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가 격앙, 당분간 조심해라"... 그 경고, 무시한 이유
[민경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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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에 게양된 태극기와 검찰 깃발. |
| ⓒ 권우성 |
23년 전 검찰에 맞섰던 이들, 잊어선 안 되는 까닭 https://omn.kr/2edni
기자는 항상 '무엇을 쓸 것인가?'란 취재 아이템 선정에 골몰한다. 기자의 숙명과도 같은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기자가 선택하는 것이 곧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NBC의 뉴스캐스터 쳇 헌틀리는 "내가 뉴스라고 결정하는 것이 곧 뉴스다(News is what I decide is news)"라고 말한 적이 있다. 헌틀러가 오만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뉴스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저널리스트의 판단이 결정적이라는 의미이다.
당시의 사회 상황이나 사정과는 적절한지를 가늠하는 시의성이 있는지,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 등등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그에 앞서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있어 팩트를 뒷받침 할 수 있는가는 취재 아이템 선정의 전제 조건이다.
기자는 아주 중요한 1차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기도 하고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많은 사건과 시실 중에 어떤 것을 보도할지, 어떤 방식으로 보도할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뉴스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를 결정한다. 정보 선택자 또는 정보 필터링자다. 기자가 보도하지 않으면 뉴스가 아니다.
언론의 게이트 키퍼 역할은 사람들의 인식과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슈를 보도하고 어떤 건 보도하지 않느냐에 따라 사회적 의제 설정(agenda-setting)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청주 지역 구속율 전국 최고… 지역 사회 의제로 시의 적절
<충청리뷰>에서 2002년 9월 14일자 발행 취재 아이템으로 선택한 '법화… 그 깊은 상처. 법 만능, 구속이 능사인가'라는 기획 기사는 당시 지역 사회 의제로서 아주 시의 적절했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에도 불구하고 구속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였다. 어찌 보면 언론이 지적할 수 있는 평범한 보도다. 그와 함께 청주 지역 사회에서 검찰을 대하는 정서와 일상을 담은 "지방 검찰 알아 모시기"란 가십성 박스 기사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이 기사는 검찰의 심기를 건드린 보도가 됐다.
인신의 자유는 모든 인권의 근본이며 개인의 인격 실현과 행복 추구의 전제 조건이다. 기본권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무죄 추정원칙을 내세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청주 지역의 구속률은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무리한 인신구속이 남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취재 아이템이었다.
마침 당시 지역 유명 인사의 뺑소니 교통사고 사망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로 종결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검찰에 대한 지역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또한 나는 당시 청주검찰이 건설산업기본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열흘에서 길게는 한 달간 일체의 접견을 금지시켜 인권을 침해했던 사례를 포착했다.
그때는 국회의 국정감사 준비 기간인 9월이었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 피감기관에 대한 감사자료 수집을 위해 정보원을 총동원하는데, 언론 보도가 중요 정보원 중의 하나다. 기자 입장에서 좋은 기삿거리를 더욱이 지나칠 수 없는 때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구체적 사례에, 국정감사라는 마당까지 마련된 만큼 검찰의 무리한 인신구속에 따른 인권 문제는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국정감사에 제출된 구체적 자료도 이를 뒷받침했다. 여기에 덧붙여진 '지방 검찰 알아 모시기'란 박스 기사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지역의 일부 인사들이 검찰과의 친분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문 지면의 화제 박스 기사는 대부분 지면을 채우는 본 기사보다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화제성 '가십'이어서 주목도가 높다. 많이 읽히고 회자된다. 당연히 "지방 검찰, 알아 모시기" 박스 기사에 독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청주 검찰의 신경을 건드린 이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검찰에 줄대기 또는 '알아 모시기' 하려는 인사들에 대한 얘기는 늘상 있었다. 그때그때 시중의 화젯거리가 됐지만, 검찰과 그들만의 은밀한 교류(?)로 치부되어 일면 쉬쉬하거나 비난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건 청탁의 은밀한 얘기들이 더해지곤 했다. 검찰의 너그러운 처분 뒤에는 아무개가 있었다는 식이다.
검찰 담당 기자로서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를 사실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지역에서 성역으로 여겨지는 검찰에 쉽게 취재 펜촉을 들이대지 않는다. 행정기관을 비롯한 일반에 이런 소문이 있다면 언론은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검찰의 무리한 인신구속 문제를 다루는 기획기사에 검찰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인식이나 대응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당시에 그 일면들이 회자되고 있었다. '지방검찰 알아 모시기' 기사는 그렇게 준비됐다. 사업을 하거나 지역 사회 안면이 있는 인사들이라면 알만한 얘기들이었다. 다만 "지역에 알만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검찰에 줄대기 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검찰이 지역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라는 부정적 여론을 전해 검찰 비판 기사로 비쳤다.
