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주4회 편성', 방송국의 운명을 건 모험

양형석 2025. 7. 7. 11: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보는 아재] 시청률역대 4위에 빛나는 레전드 드라마 <모래시계>

[양형석 기자]

지난 1990년에 설립해 1991년부터 TV 송출을 시작한 민영 지상파 방송국 SBS는 개국 초기 '양강' KBS와 MBC에 가려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나마 예능과 코미디 쪽에서는 타 방송국에서 스타 코미디언들을 영입해 구색을 채웠지만 드라마의 경우엔 제작 노하우와 배우풀 부족으로 기존 방송국과 비교해 시청자 유입이 쉽지 않았다.

SBS는 1993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스타 배우 박중훈과 영화배우로 주가를 올리던 이경영을 캐스팅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을 선보였다. 하지만 SBS가 심혈을 기울였던 <머나먼 쏭바강>은 MBC의 <여자의 남자>에 밀려 기대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SBS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95년 <머나먼 쏭바강>을 뛰어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SBS는 완성도와 시청률에서 모두 대한민국의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 받은 걸작 <여명의 눈동자>를 만든 고 김종학PD와 송지나 작가를 영입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최민수와 박상원, 떠오르는 신예 고현정을 캐스팅해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완성했다. 세 주인공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의 굵직했던 현대사를 재조명했던 대작 드라마 <모래시계>였다.
 만약 <모래시계>가 없었다면 SBS가 자리 잡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 SBS
1990년대 초·중반 지배했던 '영원한 터프가이'

1960~70년대 은막의 스타이자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는 대를 이어 연기자로 활동했던 많은 배우들 중 2대가 모두 톱스타로 군림했던 흔치 않은 사례로 남아 있다. 데뷔 초까지만 해도 여느 2세 배우들처럼 아버지의 그늘을 벗지 못하던 최민수는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1991년 가족 드라마 <무동이네 집>을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로 알려졌다.

그리고 최민수는 1991년 11월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은 MBC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만났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이순재 배우와 김혜자 배우 사이에서 태어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이대발을 연기한 최민수는 평소 터프한 이미지와 다른 코믹한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민수는 이후 MBC에서 <엄마의 바다>와 <걸어서 하늘까지>에 차례로 출연하며 최고의 스타 배우로 떠올랐다.

1994년 <남부군>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출연한 최민수는 차기작으로 SBS의 <모래시계>를 선택했다. <모래시계>에서 정치 깡패 박태수 역을 맡아 시청률 64.5%를 이끈 최민수는 같은 해 영화 <테러리스트>에 출연하며 S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배우에 등극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1990년대 초·중반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최민수는 영화 <피아노맨>과 <인샬라>,<블랙잭> 등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8년 김종학 PD의 신작이자 심은하, 이병헌, 이정재 등이 출연했던 <백야3.98>도 30%가 넘는 시청률로 시작했다가 한 자리 수로 막을 내리는 '용두사미'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최민수는 2001년 <리베라 메>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최민수는 2000년대 이후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연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비닐우산을 쓰고 지강혁(이성재 분)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홀리데이>가 대표적이다. 1962년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긴 최민수는 더 이상 과거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여전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원한 터프가이'로 기억되고 있다.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흥미롭게 재구성
 "나 떨고 있냐?"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박태수(왼쪽)와 강우석의 사형 집행장 대면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 SBS 화면 캡처
SBS에게 <모래시계>는 그야말로 방송국의 '사활을 걸고' 만든 드라마였다.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던 스타PD와 작가,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배우들을 모아 만든 <모래시계>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4회 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을 단행했다.

드라마국의 운명을 걸었던 SBS의 파격적인 모험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주4회 편성의 <모래시계>는 평균 46%, 최종회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는 역대 드라마 중에서 <첫사랑>과 <사랑이 뭐길래>,<허준>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시청률이었다. <모래시계>는 신생 채널 SBS가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방송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실제로 <모래시계>는 단순한 인기 드라마가 아닌 하나의 '사회현상'에 가까웠다. 평소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성 직장인들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둘렀다 하여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 그리고 <모래시계>가 방송되던 1995년에는 수도권에만 SBS 가 송 출됐는데 지방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모래시계> 테이프가 대작 영화를 제치고 대여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모래시계>는 유신시대부터 6공화국 탄생까지를 배경으로 세 주인공이 대한민국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YH여공 신민당사 점거 농성사건'과 '서울의 봄', '삼청교육대' 같은 1970~80년대의 사건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을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김종학PD는 실제 자료 화면과 촬영 장면을 교차 편집해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최전성기에서 은퇴를 선택한 여성 배우
 고현정은 <모래시계>를 통해 정점에 오른 상태에서 결혼과 함께 연예계 은퇴를 선택했다.
ⓒ SBS 화면 캡처
1989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의 고현정은 1992년 <두려움 없는 사랑>과 1993년 <엄마의 바다>를 통해 스타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1995년 <모래시계>에서 카지노 재벌의 후계자 윤혜린을 연기하면서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고현정은 <모래시계>가 끝나자마자 결혼을 하면서 연예계를 은퇴해 대중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고현정은 2005년 <봄날>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의 긴 공백기를 가졌다.

모델 출신으로 1993년 데뷔한 이정재는 드라마 <공룡선생>,<느낌>,영화 <젊은 남자> 등에 출연했다가 <모래시계>에서 혜린의 보디가드 백재희를 연기했다. 이정재는 <모래시계>가 낳은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등극했다.

1982년 MBC 공채 15기 탤런트로 데뷔한 정성모는 <겨울나그네>와 <여명의 눈동자>, <서울의 달>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다가 <모래시계>에서 '빌런' 이종도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종도는 납치 당한 혜린을 구하러 온 백재희를 살해했고 박태수를 사형수로 만든 인물이다. <모래시계>로 악역 이미지가 각인된 정성모는 <제빵왕 김탁구>와 <펜트하우스> 등에서도 악역을 맡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