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시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 장소는 '6시 내 고향'이 정해줍니다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호 기자]
"전남 고흥에 가면 시장에서 생선을 구워주는 곳이 있던데, 혹시 가봤냐? 반건조 생선을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서 맛나게 먹더라."
'그곳에 가고 싶다'는 아버님만의 표현이다. KBS1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에서 생선을 맛깔나게 구워주는 방송을 보셨나 보다.
7년 전 아버님은 35년 직장 생활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셨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드시고 하루를 시작하신다. 퇴직 후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무기력증을 느끼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버님은 마을 소일거리를 찾아 몸을 움직이셨고 천천히 '쉼'을 찾아가고 계신다.
지금 아버님의 유일한 즐거움은 <6시 내 고향>을 시청하며 TV 속 세상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지리산 뱀산골계곡이라고 있는데, 계곡물이 시원해 보이더라."
무더위에도 지리산 뱀산골계곡에서 사람들이 덜덜 떨면서 물놀이하는 모습이 시원해 보였다고 부러운 듯 말씀하셨다.
"아버님, 지리산 뱀산골 계곡에 발 한 번 담가 보실래요?"
|
|
| ▲ 메모를 적어두신 아버님. |
| ⓒ 김지호 |
아침 6시에 출발해서 2시간을 달려 공주 '유구 수국 축제'에 도착했다. 수국 축제 오픈 날이니 잠시 구경하고 가자는 남편, 수국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아버님은 조용히 차에서 내려 언제나처럼 어머님보다 앞서 걸어가셨다.
|
|
| ▲ 유구 수국 축제 아버님 미소 아버님, 저 좀 보세요 !! |
| ⓒ 김지호 |
다시 차를 몰아 어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흥에 도착해 생선구이로 유명한 '고흥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시장 모습에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생선을 숯불에 굽고 있는 시장 풍경이 정겨웠다.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생선을 구경하며 <6시 내 고향>에 방영되었다는 식당을 찾아 시장 안쪽으로 향했다. 사장님의 푸짐한 인심과 재치 넘치는 입담이 조용한 아버님의 관심을 끌었다.
"고것이 돔이랑게라, 여간 쫄깃해 븐디, 간을 잘해서 기양 잡수셔라."
|
|
| ▲ 팔복식당 푸짐한 생선구이 |
| ⓒ 김지호 |
"아버님, 갑오징어 한 마리 사서 저녁 술안주 어떠세요?"
"아부지가 살게."
|
|
| ▲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구이 쫄깃하고 부드러운 갑오징어 |
| ⓒ 김지호 |
비릿한 음식을 싫어하는 아들은 전통시장을 향하면서부터 울상이었다. 고흥에 도착하면서부터 숙소는 언제 가냐는 질문만 반복했다.
"아들, 할아버지 좋아하는 생선구이 먹으러 왔으니까, 맛있게 먹고 숙소 가자."
내키지 않아 보였지만, 미역국은 자기 입맛에 맞다며 먹는 시늉을 하더니 금세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시무룩한 아들을 달래려 남편이 가게 냉장고에서 콜라와 사이다병을 꺼내와 큰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
|
| ▲ 콜라, 사이다병 시원하게 원샷!! |
| ⓒ 김지호 |
다음 날은 숙소에서 가까운 '소록도'(한센병 한우의 아픔이 서린 작고 아름다운 섬,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해서 소록도라 불린다.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 출처 네이버 사전)로 향했다.
'파란 눈의 천사'라고 불린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가 아들의 흥미를 자극했고, 자연과 치유, 추모의 의미가 공존하는 중앙공원의 오래된 수목과 산책길은 아버님 마음에 잠시 휴식을 선물했다.
저녁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기로 했다. 아들 취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식당에 들어오면서부터 웃음꽃이 핀 아들을 보면서 급하게 메뉴판을 훑었다. 아버님 드실 만한 음식을 찾는 게 먼저였다. 그나마 식감이 부드러울 것 같은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다.
"아버님 드실만하세요?"
"그냥 먹어."(맛이 없다는 뜻)
"다른 거 시켜 드릴까요?"
"먹을 만 해."(소주나 한 병 시키라는 뜻)
가족여행 때 조수석은 아버님 지정석이다. 처음에는 침묵으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고, 가끔은 긴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버님 건강을 걱정해서 술 조금만 줄여달라는 아들과 그 말이 서운한 아버님의 작은 표현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매년 여행을 다니면서 대화는 많아지고 불편함은 줄어들었다.
긍정적이고 활발한 어머니와 궁합이 잘 맞는 남편, 조용히 여행을 즐기며 잡음을 최소화하는 아버님과 궁합이 잘 맞는 나, 어느 한쪽으로 감정이 기울 것 같으면 다른 한쪽에서 보완해 준다. 서로의 성향을 인정하고 역할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함께하는 여행'은 여름이면 당연한 가족여행이 되었다.
"아버님 우리 다음엔 어딜 깔까요?"
"음, 기다려 봐. 아부지가 <6시 내고향> 봐야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자 고등학교 극우화가 침소봉대라는 이들에게
- '쫑포몬당'... 놀랍게도 여수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 규칙 없이 춤을 추듯... 블루베리 파이 이렇게도 만듭니다
- 결혼할 때 맞췄는데 30여 년 만에 처음 입었다는 혼례복
- 안타까운 명성황후의 편지... 20대 중국 관료의 충격적 행태
- "이 참혹함을 증언해야" 태평양전쟁에서 돌아온 한 일본군의 다짐
- 한전KPS '업무 복귀 명령' 취소하고 트라우마 치료 보장하기로
- 내란특검 "윤 오후 6시34분 조사종료… 조서 열람 중"
- "나는 얼마 받을 수 있나?"…민생회복 소비쿠폰 Q&A
- 채해병 부대 찾은 예비역들 "불의한 자들 해병대 떠나게 될 것"




