특수부대, 5만 7천 발의 실탄을 동원한 무장 내란군을 엄벌해야 한다면서도 내란군이 철수할 때 "잘 가! 우리 아들들"이라고 하는 발언하는 장면이 미담으로 촬영되기도 한다. 정치군인은 나쁘지만, 일반병사는 한없이 죄 없고 착한 존재다. 정치군인과 일반병사를 별개의 군대로 인식하는 것은 곧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안보 문제를 '정치군인'이란 집단에 한정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그러니 하나회 숙청이 표면적으로 정치 군부 세력을 청산했다는 착각을 불러오기 용이했던 것이다. 이 착각에 숨어 정치군인은 다시 세력화됐고, 2024년 12월 현실로 나타났다.

다시 12월 내란의 밤으로 돌아가서, 윤석열이 그날 밤 11시 포고령을 통해 처단하고 싶었던 대상에 대해 톺아보자. "종북 공산주의", "반국가 세력", "체제전복 세력"의 구체적 실체조차 불분명하다. '반공'이 철 지난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지는 이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의 위협이 없는데도 윤석열의 입을 통해 강조된 '반공'이 점점 실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김민전 국회의원의 소개로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한 '반공청년단(백골단)'과 같은 존재나, 탄핵 반대 집회, 그리고 윤석열 지지 집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멸공'이 구호로 통용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그러니 실상 반공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형성된 우리 사회의 안보 의식이 깨지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군부 마피아의 친위쿠데타 시도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는 기반은 유지되는 셈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그 어떤 권리와 의무에도 신성하다는 수식이 붙지 않는다. 오직 병역만이 그 영광을 누린다.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국토를 방위하는 '신성한 집단', 우리에겐 적이 있기에 국가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다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조작된 영광이 군에 계속 부여되고 있는 그 당연한 체제를 의심해야 한다. 반공 세력에 맞서 '멸공'으로써 국가 안보를 유지하는 선택된 무력 집단으로서 군대가 계속 존재하는 한, 2024년은 또 반복될 것이다.

각주)
1) 김동엽, 「선군시대 북한의 군사지도·지휘체계」,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논문 (2013), pp.111~116.
2)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현재 내란죄 외에도 알선수재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3) 베버(Max Weber)는 근대 국가를 "제한된 영역에서 폭력 수단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권위체"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폭력 수단이란 국가의 상비군을 의미한다. 베버의 번역에 대해서는 이근욱, "민주주의와 민군관계: 새로운 접근법을 위한 시론", 「新亞細亞」, 24권 1호(2017) 참조.
〈참여사회〉 보러 가기!
📌본문이 포함된 〈참여사회〉 2025년 7-8월호는 다음 링크를 통해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1996139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에서 발간한 〈참여사회〉 2025년 7-8월호에 실렸습니다. 필자는 방혜린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입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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