후속보도 부른 뜨거운 관심, '법화 피해자들의 절규'
이런 의도와 배경에서 무분별한 인신 구속을 다룬 '법화… 그 깊은 상처. 법 만능, 구속이 능사인가'라는 기사가 보도되자 검찰의 예민한 반응 만큼이나 독자들의 관심 또한 뜨거웠다. 법 피해 하소연부터 격려도 이어졌다.
이같은 관심은 약자의 편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대한 동지적 응원도 있고, 지방언론의 성역으로 치부되어온 지방 검찰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다. 한 마디로 언론에서, 특히 지역 언론에서 보지 못한 기사였던 셈이다. 검찰과 경찰, 변호사, 법원 등에 대한 불만과 그들의 법 집행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이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다음 호에 후속 보도로 실렸다. 이들 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법에 의해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하소연은 넘쳐났다.
당시 '법화(法禍)' 후속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은 변호사의 성의 없는 변론 등 의뢰인에 대한 불성실 서비스의 불만이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력보다 사건을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구심이 켰다.
다음은 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당시 기사 일부다.
"변호사가 처음에는 무죄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일단 구속되고 나자 '재수 없어 당한 일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여라. 일단 나가서 싸우자'는 식으로 종용하고 나섰다. 막상 재판에 들어가자 피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기보다 판사의 눈치를 살피며 판사에게 거스르지 않는 재판 진행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역력했다."
이런 현장 취재와 함께 2002년 당시 화제가 됐던 변호사가 쓴 법조 현실 비판 소설을 화제 박스 기사로 실었다. 현직 변호사가 소설을 통해 법조 현실을 적나라하게 쏟아냈으니 기사의 신뢰성을 높일 소재였다. 전직 판사인 임판 변호사가 쓴 법정 소설 <그림자 새>가 그것이다.
본성 드러내는 검찰의 보복 수사
문제는 검찰의 반응이었다. 9월 중순 검찰 비판기사가 <충청리뷰>에 연속 보도된 직후 검찰의 예민한 반응이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첫 보도 이후 청주지검 관계자가 보도 배경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평소 알고 지낸 사이라 '개인적 관심'임을 전제했지만 검찰 속성상 그 의도는 뻔했다.
지역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검찰 수뇌부가 격앙된 상태다. 당분간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연락을 해왔다. <충청리뷰> 발행인인 윤석위 사장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정보도 감지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검찰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첫 수사는 <충청리뷰> 관련사인 ㈜이건종합건설 및 ㈜백상건설과 주주 회사인 ㈜다산 애드컴에 대한 추적이었다. 이건종합건설과 백상은 윤석위 발행인의 개인회사이고, 다산은 <충청리뷰>의 운영 지원을 위해 설립된 <충청리뷰> 주주 공동 출자 회사다. 검찰은 10월 2일 수사에 필요한 자료라며 지난 3년간 이 두 회사의 공사 수주 실적에 대한 관련 서류 일체를 각각 건설협회와 청주시청에 공식 요청했다.
주주 관련회사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수사 착수가 결국 <충청리뷰>에 칼끝을 겨누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충청리뷰>에 보도를 멈추고 무릎 꿇으라는 신호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주 발행 250호 신문에 '검찰의 언론 길들이기'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를 통해 보복수사 의혹을 정면으로 다뤘다. 250호 신문이 안산 인쇄소에서 도착한 10월 10일 오전 <충청리뷰> 직원들이 자체 발송 작업을 하는 중에 청주지검 직원이 직접 찾아와 신문 1부를 받아갔다. 신문 도착시간을 미리 알고 직원을 보낸 것이 분명했다.
250호 신문에 대한 청주지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분명했다. 이날 오후 청주지검 특수부는 도내 10개 지방자치단체 공보실에 연락해 '<충청리뷰>의 과거 5년간 광고 게재 내역을 뽑아 담당자가 직접 검찰로 가져오라'고 했다.
이렇게 검찰은 <충청리뷰>에 대한 보복 수사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싹쓸이 광고주 수사, 윤 발행인 구속 등 보복 수사 칼날의 강도를 더해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산학연 코리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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