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들은 어쩜 이렇게'... 아재 롯데 팬이 직관 가서 놀란 이유

여운규 2025. 7. 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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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으로 말하는 프로야구] 달라진 야구장, 그럼에도 계속되는 '아름다운' 야구

화수목금토일, 이들의 평일 저녁과 주말엔 늘 야구가 있습니다. 운 좋으면 직관으로, 아니면 중계를 보며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습니다. 1200만 관중을 향해 달려가는 2025 프로야구 돌풍의 중심에는 이들 '찐팬'이 있습니다. 팬심으로 말하는 '내 팀'의 이야기, 야구를 좋아해서 겪어야 했을 희로애락,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여운규 기자]

 지난 5월 2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와 LG의 경기. 주중 3연전 모두 매진을 기록한 사직구장에서 팬들이 롯데를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경기장마다 팬들로 넘쳐나고 평일 경기도 쉽게 매진된다. 좌석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프로야구 역사상 이렇게 직관 가기가 어려운 시즌이 있었던가 싶다. 원년 롯데 팬으로서 40년 넘게 야구를 봐온 나에게도 이런 광풍은 처음이다. 오랜만에 자이언츠가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올해, 마음은 항상 야구장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티케팅에 실패한 아저씨에게 돌아올 빈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관중의 주된 연령층이 많이 내려간 것도 이색적이다. 옛날 야구장의 주 고객이 중년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요즘 팬들의 대부분은 단언컨대 젊은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 팬의 증가는 드라마틱하다.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지난 2024년, KBO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대 여성의 77.9%가 야구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응답해 주목을 끌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년 넘게 야구팬이라고는 나 혼자였던 우리 집에도 최근 몇 년 사이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대학에 들어간 딸이 학교에서 야구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더니 이내 열혈 롯데 팬으로 변신해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내까지 편승해서 이제 우리 집은 전원 롯데 광팬 가족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군대 다녀오는 동안 일어난 이 변화가 살짝 얼떨떨한 아들 녀석도 관심도만 약간 덜할 뿐, 기본적으로 야구팬이자 롯데 팬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감개무량한 일이다. 이렇게 세대 전승이 이루어지다니. 온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사진 한 번 찍어 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루게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롯데 팬이라는 가시밭길을 왜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주냐며 혀를 차지만 어쩌겠나. 이게 운명이라는 거다. 사람은 결코 자신에게 부과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2023년 사직구장 워터페스티벌의 한 장면. 사람들은 쉴새 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 여운규
너무 달라진 야구장 문화

유난히 티케팅이 어려운 올해, 그래도 어찌어찌 직관을 몇 번 다녀오긴 했다. 갈 때마다 나는 놀란다. 야구장 분위기가 옛날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야구장은 한 판 축제의 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축제의 양상은 달라졌다. 요즘은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노래하고 춤춘다. 일사불란하게 율동을 따라 하며 신나는 응원가를 함께 부르는 게 야구 응원의 기본이다.

옛날에는? 축제는 축제이되 먹고 마시는 축제였다. 물론 응원단상 앞쪽은 춤추고 율동하는 팬들로 가득했지만, 응원석을 벗어나면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특히 나 같은 아재 팬들은 치킨이며 족발 등을 펼쳐놓고 술잔을 기울이기 바빠서 율동 같은 걸 따라 할 생각도 못 했다. 요즘도 야구장 먹거리들은 큰 인기지만 가만히 관찰한 결과, 요즘 팬들은 예전처럼 많이 먹지는 않는 것 같았다. 특히 술은 거의 생맥주 한두 잔으로 끝인 듯했다.

재작년 여름, 우리 가족은 부산 여행 겸 사직구장 직관을 다녀왔다. 마침 그날은 워터 페스티벌 이벤트를 하는 날. 우리는 구단에서 나눠준 빨간 우비를 갖춰 입었고, 응원단에서는 쉴 새 없이 관중석에 물을 뿌려댔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시종일관 일어서서 춤을 춰댔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축축해진 바닥에 앉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앉아 있으면 야구가 안 보였으니까. 매우 낯설고 생경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신나는 체험이었다. '아하 요즘은 이렇게 야구를 보는구만. 응원석이 따로 없어.' 서툰 몸짓으로 율동을 따라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근데 젊은 친구들은 어쩜 이렇게 술들도 안 마시면서 잘 노는 걸까?

