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서 전속력으로 뛰는 아이들에게 저는 이렇게 합니다
[정태윤 기자]
교사의 일, 생활지도
"복도에서 뛰지 않습니다."
20년 차 교사로 현재 중학교에서 학생안전부장(과거 학생주임)을 하고 있는 제가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 밖에서 노는데, 인파 사이를 몇몇 학생이 전속력으로 뛰어다닙니다.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어 요즘은 쉬는 시간에도 교사가 복도에서 감독을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교사가 학생의 학교 생활 태도를 지도하고 감독하는 행위를 '생활지도'라고 합니다. 생활지도는 영어 'guidance'에 유래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 도입되어 행동 방식, 청결 및 위생, 예의범절 등 학생 생활의 대부분의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교사의 생활지도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023년 2학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교육부의 고시는 교사-학생 갈등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지만(학생생활지도 고시 시행됐지만…교사 10명 중 7명 "변화 없어", <연합뉴스>, 2023년 10월 4일) 생활지도는 교사의 업무 중 수업만큼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식을 머리에 채우는 것을 넘어 공동체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윤리 시간에 '관용의 개념과 사례'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행해야 교육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 사용법 가르치기
처음에는 생활지도를 싫어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유로움 속에서 공동체에 맞는 질서를 찾아가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8년 전 담임 교사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걷지 않았습니다. 선량한 학생들이 자유 속에서 스스로 통제 방법을 찾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몰래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반 아이까지 빌려가서 사용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초임 교사의 야심찬 민주주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처음 실패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서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실천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무작정 주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1년 동안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을 저의 관점에서 기록(https://brunch.co.kr/brunchbook/libertyinclass)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통제의 선을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지만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학생은 드물었습니다. 담임교사의 개입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척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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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 지나친 관용으로 균형 잃은 교육을 지금 다시 설계하라, 베른하르트 부엡(지은이), 유영미(옮긴이) |
ⓒ 뜨인돌 |
이 오래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만큼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엄하게 가르쳐도 괜찮다"라고 하면서 자기훈련(self-discipline)을 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엄하다'라는 게 체벌을 허용하거나, 큰 소리로 위협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교사가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훈련시켜도' 된다는 것입니다.
베른하르트는 전후 독일의 교육상황에 대해 나치에 의한 독재의 반작용으로 인해 권위와 원칙의 필요성이 희미해지고, 개인적이고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치우쳐 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는 교육에서 외적 질서와 내적 질서, 강제와 자유 사이에서 균형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는 치우침은 '교육의 적'이라고 말하며 현재 자유방임적 교육으로 치우친 현실을 염려합니다. 교육자를 도공과 정원사에 비유하여 교육의 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끌어 주는 것과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은 교육의 양 축을 이룹니다. 이를 도공과 정원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도공 같은 교육자는 아이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조율하고, 요구하고, 훈련하고, 혼자서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자율과 자유를 얻기 하기 위해 훈련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반면 정원사를 표방하는 교육자는 아이들이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둡니다. 요구하기보다는 지원해 주고, 거의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훈련할 수 있다고 믿고, 제약이나 권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러나 좋은 정원사라면 정원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꽃과 나무들의 일상에 개입해 가지를 쳐내고, 버팀목을 대 주고, 비바람에 대비하고, 해충을 잡아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19~20쪽
자유는 주어지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길러가는 것입니다. 훈련에는 복종, 포기, 절제, 인내 등 인간이 싫어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어서 교육하려는 사람이 애정과 용기를 가져야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교육자는 개성이 다른 아이에 맞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율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실패와 갈등을 극복해 본 아이는 순탄하게 지낸 아이보다 마음이 더 단단해집니다. 교육은 스스로 실험할 기회를 찾아주고, 좌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연습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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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과 관용, 훈련과 사랑, 일관성과 배려,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야 한다고 베른하르트는 말한다. |
ⓒ sgtfixer on Unsplash |
1단계 : 말로 하는 방식
2단계 : 생각할 시간을 주는 방식
3단계 :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
복도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한 학생이 있습니다. 교사가 그 학생에게 말로 설명합니다. 뛰면 다른 사람과 충돌할 위험이 있으니 걸어야 한다고 지도하고 보냅니다. 말이 끝나고 교사와 5미터 정도 떨어지면 그 학생은 다시 뜁니다. 그럴 때는 불러 세워 2단계를 실행합니다. 3~5분 동안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맞는 교육 방식이 뭘까를 고민하고, 학생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성찰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왜 서 있는 벌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되돌려 보내면 그날은 뛰지 않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같은 학생이 오늘도 뛰고 있습니다. 이럴 줄 알고 교무실에 학생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제부터 그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책을 가지고 와서 정해진 자리에서 공부합니다. 처음에는 오전에만 실행합니다. 그런데도 행동이 고쳐지지 않으면 시간을 증가시킵니다.
위의 세 단계는 시간을 늘리는 방식입니다. '시간'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학습자와 교육자가 교육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일관성 있게 교육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시간의 교육적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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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다짐서 양식. |
ⓒ 정태윤 |
임마누엘 칸트의 <교육학 강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교육의 가장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규칙에 복종하는 것과 자유를 누릴 능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이다. 제약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제약 속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학생이 자유의 제약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런 것 없이는 모든 것이 단순한 메커니즘일 뿐이며, 교육을 마치고 나서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해서 원하는 대로 뭐든 다 해주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원칙과 관용, 훈련과 사랑, 일관성과 배려,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야 한다고 베른하르트는 말합니다. 뱃사공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교사는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엄격하게 교육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의'라는 기준을 가지고 잘못된 행동에 반드시 벌을 부여해야 하는데, 정작 아이들은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받은 벌이 정당한지만 따집니다. 정의와 벌은 이어져 있습니다. 정의는 추상적 형태이기 때문에 실제로 인식할 수 있는 벌의 형태를 가져야만 아이들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의롭게 자랄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벌'이라는 교육 수단을 놓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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