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과 야간반의 차별? 이 청춘영화가 담은 동아시아의 현실

김상목 2025. 7. 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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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리뷰] <우리들의 교복시절>

[김상목 기자]

 <우리들의 교복시절> 포스터
ⓒ ㈜에무필름즈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여학생 '아이'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산다.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 엄마가 초등학생 교습소 일로 생계를 꾸린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엄마의 교육열은 높다. 아이는 공부를 제법 하지만, 최고 명문 '제일여고' 입학은 실패하고 만다. 다음 서열 학교로 진학하면 되지만, 엄마의 권유로 제일여고 '야간반'에 응시한다. 기뻐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영 내키지 않는다. 야간반은 '짝퉁' 느낌이기 때문이다. 원래 만학도용 과정이지만, 주간반과 같은 수업 질 덕분에 대입 차선책으로 야간반은 상당한 인기다. 엄마도 그런 이유로 야간반을 권했지만, 아이는 세간의 평판이 신경 쓰인다.

주간반과 야간반 교복은 같지만, 명찰 색깔로 서로를 구분한다.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엇갈리는 시간대에 같은 교실과 책상을 공유하는 게 학교 전통이자 관행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묘한 '펜팔' 문화가 형성된다. 동년배 여학생끼리 편지나 메모를 주고받는 것이다. 일종의 '비밀 친구'다. 아이와 1학년 책상을 공유하는 주간반 학생은 '민'이다. 공부도 잘하지만 활달하고 놀기 좋아하는 민과 아이는 주·야간 벽을 넘어 친구가 된다. 땡땡이를 위해 민은 아이의 교복을 빌리고, 처음엔 들킬까 조마조마하던 아이도 동참한다. 자주 어울리게 된 둘은 신분의 벽을 넘은 체험을 공유한다.

그런 어느 날, 아이는 민이 은근히 마음을 품은 남학생 '루커'를 알게 되고, 우연한 기회로 그와 가까워지며 아이 역시 루커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부유한 상대에게 자신의 초라함을 드러내기 싫던 아이는 주간반 영재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리고 민은 아이와 루커 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세상으로 나갈 준비의 시간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주인공과 친구들의 고등학생 시절 3년을 배경으로 설정한다. 17에서 19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정확히 아이와 어른 사이 유예기에 해당하는 시간대,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대학 입시라는 우명의 승부와 청춘의 좌충우돌이 동시에 벌어지는 때다. 어렴풋해도 금방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세상 '쓴맛'을 체감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간섭은 듣기 싫은데 자립하기엔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뭐든 어중간한 시기이지만, 반대로 사회의 편견과 서열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유예된 신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야간반'이라는, 한때 같은 제도가 국내에도 존재했던 터라 부모 세대에겐 익숙하지만,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 절묘하게 역할을 담당한다. 교복을 차려입는 목적은 해당 학교의 소속감을 고취하고, 학생이란 정체성을 내외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추가되는 게, 동일한 복장을 착용함으로 가정 형편에 따른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영화 속 제일여고 교복은 학교가 공식적으로 주간반과 야간반 구별을 위한 최소한의 행정 목적 외에 명시적인 차별을 의도하는 기색이 드러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넘어설 수 없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조성되는 그런 긴장이 고등학생 시절의 불안정성과 결합해 단순한 청춘 로맨스 드라마를 뛰어넘는 깊이를 작품에 부여해준다. 아주 영리한 설정이다.

입학식에서 학교는 '해와 달'에 비유하며 주간반과 야간반이 같은 제일여고 학생이라는 동질감을 강조한다. 뿌리 깊은 펜팔 문화도 금기는커녕, 전통으로 환영받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사자인 학생들의 생각은 그와 같을 수 없다. 주간반 학생들은 아이가 염려한 대로 은연 중에 야간반을 학교 명성에 '무임승차'하려는 '짝퉁'으로 취급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런 정서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민감한 청소년기를 겪는 야간반 학생들에겐 학교나 주간반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이라도 차별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물론 아예 다른 학교로 진학해 물리적으로 분리되거나, 학벌 서열을 인정하고 체념하면 편할 테지만, 아직은 그런 차별을 감수하라 하기엔 '순수의 시간' 아닌가. 여기에 자의로 진학하기보단, 부모의 의사에 좌우되는 고교 선택 과정은 대학 진학이란 다음 단계 포석에 주안점을 두게 마련이다. 즉 당사자가 원치 않은 조건에 처해진 상황에서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학사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게 마련인 학원물 구조 안에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차별과 통합의 롤러코스터가 단순한 학창시절 일화를 뛰어넘는 긴장과 구조적 문제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위력을 형성한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
ⓒ ㈜에무필름즈
◆ 동아시아 국경을 아우르는 어떤 동시성

동아시아 각국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이런 경향은 해당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게도 여전히 계승되어, 미국 사회 풍자에서 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의 높은 교육열은 일종의 '밈'으로 차용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정도다. 나라별로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한국과 일본, 대만을 비롯한 중화권 국가 모두 그런 특징을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대만 영화인데도 별다른 위화감 없이 극 중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런 상황 자체가 일종의 희비극인 셈이다.

