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북클럽] 자율계산대 바코드 찍다 번뜩, 물리학 떠올리게 하는 책
[장순심 기자]
공원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약속한 듯 한 방향으로 뛰는 것을 본다. 암묵적 동의라도 이루어진 것일까. 나도 따라서 걷다가 뛰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과감하게 뛰는 동작을 시도했다. 힘차게 한 발자국을 떼고 마음은 이미 날아오르려는 순간, '아뿔싸!' 땅을 뚫을 기세로 내리 누르는 어마어마한 충격, 몸이 휘청였다. 급히 무안함을 수습하고 '얌전모드'로 진자운동을 시작한다.
인간의 이상적인 걷기는 진자운동이다. 괘종시계처럼 막대 끝에 달린 무게추가 흔들리는 그 진자운동 말이다. 발을 딛고 한 걸음 나아가면 무게 중심이 조금 위로 올라갔다가 최고점을 지나 다시 내려온다. 다시 발을 바꾸어 딛고 한 걸음 나아가면 그다음 진자운동이 발생한다.
걸을 때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모하고 싶다면 진자처럼 자연스럽게 걸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앞으로 차거나 너무 우악스럽게 뒤로 밀지 않으면서, 중력과 관성에 몸을 맡겨서 걸어야 한다. (<모든 계절의 물리학> p.133)
반 바퀴 정도 공원을 돌았을 때 다시 바닥이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해서 만든 트랙은 시간이 지나며 지면에서 떨어져 봉긋하게 솟아 오르는데, 어쩌다 그곳에 발을 디디면 바닥으로 한없이 꺼져 드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싫어서 의식하고 피하곤 했는데 오랜만에 나오니 또 영락없이 걸려들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물리학이 있다
불쾌한 느낌은 푹신한 트랙을 향한 의심으로 뻗어간다. 걷기에 정말 도움이 되는 건가 싶어 바로 트랙을 벗어난다. 걸을 때마다 품었던 의문의 해답을 최근 읽은 책 <모든 계절의 물리학>(2025년 4월 출간)에서 얻을 수 있었다. "푹신한 바닥은 아래로 떨어지는 몸이 완전히 정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늘려준다(p.14)"고 했다. 늘어난 시간만큼 땅에 발을 디딜 때의 충격은 분산 되고 무릎과 발목에 가해지는 반작용은 잘게 쪼개져 결과적으로 몸이 느끼는 충격을 줄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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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계절의 물리학> |
| ⓒ 다산북스 |
동네 공원의 트랙에는 100m 간격으로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간편하게 스마트워치를 이용하면 거리와 속도는 물론 운동 패턴까지 기록할 수 있다. 이때 나를 위해 4대의 인공위성이 움직인다는 사실. 위성이 인간을 추적하는 영화적 현실이 재현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무심코 켜는 GPS의 내 위치 찾기는 인공위성의 속도와 지구의 중력으로 발생하는 시간 왜곡, 이를 보정하기 위한 상대성 이론 등 3차원의 우주를 위한 복잡하고 정교한 물리학적 이론이 동원되는 것이다.
공원을 걸으며 마음까지 시원하게 하는 것은 울창한 나무의 빛나는 초록 잎이다. 겨울을 지나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초록 계열의 미세한 잎의 변화를 하나하나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눈으로 담아 저장하고 내가 가진 언어적 기교를 총동원해 기록해 보지만, 자연의 오묘한 색을 남기기에 내가 지닌 언어의 한계를 실감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나뭇잎의 초록색이 실은 나무가 가장 싫어하는 빛으로 결정된 색이라고 책은 말한다. "엽록소 분자에 있는 마그네슘 원자가 다른 원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엽록소 안의 에너지층 간격을 결정"하고 "결정된 에너지층 간격이 빨간색과 파랑·보라색 빛의 에너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뭇잎은 두 개의 빛을 강하게 흡수하고 나머지 색은 배척한다고 한다. 이렇게 배척된 빛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빛으로 자신의 색이 결정된다"니 운명을 피하려는 시도가 운명을 완성하는 느낌이랄까.
태양은 가시광선 영역을 중심으로 양 끝의 자외선과 적외선 영역을 포함한 넓은 파장대의 빛을 지구로 내뿜는데, 이 빛을 받은 나뭇잎은 무지개의 끝에 해당하는 빨간색과 파랑-보라색 빛을 흡수해 광합성 재료로 쓰고, 나머지 빛은 내보낸다. 이때 방출되는 빛을 우리 뇌는 초록색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지만 사실 초록색 빛을 배척한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빛으로 자신의 색이 결정된다니, 참 슬픈 일이다. (p.128-129)
실험실 밖 일상의 다양한 물리학... 과학적 문해력을 키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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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율계산대 앞에서 생각해 본 물리학 |
| ⓒ simonkadula on Unsplash |
사실 물리학은 어렵다거나 일상과 먼 학문이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물질이 작동하는 이치'를 알기 위한 학문이기에 우리 주변의 모든 것, 특히 인간은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질의 세계에서 24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학습'으로서 물리를 본능적으로 익혀온 '실전 물리학자'다.(p.334)
유시민이 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라고 했다. 뉴턴의 통찰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주를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을 보면 과학은 관찰과 이해로부터 세상을 확장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문과적 인간이라는 이유로 과학이 없는 세상에서 완벽한 줄 알았는데 착오다. 책은 실험실을 벗어난 일상의 물리학을 다양하면서도 경이롭게 보여준다. 언어로만 통했던 나의 세상에 갑자기 화학 기호와 연산 기호가 둥둥 떠다니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삶을 섬세하게 관찰하기'에서 나아가 '과학적 문해력' 키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책은 낯설고 어려운 분자식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을 벗어나 일상의 감각을 통해 물리학을 만나는 경험을 제공한다. 느리고 고요한 세상에 던진 작은 파문 같은 은근한 떨림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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