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무엇을 줄까" 아닌 "어떻게 함께"를 고민해주세요

박병규 2025. 7. 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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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 지방과 중앙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위하여

[박병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미팅'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5.6.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취임 두 달째를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보름 전 광주광역시를 방문했습니다. 군 공항 이전, 광주·전남의 초광역 협력,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논의의 장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언론은 이에 대해 지역이 준비되지 못했다고 평가했고, 일부 시민들은 지방정부의 대응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한 준비 부족으로만 해석하기보다는, 중앙과 지방 간 소통의 구조적 한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들어줄까, 말까?"는 시혜적 논리

국가 운영의 무게 중심은 점점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해법이 결정되고 지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는 삶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풀려야 하며, 그것이 바로 지방분권의 철학입니다.

정부가 지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방식은 20세기 중앙집권 국가의 시혜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역의 문제를 중앙의 틀에서만 해석하고 판단하는 이러한 프레임은 자치와 협치라는 21세기 행정철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역을 도와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해나갈 것인가"가 새로운 시대의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되기도 합니다. 자주·자립·자치. 이는 단순한 행정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혁신적 전환입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미 19세기 초에 "지방정부가 강하면 민주주의는 강해지고, 지방정부가 약하면 독재는 가까워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삶의 현장에서, 곧 지방에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지방정부는 '자치의 주체'로 존중 받아야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하위 기관이 아닙니다. 헌법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모두 '국가기관'으로,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 지방은 여전히 중앙의 결정에 의존해야 하고, 예산을 따기 위해 수차례 상경을 반복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은 때때로 이를 '평가의 대상'으로 보며, 지방 공직자들은 늘 '설득'의 자세를 강요 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현실이 참담합니다.

"지역을 잘 아는 사람보다, 서울을 잘 아는 사람이 예산을 더 잘 가져온다."

현장의 경험보다 인맥이, 헌신보다 줄이 우선되는 이 씁쓸한 현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방의 유권자들은 그 지역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거나, 살았어도 지역 현안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에게 표를 줘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산을 따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중앙부처의 관료 출신, 정치권 핵심과 연결된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역에서는 그들에게 '실력자'라는 이름표가 붙습니다. 그러나 과연 실력이란 무엇입니까?

정작 지역에서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 주민과 눈을 맞추며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 애향심과 책임의식으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해온 이들은 뒷전입니다. 도덕성도, 전문성도, 정책에 대한 비전도, 과거의 성과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힘센 누군가와 얼마나 가까운가'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미팅'에서 김영록 전남도지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5.6.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책임감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낄 때 시작된다."

지역의 고통을, 삶을, 사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지역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현실은,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연줄이 아니라 연대, 인맥이 아니라 인격, 말발이 아니라 실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택하는 문화,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시작입니다.

왜곡된 구조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지방분권의 철학을 뿌리부터 흔드는 문제입니다. 자치의 주체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분권은 형식에 불과합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이 꽃필 수 없는 토양 위에서, 지역의 혁신은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곧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의 지방정부에 적용해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주민의 곁에서, 일자리 하나, 복지 하나를 만들어가는 일은 바로 자치의 본질이자 정치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방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구상하더라도 중앙의 '인가' 없이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현실입니까? 자치가 실질화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져야 하며, 그 권한은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광주와 전남이 던지고 싶은 질문

우리는 중앙정부에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역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군 공항 이전도, 초광역 경제권도 모두 사람의 삶을 바꾸기 위한 수단입니다. 일자리 하나, 가게 하나를 살리고, 학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복원이 이야기 되어야 합니다. 민생의 구체성이 빠진 정책은 공허한 선언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지역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내일도 문 열 수 있는 가게, 아이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는 환경,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는 구조. 그것이 곧 '국가가 함께 해야 할 지방의 과제'입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25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미팅'에서 김영록 전남도지사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5.6.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지방은 왜 늘 준비되지 않은 걸까?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가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말은 결과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방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늘 준비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되는 구조에 있습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나 관심에 당황합니다. 사전에 의제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고, 숙의와 논의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 앞에 급하게 요구사항을 정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협치일까요?

협치란 사전적 소통과 충분한 협의, 그리고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 실행의 구조를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질문'과 형식적인 '답변'은 협치가 아니라 검증의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이 말은 유럽지방자치헌장의 서문에서 강조된 구절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분권 정책의 철학적 근거가 되어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5200만 국민 모두가 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은 이상, 민주주의의 실천은 지방 없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광산구의 한 중소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원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금호타이어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노동자들은 미래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들은 매출 감소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곳 시민들이 국가에 바라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생활 속의 희망입니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화재에 대한 모기업 더블스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함께 해낼 수 있는 나라를 위하여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 했습니다. 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은 단순한 정책의 실험장이 아니라, 국민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이며 민주주의의 목적지입니다.

중앙정부가 지방과 나눠야 할 대화는 "무엇을 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 해낼 수 있느냐"여야 합니다.

다음에 또 기회를 갖게 되면 충분한 시간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주셨으면 합니다.

"함께 꿈꿀 비전이 있습니까? 그 꿈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오셨습니까?"

지방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질문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말할 용기와 성찰의 시간

이번 대통령님의 광주 방문을 두고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국회 출장으로 당일 밤늦게 영상을 보며, 조금 다른 시선에서 성찰하고 이를 정리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우려를 전했습니다. 지역 정서상 의견 제시가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들도 있었습니다.

그 말, 깊이 새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의견이 공존하고, 그 다양함 속에서 더 나은 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견을 표현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숙의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건강한 사회의 징표입니다.

침묵은 때로 안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곧 시민들에 대한 배신이며, 행정가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정의는, 옳은 일을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저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어도, 그 다름이 갈등이 아니라 성찰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성찰이 작은 물결이 되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값진 일이라 믿습니다.
 박병규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의 인터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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