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무대에... 우리는 어떻게 말을 '주고받을' 것인가

심아정 2025. 7. 8. 18: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전쟁 종전 50년, 베트남전쟁 진실규명에 응답을! 4] 휘두르고 휘둘리지 않는 말하기와 듣기를 모색하기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이자 한국군 전투병 파병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베트남전쟁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는 새 정부가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하며 7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싣는다. <기자말>

[심아정 기자]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자리에 선다는 것

지난 6월 21일 토요일 오후, 베트남 다낭시의 하미마을과 퐁니마을에서 온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두 응우엔티탄(동명이인)과 참전군인 김영만, 류진성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하는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가 임재성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100명이 넘는 청중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베트남전쟁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의 동료들과 여러 논의를 거쳐 기획한 행사였다.
▲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무엇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자리에 서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다. 베트남전쟁에서 피해와 가해의 자리에 놓였던 이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 함께 선 자리에서 서로에게 무엇을 말하고 들어야 할까.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한 청자들에게는 어떤 개입과 연루가 가능할까. 이런 고민 속에서 네트워크의 몇몇 구성원들은 행사에 앞서 피해생존자와 참전군인과 차담회를 하며 두 시간에 걸친 사전 회의를 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기획 단계에서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참전군인을 마주하는 피해자의 마음도, 피해생존자를 마주하는 참전군인의 마음도 무거웠으리라 짐작되었지만, 사전 회의 때는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하며 무거움에 압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 사이의 어긋남

피해생존자 두 응우엔티탄은 일주일 동안 여러 곳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피해 '당시'의 고통을 증언했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사건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듣기로 했다. 피해자를 더 이상 '전형적인 피해자성'에 가두지 않는 말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벌어진 압도적인 폭력을 겪고도 남은 생을 살아온 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바람 또한 법정의 '증거로서의 인간'이 아닌 피해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던 청자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듣고 싶었던 말은 피해 당사자가 하고 싶었던 말과 어긋났고,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어긋나는 순간은 화자와 청자 사이, 말하기와 듣기의 욕망이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하미 탄은 사건 이후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아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며 살았던 외로움과 유년기의 경제적 어려움, 배우지 못한 억울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고, 그 시간들에 대해 한국 정부 차원의 배상을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결국, 사건 이후 피해자가 지금껏 살아온 힘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을 수 없었다.
▲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참전군인들에게 직접 사과를 받고 싶어요"

"누구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지"를 묻는 사회자에게 하미 탄은 "참전군인들에게 직접 사과를 받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두 응우엔티탄의 이번 방문 일정에는 대법원, 고등법원, 국회, 대통령실 등 입법, 행정, 사법부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장소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곳곳에서 사과와 반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미 탄은 '한국 정부'가 아닌,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 다름 아닌 전쟁의 폭력을 수행한 병사들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 했다. 한국 정부의 사과와 배상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에게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두 응우엔티탄은 고통과 상실을 증언을 하며 울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과 요구 사항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이 겪은 피해 경험이 더 이상 고립되지 않도록 법정 투쟁을 비롯한 동행을 이어온 지지자들과의 신뢰 속에서 가능해졌다고 생각된다.

"나는 처벌받지 않은 전범입니다"

한편, 퐁니마을의 민간인학살 사건을 다투는 실제 법정에서 가해 목격담을 증언한 참전군인 류진성은 "나는 처벌받지 않은 전범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청중을 압도한다. 류진성은 "피해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김영만 참전군인이 용감무쌍하게 전투를 치러낸 것에 대해 존경심을 표했다. 심지어 많은 사상자를 낸 짜빈동 전투에 참전한 김영만의 경험을 치켜세우며 "훌륭한 군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전 회의에서는 하지 않았던 말이 느닷없이 출몰했을 때, 가해의 자리에서 폭력을 수행한 참전군인이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앞에서 전쟁의 '공적을 말한다'는 것에 커다란 당혹감을 느꼈다. 심지어 베트남에서 민간인학살 피해는 '공적이 없는 죽음'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보상도 배상도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발언은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침없는 그의 말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서 발언하는 참전군인 류진성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김영만 참전군인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받았던 군사훈련에 "민간인을, 어린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죽이지 마라, 여자를 강간하지 마라" 등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교육을 받거나 그런 명령이 내려졌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옛날 군인과는 달리, 지금의 군인들은 최소한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저항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12.3 계엄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들 중 하나로 병사들의 인식과 태도가 예전과는 달라진 점을 꼽았다.