그물 타는 아재는 이제 안녕

음주가 사라지고 춤과 노래가 가득한 야구장. 자연스레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에 따른 일부 관중의 추태도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흥분한 관중 난입, 그물 타는 아저씨들, 야유와 함께 그라운드로 쏟아지던 각종 오물들은 건전한 관람 문화를 저해하는 주범이었다. 그뿐인가. 경기에 졌다고 흥분한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 한 마디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던 옛날 야구장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곳이기도 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빗발치는 컵라면 국물을 피해 다니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곳이 바로 야구장 아니었던가

반면 요즘 청년 팬들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진다. 멋진 플레이에 갈채를 보내고 환호하며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지만 아쉬운 플레이가 속출해도 비록 크게 실망할지언정 그 누구도 야유를 하거나 욕설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 다른 팀 응원에도 관대하고, 서로의 응원가도 외워 부른다. 각각 상대 팀 유니폼을 입은 친구들이 나란히 앉아서 같이 응원하는 장면을 보면 놀랍기도 하다.
 야구장에서 먹는 회가 최고다.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 여운규
가끔은 옛날 야구가 그립다

그럼에도 가끔은 옛날 분위기가 그립고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올드팬, 사직 아재인가보다. 신나는 율동도 좋지만 그저 야구장에서는 먹고 마시는 재미가 제일 우선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싱싱한 활어회를 포장해 가는 거다.

야구장 치킨이야 워낙 오래된 아이템이고 요샌 무슨 크림 새우 이런 것들을 먹기도 하던데, 다 좋지만 역시 야구장 불빛을 받으며 먹는 회가 최고다.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르는 이 맛. 젊은 친구들 혹은 타 팀 팬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야구장에서 회 먹기는 매니아 층을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사직구장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먹다 보면 그 옛날 사직구장 스탠드를 누비며 "찌릿찌릿! 보약 있어요" 하면서 몰래 소주를 팔러 다니던 아저씨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게 유일한 부작용이긴 하다.

북적북적한 응원석에서 멀리 떨어진 사직구장 최상단 꼭대기 노란 의자에 한 쪽 다리를 척 걷고 홀로 앉아서 세상 슬픈 눈으로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응시하다가 가끔씩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저어서는(저기서는) 번트를 대는 기 맞다 아인교" 한 마디 던지시던, 누가 봐도 야구장 지박령 같았던 초고수 아저씨들도 기억난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이 난리통에 티케팅이나 제대로 하실 수 있는 건지.
 롯데 자이언츠, 아니 한국 야구의 영원한 영웅 최동원 선수의 동상.
ⓒ 여운규
야구장에서 인생을 배우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야구장이었다. 몸 바쳐 뛰는 선수들을 목이 터지라 응원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배웠고, 쓰라린 패배를 겪으며 세상이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뿐이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보면 걸걸하게 쌍소리를 내뱉다가도, 뒤를 슥 돌아보시며 어린 친구가 열심히 응원하는 게 귀엽다면서 먹을 것도 나눠 주시고,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돈도 쥐여 주시던 아재들을 보면서 베풀고 나누는 삶의 자세도 배울 수 있었던 야구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학교이자 삶의 현장이었다.

이제는 부모의 마음으로 야구를 보게 된다. 지금 저 자리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선수들은 대부분 자식뻘이다. 소속팀을 떠나서 선수들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대견하고 못하면 또 그거대로 안쓰럽다. 야구가 아름답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여름밤 무더위 속에 환한 조명이 켜지고 푸른 잔디 위를 가르는 하얀 공과, 경쾌한 타구음, 각자의 사연을 담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선수들의 땀방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다. 야구는 그 자체로 낭만이다. 삶의 모든 이야기를 가득 담은 그라운드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모든 영혼을 바쳐 사랑하고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의 팀 롯데 자이언츠가 오랜 암흑기를 깨고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다 알다시피 부산 팬들의 야구 사랑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일찍부터 수준 높은 야구를 접하면서 형성된 야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 시원하고 화끈한 부산 사람 특유의 기질이 합쳐져서 부산은 일찍부터 야구 도시로서의 굳건한 명성을 다져왔다.

그 뜨거운 사랑을 자양분 삼아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 야구의 영원한 영웅 최동원과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를 비롯해 수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왔고,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숱한 명승부를 펼쳤다. 최근 몇 년은 침체기였으나, 이제 다시 명장 김태형 감독의 지휘 아래 노장 선수와 신인들이 힘을 합쳐 순위표 상단을 점령하고 있는 모습은 팬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직구장은 물론, 전국 어느 구장을 가더라도 롯데 팬들은 스탠드를 점령하고 '부산 갈매기'를 목놓아 부르고 있다.

40년 넘게 롯데와 함께 하며 나는 이미 두 번의 우승을 내 눈으로 보았다. 이제는 그 경험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는 아내는 물론, 어느새 마지막 우승을 보았을 때의 내 나이가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최강 롯데 자이언츠의 자랑스러운 팬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세대 전승이 과연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날이 이제 머지 않았다고 믿는다.

롯데 자이언츠 화이팅!
우승을 향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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