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금융기관을 설립하자

문진수 2025. 7. 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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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란다 : 금융 분야 정책 제안 ④

새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가 바뀌면 정책이 변하기 마련인데, 잘 변하지 않는 영역이 금융이다. 정권 초기엔 늘 의미 있는 개혁이 이루어질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쪼그라들어 결과적으로 몸통은 그대로 둔 채 깃털만 만지다가 끝나기 일쑤다. 이글은 공공재(公共財)인 금융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2050년 탄소중립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지구적으로 매년 4.5~5조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2021.5)한다. 해마다 6000조 원이 넘는 돈이 기후 문제 해결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다만 추계일 뿐, 날로 심각해지는 위기의 징후를 고려하면 필요 자금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전 세계 국가들은 당면한 기후 위기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대응 전략 짜기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위기 대응은 형편 없이 낮은 수준이다. 국제환경단체가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CCPI)를 보면, 대한민국은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다.
▲ 2025 CCPI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2024년은 64위, 2025년은 63위/67국을 기록 (기자 재편집)
ⓒ Germanwatch, NewClimate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탄소중립 달성이 훨씬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고, 전환 과정에 투입될 자금 역시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비용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세 가지 접근법을 생각할 수 있다. ①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 ②민간 자금을 활용하는 방법 ③정부와 민간이 함께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다.

답은 ③번이다.
①번은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②번은 수익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작다. 결국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2021년에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 청사진이 담겨 있다.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이 법률에 명시된 자금 조달 계획은 두 줄기다. 하나는 제58조의 '금융지원 및 활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69조∼74조에 걸쳐 있는 '기후 대응 기금'이다. 탄소중립기본법 제58조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58조(금융의 지원 및 활성화)
①정부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 등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하여 재원 조성, 자금 지원, 금융상품의 개발, 민간투자 활성화, 탄소중립 관련 정보 공시제도 강화, 탄소시장 거래 활성화 등을 포함하는 금융 시책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②제1항에 따른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촉진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①항은 개괄이고, 중요한 건 ②항이다. 금융상품 개발, 민간투자 활성화 등 금융지원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추가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기본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추가 제정된 법률은 없다. 결국 탄소중립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은 정부의 금융 시책 수립+시행만 남아 있는 셈이다.

2024년에 금융위원회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2024.3)한 바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2030년까지 총 420조 원의 정책 금융을 공급하고, 산업은행과 5대 시중은행이 공동 출자해 신재생에너지펀드(9조 원)와 기후기술펀드(3조 원)를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포장지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물은 특별할 게 없다. 정책 금융은 기존에 추진해 오던 사업의 외형을 키운 것이고, 새로 조성하는 펀드도 범국가 차원의 기후 대책이라고 보기에는 빈약한 수준이다. 출자 금액도 참여 기관 수(6개)로 나누면 2030년까지 은행당 2조 원 남짓에 불과하다.
▲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방안 저탄소 공정 전환 등을 위한 정책 금융기관 역할 강화 (6쪽)
ⓒ 금융위원회
결정적으로 이 계획은 구속력이 없다. 실행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책 금융기관들은 어떻게든 하려고 하겠지만, 민간 금융회사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선의(善意)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정부 정책이 바뀌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기후대응기금을 살펴보자. 탄소중립기본법 제69조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69조(기후대응기금의 설치)
①정부는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후대응기금을 설치한다.
②기금은 다음 각호의 재원으로 조성한다. (이하 생략)

제58조와 마찬가지로 ①항은 개괄이고, 중요한 건 ②항이다.
②항은 정부 출연금, 정부 외의 자의 출연금 및 기부금, 다른 회계 및 기금으로부터의 전입금, 금융회사 차입금, 온실가스 배출권 수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고 부족하면 은행에서 빌린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은 ③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재원을 마련하는 접근법이 아니라 재정 악화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①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 관행(custom)과 경로(path)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기후 위기 대응 자금 대부분을 정부가 감당한다는 건 성립될 수 없는 일이다. 정책을 통해 민간 자금을 유입할 길을 찾아야 하고, 정부의 과보호 속에 매년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금융회사에 마땅히 의무를 지워야 한다. 불타는 지구에서 창고에 돈을 쌓아둔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국적 맥락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금융 접근법은 녹색(green) 금융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수동적 태도로 볼 때, 현존 금융회사 혹은 기관이 위기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들의 관심사는 위기 대응이 아니라 위기관리를 통해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녹색 금융기관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독일은 국책은행인 재건은행(KfW)이 기후 금융을 이끌고 있고, 유로존은 유럽투자은행(EIB)이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人民銀行)이 직접 나서서 기후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모양새다.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 최근 국제 금융업계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 앞에서 '기존처럼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며 관리자의 위치에 머물 것인가,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돈의 흐름과 물꼬를 바꿀 것인가'라는 의제다.

개입의 정도(degree)로 보면,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미국이 가장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유로 안에서는 시장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강력한 통화 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관점 등 여러 의견이 병존한다. 물가안정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한국은행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대가 변하면 역할이 바뀌어야 하고, 비상한 상황에선 특별한 조치가 따라주어야 한다. 이제껏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오는데, 이 나라 금융을 책임지는 이들이 기후 위기를 대하는 태도는 경기장 바깥에 앉아 있는 관람객처럼 편안해 보인다. 탄소 중립(Net-zero)까지 남은 시간은 9천 일 남짓이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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