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채식 혐오'가 걱정스러운 이유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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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소와 제철 과일 위에 그릭요거트와 유자청, 견과류를 토핑한 점심 도시락을 2년 넘게 매일 아침 챙기고 있다. 아이들은 무슨 맛으로 먹냐며 '잔반통'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
| ⓒ 서부원 |
단백질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따금 메추리알 몇 개와 삶은 달걀을 곁들이기도 한다. 거기에 집에서 전날 직접 만든 그릭요거트를 토핑하듯 올리고, 유자청이나 레몬청으로 덮는다. 도시락 뚜껑과 엉겨 붙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견과류를 얹으면 한 끼 도시락이 완성된다.
메뉴는 1년 365일 거의 똑같다. 방울토마토나 오이 대신, 사과나 귤이 들어가는 등 제철 과일만 달라질 뿐입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엔 찐 찰옥수수가 밥이고, 챙겨간 도시락을 반찬 삼아 먹는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와 곁들이면 영양 만점인 데다 종일 든든하다.
이렇게 도시락을 챙긴 지 2년 남짓 됐다. 식생활관(급식소)에 가지 않고 교무실에 홀로 남아 점심을 먹다 보니 동료 교사들이나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조금 아쉽다.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서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 그만큼 사이가 돈독해지는 법이다.
학교에서 내가 도시락을 챙겨온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올해로 24년째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건'이라고 불리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소나 돼지, 닭, 오리 등 육류만 먹지 않을 뿐, 생선 등 어패류와 달걀, 치즈 등은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먹는다.
참고로, '비건'은 모든 동물과 부산물을 일절 먹지도, 입지도, 쓰지도 않는 채식주의 단계나 사람을 일컫는 용어다. 그들은 가죽옷과 오리털 파카를 입지 않으며,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도 반대한다. 유럽 등지에서는 마트와 식당마다 그들을 위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우리 학교의 식생활관은 인근 중고등학교 중에 '맛집 성지'로 정평이 나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 자랑을 해보라면, 예외 없이 급식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고입 배정을 앞둔 인근 중학교 3학년들이 급식 때문에 1순위로 지망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그런데, 난 식생활관에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아이들이 죽고 못 사는 고기반찬 위주이기 때문이다. 복날 삼계탕과 닭죽이 나올 때나 짜장면과 만두가 메뉴일 때는 반찬으로 나오는 단무지만 우걱우걱 씹다 오곤 했다. 그런 날이 도시락을 챙기게 된 직접적 계기였다.
"그것만 먹고 어떻게 견디시나요?"
"1년 내내 그렇게 먹고 질리지 않으세요?"
"쫄깃쫄깃한 고기 맛이 그립지 않으세요?"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은 '파릇파릇한' 내 도시락을 보고 농담 투로 한마디씩 건넨다. 디저트나 간식거리조차 안 된다며 키득거리기 일쑤다. 콩과 호박, 토마토와 파프리카 등 가장 싫어하는 음식만 모아놓았다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도시락이 아니라 '잔반통'이라며 놀려대기도 한다.
"채식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
언뜻 도시락 크기가 작아 보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적응이 돼서 딱히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제철 과일 위주로 챙기다 보니 질릴 틈도 없다. 또, 육식을 끊은 지 워낙 오래여서 고기 맛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솔직히 고기 굽는 냄새가 거북해 회식 자리를 부러 피할 정도다.
"매일 아침 도시락 챙기는 게 귀찮지 않으세요?"
요즘 들어선 이런 질문도 자주 받는다. 물론, 바쁜 아침에 번거롭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 힘들었는데, 지금은 루틴이 되다 보니 아침을 여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냉장고 문을 열고 오늘은 뭘 싸갈까 하는 나름의 설렘이 있어 귀찮음이 상쇄된다.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오래전에 글로 쓴 적이 있다. 고기용 닭의 부리가 왜 하나같이 잘려 있는지 알게 됐고, 끼니마다 고기를 찾아 먹으면서도 제집 앞에 축사를 세우는 건 결사반대하는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소의 방귀는 자동차의 매연과 공장의 굴뚝보다 많은 메탄가스를 방출한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늘어나는 육류 소비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이 속상했다. 하여 나부터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다짐한 게 채식이다.
"채식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요? 채식을 강조할수록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양 육식을 범죄시하는 것 같아 불쾌해요."
"채식이 몸에 좋다는 건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육식을 즐기면서도 무병장수하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어요."
요즘 아이들의 채식에 대한 인식은 이토록 부박하다. 특히 남자아이들의 팔 할은 채식을 '혐오'한다. 채식이라는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치거나 부러 육식주의자라고 삐딱하게 말하는 아이도 여럿이다. 물론, 채식처럼 육식을 즐기는 것도 각자의 식성이고 기호일 뿐이라 나무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채소와 과일을 아예 입에 대지 않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식생활관의 모니터에는 열량과 영양 성분이 최적화된 다양한 메뉴가 올라와 있지만, 아이들의 식판 위엔 온통 고기반찬뿐이다. 그들에게 콩, 버섯, 가지, 오이, 깻잎, 청경채, 죽순 등은 차라리 '혐오 식품'이다.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는 물론, 생선과 조개류도 '모니터 안의 메뉴'일 뿐이다. 근래엔 된장국과 콩나물국, 배추김치조차 먹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전교생 7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먹는 나물 반찬이 우리 가족이 먹는 일주일 양보다 적다. 급식에 치킨이나 불고기가 나올라치면 나머지 반찬통은 배식대에서 통째로 치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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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은 온갖 다양한 메뉴가 놓인 뷔페에서도 고기반찬만 그득 담는다. 나물이나 해조류, 생선 등을 담는 아이는 눈 씻고 봐도 없다. |
| ⓒ 서부원 |
한창 클 나이인 지금은 고기가 입에 당겨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식성이 바뀐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 등은 영양제를 통해서 보충하고 있어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보단 아침을 거르는 게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먹는 것이 보여줍니다.(You are what you eat.)'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경구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선 '음식이 나를 만든다'로 번역해 소개됐다.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사람의 성향과 생활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하는 내용이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육식이 아마존 밀림의 파괴와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부추긴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아토피와 비염, 천식 등의 면역계 질환자들이 급증하는 현실 또한 육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아가 신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식습관이 주는 영향이 크다는 걸 은연중에 암시한다.
학교엔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는 '상남자'를 부러워하고, 왜소하고 깡마른 경우 '토끼남'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문화가 광범위하다. 이렇듯 '마초적' 분위기 속에 채식 또한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채식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요즘 아이들의 획일적인 식습관이 두렵다. 학교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식습관을 학교가 바룰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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