아이의 엄마는 딸의 대학 진학을 위해 애쓴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가족 형편은 여유롭지 못하다. 외식이 일상화된 대만에서 그들 가족은 늘 직접 밥을 해 먹는 풍경이 등장하는데, 작품의 깨알 같은 개그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엄마가 선보이는 눈물겨운 식재료 재활용은 단순한 웃음 유발을 넘어 근대 동아시아에서 교육열이 어떤 배경 아래 형성된 것인지 문득 체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엄마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야간반에 합격한 주인공이 엄마가 알뜰 살림하느라 주변에 부탁해 구해온 중고 교복을 내던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딸에게 엄마는 야간반도 제일여고 학생이고, 해당 과정을 거쳐 잘 된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임을 강조한다. 조부모 시절이면 우리 형편에 너는 공장에 보냈을 거라며,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사회적 계층 상승과 살림살이 펴는 걸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 엄마의 주장은 바로 동아시아 3국 공통의 사회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몇 안 되는 사례가 바로 그런 교육 열기, 그에게서 파급된 신분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측면에서 비롯된다는 진단이 여기에 기인한다. 학벌이 곧 인생 역전의 '동아줄'로 받아들여지는 풍토는 아이의 야간반 친구인 '위청위에'의 경험을 통해 강화된다. 20살 넘어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중졸로는 사회생활에서 한계가 분명하다며 아직 세상 경험 부족한 어린 동기에게 누누이 설명한다. 제일여고 입학을 위해 재수도 당연시되는 풍토 역시 작중 빈번하게 언급된다. 야간반은 단순한 편법이 아닌,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 자녀가 명문대에 가기 위한 발판, 그나마 도전할 만한 목표인 셈이다.

하지만 친구 민을 통해 주간과 야간의 경계를 넘은 아이는 엄마가 기대하는 그 통로가 명확히 한계를 지님을 체험하게 된다. 주간반에서도 우등생들은 사교육 학원은 물론, 자신들이 진학할 명문대 교수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실상의 과외를 받는 중이다. 민과 루커와 함께 간 전시회에선 제일여고 (주간반) 커뮤니티의 위세와 함께 자신은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유리천장'을 절감한다. 어린 마음에 우정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여겼던 자신을 책망하며 주인공의 여고 시절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운명이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
ⓒ ㈜에무필름즈
◆ 대만 청춘영화, 준수한 매력을 실증한 작업

물론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벌새>보다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조금 더 가깝게 기우는 작업이다. 하지만 영화 속 시공간, 1997 ~ 1999년 사이의 세기말 배경을 그저 낭만적 '레트로' 감성으로 써먹지 않는다. 영리한 시대상 고증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시하지만, 단지 향수 유발을 넘어선다. 후반부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에서 촉매 작용을 해주는 1999년 '921 대지진'은 2,415명의 공식 사망자를 기록할 만큼 거대한 천재지변이었다. 워낙 큰 사건이라 대만 청춘 영화 대명사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도 주인공들의 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활용될 정도다.

영화 속 921 대지진은 마치 한국 독립영화 <벌새> 등에서 사회적 참사를 중요한 소재로 활용하는 경향과도 비교될 만하다. 이런 활용법 역시 동아시아 사회문화 유사성의 일부일 테다. 마치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청춘물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펴보는 지점처럼 말이다.

그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도 떠들썩했던 스크린쿼터 문제의 여파도 조명된다. 대만은 1980년대 후반에 우리와 달리 수입제한이 폐지되면서 자국 영화가 몰락하다시피 했고, 대만 청소년들은 할리우드 대작이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영화를 좋아하던 주인공이 니콜 키드먼에게 편지를 보내고, 사모하는 남학생이 <스타워즈> 대사를 따라 하고, <아마겟돈>을 함께 보자는 제안에 설레임을 느끼는 행간엔 그런 배경도 녹아 있다. 여기에 주인공이 자주 드나드는 도서-비디오 대여점 풍경 역시 해당 시기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반갑게 추억에 잠길 법하다.

영화는 여름방학을 배경으로 청소년 시절 풋풋한 한때를 압축한 일본 청춘물 대체재로 조명받던 대만 영화가 어느새 독자적으로 진화한다는 심증을 굳힌다. 8월의 일본을 사철 고온다습한 현지 날씨로 대체하고, 우리 못지않게 다사다난한 현대사와 사회상을 양념 삼아 철저한 균형감으로 승부하는 이 작품은 청춘물 왕도에 충실하다.

하나 더 주목할 건 이 영화 속 절제된 '소리'다. 자연스런 풍경에 더해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배경음 효과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만 작가주의 영화의 아우라와 겹쳐진다. 억지 해피엔딩도, 신파에 의존하는 눈물샘도 오남용하지 않는 인상적인 치고 빠짐은, 그야말로 <슬램덩크>의 결말이 주는 감성과 닿아 있었다.

<작품정보>

우리들의 교복시절
The Uniform
2024|대만|로맨스, 멜로
2025.07.11. 개봉|109분|전체관람가
감독 촹칭션
출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수입 ㈜에무필름즈
배급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우리들의 교복시절> 스틸
ⓒ ㈜에무필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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