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아이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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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열 여섯 살 딸 아이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추천했다. 아이가 권했을 때만 해도 기대는 없었다. 내 평생 아이돌에게 관심 있는 시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어도 한참 예민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엄마랑 사이 좋게 지내자'라는 말 대신 가만히 옆에 앉는 쪽을 택했다.
새롭다, 재밌다, 신선하다
주인공들은 한옥 마을 지붕 위에서 싸우고, 이중 주차로 어수선한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혜화동 낙산 산성 둘레길이 나온 순간엔 아이에게 "저기가 낙산 둘레길이야!"라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아이는 '거기가 어디? 나랑 무슨 상관?'의 표정으로 나를 봤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재현된 낙산 둘레길은 내 눈에만 신선했다.
데몬헌터스의 두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가 부르는 곡들은 귀에 착착 감긴다. 물론 감긴다고 내가 따라 부를 수는 없다. 아이는 '소다팝'의 후렴을 금방 흥얼거렸다. "사자보이스 노래지?"라고 내가 묻자 아이는 "보이스 아니고 보이즈"라고 바로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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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몬헌터스 아이돌 이야기가 재미있을 줄 몰랐다 |
| ⓒ 넷플릭스 |
헌트릭스 리더 루미는 악령과 인간 사이의 혼혈이라는 태생적 비밀을 안고 있고, 사자보이즈의 진우는 가족을 떠난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약점이 나를 삼키게 둘지, 거기서 나를 건져 올릴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비밀은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용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내 아이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듯하다. 그 나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나는 안 될 거야' 같은 말들이 자주 입에 맴돈다. 진우가 죄책감 속에서도 무대에 서고, 루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나아가는 장면이 아이의 그런 문장들을 없애주길 바랐다.
그런 메시지가 아이에게도 스치듯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어른 꼰대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꼰대 어미랑 사느라 아이도 고생이겠다.
현실의 악귀를 다스릴 방법도 비슷하다
요새 내 현실의 악귀는 아이의 사춘기다. 평소엔 멀쩡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툭 끊고, 괜히 짜증을 내며 방 문을 쾅 닫는다. 대체 왜 그런지 물어도 "몰라" 한 마디로 끝난다. 억지스러운 고집, 맥락 없는 반항, 충동적인 말과 행동이 잦다.
악귀라고 하기에는 당연히 과하다. 전두엽이 재배치되는 과정이고, 편도체가 과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감정기복이기 때문이다. 아이 뇌에서 일종의 개편공사가 일어나는 중이라 생길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한다. 알면서도 아이 말에 무너지는 나이기에 악귀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악귀도 이와 닮았다. 어디선가 튀어나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상처를 건드리며 무너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 악귀는 팬들의 지지와 사랑, 그리고 누군가의 믿음으로 약화되고 봉인된다. 육체적인 힘이 아닌 정서적인 연대가 해답이다.
사춘기도 마찬가지다. 어른의 꾸짖음이나 통제보다는, '네가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눈빛 하나, '나는 네 편'이라는 태도가 아이의 편도체를 덮는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때론 말없이 곁에 있는 것이 봉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내 손끝에서 나온 텍스트와 내 행동이 일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자란다
애니는 끝났고, 아이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나는 가만히 여운을 씹었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며 각자의 것을 느꼈다. 아이는 이야기에 빠졌고, 나는 내가 만든 구조와 상징을 보았다.
시대마다 모양을 바꿔가며 악귀는 어디에나 있다. 어떤 악귀는 검게 피어오르고, 어떤 악귀는 겉보기엔 말쑥하다. 그러나 그 모든 악귀를 봉인하는 방식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관심을 가지는 일, 이해하려는 일, 듣는 일 등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본 그 하루 같은 날이다.
딸은 그저 재밌는 애니를 봤고, 나는 그 안에서 아이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본다. 세대를 넘는 공감은 이해가 아니라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자라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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