두 참전군인은 자신들의 가해 경험을 말하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 전우들을 등져야 하는 배신자의 자리에 내동댕이쳐지는 아픔 또한 겪었다고 했다. 그러나 때때로 전우회에서나 할 법한 무용담이 피해생존자와 청중 앞에서 가감 없이 쏟아졌다. 피해생존자들도 법정에서 가해 목격담을 증언해준 참전군인 류진성과 참전 이후 귀국하여 평화활동을 하며 성찰적인 행보를 이어온 참전군인 김영만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청중들은 여러 차례 큰 박수를 보냈다. 청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박수를 쳤을까?

전후책임을 함께 진다는 것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운동에 이어, 참전군인의 전쟁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운동 또한 시작되었다. 월남참전전우회에서는 참전자들이 자체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물을 동영상으로 기록하여 공유하기도 한다. 때로는 명령에 따르는 일개 사병이었다거나, 가난 때문에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참전군인들의 말이 들려온다. 참전경험을, 특히 가해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들이 곧장 평화의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청자들이 가해자의 자리에 그들을 가두지 않으려는 의지만큼, 그들의 가해 경험이 어떻게 발화되고 공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화자와 청자 공동의 모색이 절실하다.

'전후책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공동의 모색 속에서 가까스로 생겨나는 물음들을 붙잡고 저지르고 말았던 일들에 대해, 수행하고 말았던 폭력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폭력이 작동했던 구조에 대해 화자와 청자가 함께 살피며, 말하고-듣기를 반복하여 기록하고-전달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고립된 개인이 홀로 가해 경험을 직면하고 성찰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경험을 말하고 듣는 자리에서

가해병사의 증언이 무용담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말의 자리를 만드는 이들과 청자들이 참전군인의 말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듣기'는 매우 능동적인 행위다. 청자들의 개입은 '검열'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 피해생존자 앞에서 서로를 용맹한 군인이었다고 치켜세우는 말들이 더 이상 모셔지지 않도록, 그러한 말들이 그 상황에서 왜 부적절한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중단할 수 있는 관계의 설정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한 관계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서 두 참전군인이 발언을 앞두고 맞잡은 손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가해자의 자리에 선다는 것, 그리고 그 가해 증언을 듣는다는 것은 자칫 화자와 청자를 동시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화자가 권력을 휘두를 수도, 청자가 그 권력을 역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 경험을 듣는 일에는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해 경험을 듣는 일에는 분투하고 갈등하며 분열증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 압도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세대와 젠더에 따라 말하고 듣는 자리는 위계적인 순간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서로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휘둘리지 않는 말하기와 듣기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운동의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평화란 무엇인가"

사회자가 퐁니 탄에게 "평화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 많이 쌓여 있는데, 어렸을 때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 질문에 대해 충분히 표현할 길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충분히 표현할 길 없는 평화라니. 청자들은 숙연해졌다. 어쩌면 평화를 향한 행보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던 탄의 평화를 청자들이 함께 찾아나서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의 자리에 놓였던 참전군인의 말 또한 곁의 존재, 청자를 필요로 한다. 준비된 자기서사로 말을 이어나가는 참전군인도 있지만, 말문이 막힌 채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자신이 겪은 전쟁경험을 자신의 말로 언어화하지 못한 참전군인도 있다. 미처 말해지지 못한 참전군인의 가해경험은 '모셔지는' 말들이 아니라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서로에게 휘둘리거나 휘두르지 않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말해질 수 있고 들릴 수 있다. 이제, 청자들의 시간이 도래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